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떻게 될까? 잡힐 수 있을까? 이런 정도면 잡히지 않을까?

 

이른바 촛불 '배후' 수사에 나선 경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앞으로의 촛불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절치부심하고 있는 곳은 비단 청와대나 농림수산식품부, 혹은 검경 수뇌부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바짝 바짝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 배팅한 '조·중·동'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사실 '조·중·동'이야말로 죽을 맛이다. 사태가 이렇게 번질 줄은 그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중고교생들이 나선 촛불집회가 이렇게 끈질기게, 이렇게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을까? 밀어붙이면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미국인도 아무 걱정 없이 잘 먹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무식한 주장을 그렇게 당당하게 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조·중·동'이라도 이제는 그런 용감 무식한 주장은 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국민 대중을 한마디로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중·동'도 더 이상은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잘 했다고 일방적으로 옹호할 수만도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괴담사냥'에서 '배후설'로 표적 이동한 조·중·동

 

'조·중·동'으로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한미간 추가 합의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수입업자들이 알아서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 수준에서 사태가 수습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조·중·동'의 희망과는 달리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조·중·동'은 이제 거의 공안당국과 같은 시각으로 사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순수한 '촛불문화제'가 불순한 '촛불시위'로 번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10대의 중고교생 대신 20대와 30대가 촛불 집회와 시위의 새로운 '주력'으로 떠오르면서 '반정부 구호'가 부쩍 늘었다는 진단이다. 아무래도 '배후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적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일보>는 27일 '사흘째 차도로 뛰어든 촛불' 분석 기사에서 조직적 배후의 존재 가능성을 의심하면서도 검찰과 경찰이 25~26일 연행된 69명을 "1차 조사한 결과 특정 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시위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발적으로 집회에 나와 우발적으로 점거 행진에 가담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조선일보>의 이 분석기사는 결국 촛불 집회와 시위를 인터넷상에서 주도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카페인 '아고라'를 그 진원지로 지목하기도 했다.

 

'조·중·동'은 괴담 사냥에서 배후설로 표적을 이동하면서 이제는 그 '진원지'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조·중·동'의 이런 표적 이동이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 촛불 사태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미심쩍다. 왜냐하면 그들이 겨냥한 '배후설'이나 '진원지'에 대해서도 이미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진짜' 괴로워하는 이유는?

 

<한겨레>는 '조·중·동'의 이런 보도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27일자 1면 머리기사 등으로 촛불집회 연행자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집회에 시위에 참가했는지, 지금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를 집중 취재해 보도했다. '조·중·동' 독자들이 읽는다면 '조·중·동' 지면에서 느꼈을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어줄 그런 기사다.

 

<한겨레>는 나아가 '달라진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10대 청소년 대신 '20~40대 청장년층'들의 참여가 부쩍 늘었으며, 이에 따라 집회의 운영 방식이나 주장을 펴는 방식도 이들 각 세대에 익숙한 방식으로 다양화되고,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촛불 집회와 시위를 수사 중인 경찰이나 검찰은 <한겨레>의 이 기사를 많이 참고할 듯싶다.

 

 

<조선일보>가 촛불집회와 과격 시위의 진원지로 지목한 '다음 아고라'에 대해서는 <경향신문>이 아예 1면 주요기사(떠오르는 '인터넷 공론장' 주목-저항의 메카 '다음 아고라')로 다뤘다. 이곳이 어떤 곳이며, 지금 어떤 논의들이 오가고 있는지를, '아고라'에서 언제부터 '거리투쟁'에 대한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래서는 '조·중·동'으로서는 승산이 없다. 검찰과 경찰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공안작품'을 꿈꾸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정치적 악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되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조·중·동'으로서는 자신들의 위상과 신뢰가 여지없이 추락되고 있는 현실을 감내해야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조·중·동' 독자들이 오늘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읽어 본다면, 그리고 과연 어떤 신문이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또 심층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판단해본다면 당연히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더 좋은 점수를 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0년만에 되찾은 '보수권력'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조·중·동'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방치해야 하는 것처럼 곤혹스런 일도 없겠다. 물론 세 신문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적어도 10년 만에 되찾은 '보수의 권력'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는 데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신문이라면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가 제기될 때 '조·중·동'이 그 첫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결국 이런 '외통수'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까?

 

그런 마당에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김도연 장관은 아무래도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지금까지는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옷을 벗으라고 촉구한 정도였지만, 이제는 '조·중·동'도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도연 장관으로서는 된통 잘못 걸린 셈이다(물론 김장관의 행보는 능히 사퇴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그런 점에선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난 '촛불민심'이 사그라질까?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겠지만 '조·중·동'으로서도 그 대목이 쉽지 않다. '조·중·동'은 지금이라도 그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의 밑천인 '보수의 민심'이라도 더 잃지 않으려면….


태그:#아고라, #조중동, #촛불 배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