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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병방치에서 바라본 동강. 흙탕물의 수준을 넘어섰다.
ⓒ 강기희

강원도 정선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고장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정선은 대전보다 조금 먼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흔히들 부산이나 목포보다도 멀게 생각한다. 아마 '강원도 오지'라고 알려진 탓도 있겠고, 어떤 이는 정선을 정신적 고향쯤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강원도 정선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무릉도원'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선아라리 가락의 애절함은 숱한 사연을 만들어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가 싶어 울고 왔다가 나중엔 정을 떼지 못해 울고 떠난다는 정선 땅.

이 곳의 자랑은 차고 맑은 물이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강으로 나와 여름을 났다. 그러던 정선의 맑은 강이 죽었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강으로 나가지 않았다. 더이상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았고 덥다며 웃통을 벗어제끼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강이란 탁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란 의미만 남았다. 맑은 물을 자랑하던 정선 조양강이 언제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을까.

물 맑다고 소문난 정선, 그러나 이제 옛말

▲ 오대천과 조양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강 위쪽의 짙은 부분이 오대천의 물이고 붉은색이 도암댐에서 방류한 물이다.
ⓒ 강기희
▲ 정선읍 남평리. 샘물이 나오는 강변 근처는 물이 맑다.
ⓒ 강기희
@BRI@남한강 상류인 정선의 조양강은 애초 오염원이 없는 강이었다. 이렇게 흘러간 남한강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의 본류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던 조양강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남한강 최상류인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에 도암댐이 만들어지고부터이다.

정선의 조양강은 아우라지에서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골지천과 도암댐 물이 흐르는 송천이 합수되면서 비로소 조양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골지천에서 흐르는 물은 언제나 맑고 깨끗하다.

임계면에 있는 구미정에 올라서면 지금도 물고기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맑다. 그러나 구절리를 지나는 송천에 가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물은 황토빛을 넘어 붉게 물들어 있고 가끔은 악취도 풍긴다. 맑은 물을 기대하고 왔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다.

지난 3월 초 정선 지역에 봄장마가 졌다. 계곡은 지난 겨울의 때를 벗겨내기라도 하는 듯 일제히 흙탕물을 하루로 흘려보냈다. 계곡에서 흘러나온 흙탕물은 보통 이틀 지나면 맑은 물로 변하지만 송천의 물은 날이 지날수록 물빛이 짙어갔다.

도암댐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우라지와 정선을 지나 영월·충주·여주·양평을 지나 서울로 간다. 1300여리를 흐른 한강의 끝은 서해다.

농약에 비료, 축산 폐수까지 범벅된 물

한강 오염의 주범인 도암댐은 1991년부터 전력생산을 시작했다. 연간 1억8500만㎾에 경제적 효과는 12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전력 생산을 중단했다. 10년만에 댐의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도암댐이 전력 생산을 중단한 것은 강릉지역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었다. 댐이 전력을 생산하려면 낙차를 만들기 위해 강릉의 남대천으로 물길을 돌려야만 했다. 남대천으로 흐른 물이 양식 어패류를 폐사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농작물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게 강릉지역의 민원이었다.

댐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 강릉수력발전소 측은 민원을 받아들여 2001년 전력 생산을 중단했다. 기능을 상실한 도암댐은 그 후로 댐의 물을 정선지역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도암댐은 전력을 생산하는 중에도 가끔씩 정선으로 오염된 물을 흘려보냈다. 1995년엔 악취를 풍길 정도의 물을 흘려보내 강을 다 죽이기도 했다. 당시 강을 끼고 있는 지역민들이 소송을 제기해 도암댐 측에서 76억원을 배상한 일도 있었다.

도암댐으로 흘러드는 물은 폐수에 가깝다. 고랭지 밭이 많은 평창군 특성상 비만 오면 흙탕물과 농약과 비료 등 각종 오염 성분이 댐으로 흘러드는 데다가 용평리조트나 삼양목장 등의 축산 폐수까지 섞인다.

건강한 댐이 되려면 우선 댐의 상류지역에 있는 오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 흙탕물 저감사업이 몇년 째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비한 실정이다. 흙탕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축산 폐수이다.

홍수조절도 한다고? 지난번 물난리는 뭐지?

▲ 이런 물에서 물고기들이 얼마나 살 수 있을까.
ⓒ 강기희
▲ 지난 1월 중순 구절리 송천. 물빛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르지 않다.
ⓒ 강기희
도암댐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도암댐을 홍수조절용으로 용도변경하는 안과 댐 상류 오염원을 제거한다는 안을 내놓았지만 두 가지 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2007년 현재 한강을 관리하는 한강유역환경청에서 도암댐 상류지역의 오염원을 해결하기 위한 용역을 준비 중이라니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도암댐은 이미 댐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발전기능을 상실한 도암댐이 홍수조절용 역할을 한다지만, 하류에 있는 정선과 영월 지역민들은 오히려 도암댐으로 인해 2002년, 2003년 두 차례나 큰 홍수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도암댐 방류로 인해 겪는 지역민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환경운동연합 등의 환경 단체들이 도암댐 해체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도암댐 하류 주민들은 기능을 상실한 도암댐을 아예 해체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홍수조절 실패와 흙탕물 방류가 한강에 미치는 영향 등의 이유를 들어 댐을 해체 하자는 것이다. 지난 연말에는 영월과 단양지역 주민들이 또 다시 도암댐이 흙탕물을 방류하자 댐 해체만이 한강을 살린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단오제 때 본 강릉 시냇물은 빌려온 물

도암댐에서 방류한 흙탕물은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동강까지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놓았다. 흙탕물은 뻘을 만들고 뻘은 햇볕마저 차단시켜 강도래·날도래·하루살이 등의 수서곤충과 물풀 등의 수생식물마저 살 수 없게 한다.

수서곤충과 수생식물이 없는 강은 물고기 또한 살아갈 수 없다. 이제 곧 산란철이 다가오지만 물고기들은 뻘로 인해 산란장소를 찾기도 어렵다. 물고기가 없는 강은 새들조차 찾지 않는다. 생태계의 파괴는 도미노처럼 빠르고 신속하다. 물고기가 살아갈 수 없는 강은 인간이라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최근 강릉의 시민단체인 '강릉미래 100인 모임'은 성명서를 내고 국무총리실과 환경부에 도암댐의 방류 재개를 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남대천으로 흘러들던 도암댐 물이 멈추었지만 남대천 수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재방류를 요구하는 이유다. 건천화로 인해 죽어가는 남대천을 살리는 길은 도암댐 물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릉시는 지난해 단오제 행사를 준비하면서 남대천의 부족한 물을 급히 수혈받기도 했다. 당시 단오제를 찾은 사람들은 남대천의 물이 늘 그렇게 많은 줄 알겠지만, 실은 남대천의 건천화와 오염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쓸모없는 댐, 왜 그대로 두나

▲ 지난 해 11월 중순 정선 아우라지. 강 건너편 송천에서 흘러내린 두 물줄기의 물빛이 흙탕물이다. 사진을 보면 흙탕물이 연중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 강기희
2007년 3월 현재도 정선 조양강의 물은 혼탁하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오대천과 조양강이 만나는 지점과 도암댐 물이 흐르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에 가보면 흙탕물의 탁도를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송천의 상류인 대기천으로 올라가면 물은 아예 흙탕물 수준을 넘어 벌겋다. 거품도 일어 강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산촌마을인 한터 사람들은 연일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강릉수력발전소 관계자들은 최소 월 1회 정도 남한강물에 대한 탁도 조사를 한다고 밝혔지만 발전소 측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흙탕물 저감 대책에 투입되는 자금이 적은 데다 상류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원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암댐의 담수능력은 최대 5000만톤에 불과하다. 최대 저수량이 29억톤이나 되는 소양댐에 비교하면 도암댐은 아주 작은 댐이다. 전력생산도 하지 않는 도암댐이 아름다운 한강을 죽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를 단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용처도 없는 도암댐을 이대로 두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태그:#정선, #도암댐,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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