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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걷는 순례자들.
ⓒ 강기희

내 삶을 두 다리에 의존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속도와의 전쟁인 시대, 걷는다는 일은 분명 시절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어깨 옆으로 씽씽 지나치는 차량에 비해 한없이 늦은 걸음. 차로 10분이면 도착할 길을 두어 시간이나 걸었다.

죽어가는 동강을 어찌하나

걷기를 작정하고 동강으로 간 것은 지난 17일(화) 오전 9시였다. 동강변 마을인 운치리는 동강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난 나리소가 있는 마을이다. 나리소를 등 뒤로 두고 걸음을 떼었다.

함께한 이들은 전국에서 모인 순례자들. 부산에서도 왔고 밀양에서도 왔다. 전주와 속초, 의정부, 강릉, 영월, 거창, 울산 등. 동강도보순례에 참여한 이들은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동강에 대한 애정과 죽어가는 '동강살리기' 운동의 출발점에 함께 서 있다는 거였다.

정선지역의 어린 학생도 함께 했다. 중학생도 있었고, 초등학생도 아비를 따라 나섰다. 이번 행사는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와 생명탁발순례단(단장 도법 스님)이 함께 만든 동강도보순례단이 마련했다.

동강을 직접 걸으면서 죽어가는 동강을 직접 확인하자는 게 동강도보순례의 취지다. 이날 도보순례에 참여한 이들은 70여명. 이 나라의 인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열의 만큼은 지구인이 다 모인 것보다 크고 넓었다.

비가 오리라는 전날의 예상을 깬 날, 하늘은 구름만 두텁게 덮은 정도로 걷기에 더 없이 좋았다. '도암댐 해체하고 동강 살려내라'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들었다.

순례단은 긴 줄을 만들어 동강변을 거슬러 올라갔다. 거대한 하수구 같은 동강은 검붉은 물을 끊임없이 하류로 흘려보냈다. 순례단을 스쳐지나간 동강물은 여주와 양수리를 지나 서울로 간다. 중금속 덩어리로 뭉쳐진 뻘은 이리저리 흩어져 각 가정의 수도꼭지로 쏟아진다.

수도물 마시는 사람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수도꼭지가 생명물인 이들도 많다. 그런 경우 다들 가난하고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수도꼭지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릿해진다. 죽어가는 동강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한심한 일상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동강은 생태말살지구

▲ 도법스님과 순례자들과의 대화.
ⓒ 강기희

▲ 가수리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 물빛이 검다.
ⓒ 강기희

동강변의 길은 동강을 닮아 구불구불하다. 오래 전 동강댐 반대를 외치며 걸었던 길. 길은 그때나 다르지 않지만 동강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동강변을 걷는 순례자들의 입에서 탄식과 한숨이 섞여 나왔다.

"동강을 직접 보니 눈물이 나오네요. 이렇 듯 죽어가는데도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게 더 화나요."

서울에서 온 순례자는 눈물을 훔치다가도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죽음의 강이 되어버린 동강. 몇 년 전만 해도 동강은 옥빛의 물이었다. 옥빛이 사라진 동강은 몇 년 사이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동강을 죽이는 것은 도암댐. 동강 상류에 있는 도암댐은 쓸모없이 방치된 댐이다. 동강변 사람들은 몇 년 째 도암댐 해체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동강을 보호하겠다고 동강 일대를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했지만 동강의 생태계는 철저하게 죽어갔다.

동강이 죽어가고 있다는데도 사람들은 제 할 일만 열중한다. 그러나 동강은 죽거나 말거나 할 강이 아니다. 동강이 죽으면 한강변에 있는 마을도 죽음의 도시가 된다. 유령의 도시에서 이 나라의 대통령을 하면 무엇하며 시장이나 군수를 한들 무슨 영광있겠나 싶다.

점심시간 도착한 가수리 마을. 일찌기 물이 아름답기로 가수리만한 곳은 없었다. 500년 세월을 동강과 함께 해온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곳인 가수리의 강물도 악취를 풍기기는 마찬가지였다.

▲ 줄 배를 타고 건너는 마을 주민.
ⓒ 강기희

▲ 귤암리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
ⓒ 강기희

동강을 죽인 사람들,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어

오염된 물은 스스로의 몸을 숨겼다. 수중 생태계는 아비규환. 가수리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에 서니 죽음의 냄새가 둥둥 떠다녔다. 도법스님은 느티나무 아래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비상식적 일상을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꼬집었다.

"인간에겐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 자신을 보는 눈이고 하나는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인간에겐 두 개의 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소리를 듣는 귀이고 하나는 세상의 소리를 듣는 귀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자신의 눈은 감고 있으며, 자신의 소리를 듣는 귀도 막아 버리고 있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 타인만 보며 세상을 잣대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이들의 소리만 듣고 세상을 다 안다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동강을 이렇게 만들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수분교에서 있었던 순례자들과의 대화> 도법스님의 말씀 중에서


운치리에서 그 날의 목적지인 귤암리 마을까지 걷는 동안 동강엔 사람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동강변 길을 지나치는 외부 차량도 만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동강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렇 듯 동강을 외면하는 사이 동강의 생명체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다.

"다슬기를 잡다 보면 죽은 민물고기들이 손에 잡혀요. 물론 다슬기도 절반은 죽은 놈들이지만요."

동강변 사람의 말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동강이지만 수중 생명체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동강을 이렇 듯 외면해 버리면 어쩌나. 동강변 사람들의 목숨이 그렇게 끊어져도 외면만 할 것인가.

사람이 만든 길은 하루를 꼬박 걸어도 끝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강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례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 순례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순례자들은 죽음의 강인 동강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한 채 피곤한 몸을 맨 땅에 주저 앉혔다.

"이건 절망이야. 절망."

손 끝도 담그기 싫을 정도로 죽은 동강 앞에서는 그저 '절망'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 동강변 마을인 귤암리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 "동강요? 똥강 된 지 오래 되었어요."
ⓒ 강기희

덧붙이는 글 | 도암댐 해체 실현을 위한 동강도보순례는 오는 23일까지 진행됩니다.


#동강#동강도보순례#도법 스님#도암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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