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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준 기자 군산 윤락가 화재현장 취재 3

지난 9월 19일 전북 군산시 대명동 윤락가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임OO(21)양의 일기에는 윤락여성들의 고민과 처지가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임양은 포주에게 1천여만원의 빚을 가지고 있다고 일기장 뒷면에 기록했다. 임양을 비롯한 윤락여성들은 대부분 빚을 가지고 있으며, 포주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그들의 빚을 늘려가면서 매춘행위를 강요했다.

또한 소개비 형식으로 얼마간의 돈을 주고받으며 윤락여성들을 다른 업소로 팔아 넘기기도 했다.


2000.6.23 아침 7시

어제 아가씨 1명이 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가는 것에 서운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언제 나도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솔직히 겁이 난다. 난 여기서 빚 다 까고(갚고) 여기서 마치고 싶은데... 어쩜 또다시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늘 하루를 보내게 한다.. 슬픈 일이다. 정말 슬프다. 돈! 돈이 뭔지? 그리고... 인생이 뭔지? 왜 꼭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많은 생각들을 해 본다.
과거 일, 현재 일, 그리고... 희망은 없지만 미래까지 생각의 결과는 늘 같다. 착하게 살아야지 신용 있게 돈 아끼면서. 솔직히 여기 와서 돈 무서운 줄 알게 되었다. 절약도 하고 동전 하나 아낄 줄 알고, 무섭다. 돈이 정말 무섭다. 아껴야지 돈 무섭게 알고 이 악물고 하루 빨리 빚 까서 자유의 몸이 될 거야.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 꼭 해낼 꺼야. OO 파이팅!


평소 친구가 많았던 임양은 특히 'OO'라는 이름의 친구에게 보내지 못한 상당수의 편지를 일기장에 적어 놓았다. 21살, 친구들과 만나 한창 수다를 떨 나이였지만 임양은 친구와 수다 대신 낯선 남자들과 몸을 섞어야했다. 임양은 친구가 그리웠다.

임양이 사망하기 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포주 없이 혼자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고, 마음 편히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사람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2000.7.13

사랑하는 친구 OO에게
오늘도 너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요새 가끔씩 악몽을 꿔. 아니 이곳에 온 뒤부터 악몽을 자주 꿔.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해.
OO야! 잘 지내고 있지? 보고 싶다.
벌써 반년이 지났구나. 너와 나 헤어진 것이...
난 아직도 네가 내 친구인데 네가 아니면 어떡하지?
너무 불안해 벌써. 네가 날 잊었을까봐.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꿈꿔. 그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너와 울 언니 내 동생 하루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근데 OO야 내가 여기서 벗어 날 수 있을까?
나 겁도 나고 자신도 자꾸 없어져.
넌 지금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밥 잘먹고 잘 지내고 있어 하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그래서 친구와 가족이 더 그리울 지도 몰라.
나 해낼 수 있겠지? 나 꼭 해낼 꺼야. 나 할 수 있어.


임양의 한 살 터울 언니는 누구보다도 임양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임양은 일기장 전체에 걸쳐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묘사했다. 이제 그 언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영정 앞에 그녀가 좋아했던 과자를 놓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날짜 없음)
화가 난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책임감 없는 내게 화가 난다. 지금에 나를 있게 한건 난데 왜 타인에게 잘 잘못을 따지는지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언니와의 전화 연결에 또 실패를 했다. 서운하고 걱정이 됐다. 오늘, 오늘은 별일 없었다. 그제... 조금, 조금, 쓸쓸한 기분만 맴돌 뿐...
쓸쓸하다. 외롭다. 왠지 모르게 우울해진다. 요새 며칠 심난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가끔 이런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싫다. 정말이지 싫다. 벌써 8월이 다 가고 있다. 곧 봄이 올텐데...
언니가 보고 싶다. 생각난다. 언니를 부대찌개 먹으러 갔던 날이 너무 보고 싶다. 언니도 내가 보고 싶을 꺼야. 빨리 빚을 갚고 내가 사랑하는 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다. 8월달이 빨리 왔으면 그때면 적금 끝 난 해방 그것도 고민 적금을 더 불릴까 아님 빚을 통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은 편하고 든든하다.
언니 아프지 말고 꼭 내가 갈 때까지 건강해야 돼
하느님 지켜주세요. 울 언니 내 동생.


20대에서 40대의 여성들이 모이는 곳. 임양은 자신도 이곳에서 40대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0.8.30 아침 6시 20분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두렵다. 너무 두려워 그 두려움을 받아 들이고 있다. 이곳엔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여자들이 모인 곳. 두렵다. 그래서 두렵다. 나 지금은 젊다지만 내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외롭다. 너무 외롭다. 남들은 내게 말한다. 애정 결핍이라고. 하지만 난 정을 느끼고 받고 싶다. 언니가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날짜 없음)
사랑하는 내겐 소중한 친구, OO
OO야! 지금 비가 내리고 있어. 넌 지금 출근 준비를 하고 있겠구나. 난 지금 퇴근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해.
너 생각나니? 예전에 우리 학창시절에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 네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 우리 집에서 너희 집까지 비 맞고 내가 너 보러 갔었던 일 생각난다. 비가 오니까 그때가 좋았는데. OO야! 나 네 친구지? 네 친구 맞지? 너는 날 버릴 수 있어도 나는 널 절대 버릴 수 없어. 그치만 겁이나. 어쩜 네가 벌써 나를 잊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게 해.
OO야! 나 많이 밉고 배신감도 느끼고 만나면 한 대 때려주고 싶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 지금 너무 힘들고 너가 하루에도 100 넘게 보고 싶어. 근데 그거 아니 OO야 그런 마음을 억제하고 참아야 하는 거 있지? 정말 너무 보고 싶어.
나 슬퍼지려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지금 내 심정을 어찌 이 작은 종이에 다 표현 할 수 있겠니. 이 다음에 너와 나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네 어깨에 기대어 말할 꺼야. 너무 보고 싶었다고, 괴롭고 외로웠다고, 펑펑 울면서.
야. 나 잘래. 졸린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야 돼. 그럼 안녕.
P·S 날 위해 기도 좀 해줘.


'손님'들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여지없이 성을 돈으로 산다. 그들은 그 때부터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일기장 곳곳에 이러한 '손님'들에 대한 분노 어린 표현이 나타나 있다.


2000.9.9 아침 6시경
오늘 울었다. 간만에 아니 여기서 처음으로 "개"진상을 만났다. 참고 또 참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참아야 했다. 너무나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언니! 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항상 그렇듯이 늘 나쁜 생각이나 나쁜 행동을 하기 전엔 언니를 떠올린다. 그래야만 진정이 되고 침착해지며 내일 훗날을 생각하게 된다.
근디 오늘은 나도 나의 참을성에 놀래 버렸다. 죽이고 싶었다. 그 새끼 죽이고 싶었다. 정말이지 옛날에 내 성격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그저 순하고 착하고 겁이 많아졌다. 사람이 아닌 돈에 겁이 많아졌다.
난 알고 있다. 돈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어쩜 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법칙을... 근데 어쩌지 아직 시작도 아닌 거 같은데 벌써 난 지쳐있어서. 아무튼 오늘은(Today) 재수 똥인 날!
제발 오늘은 아니 이 시간 이후로 다신 이런 날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빌며 재수 없는 일은 잊고 빨리 잠에 들어야겠다.
언니 잘 지내고 있지? 보고 싶다. 우리 빨리 만날 수 있겠지?
사랑해 하느님 지켜주세요. 마지막으로 오늘 아니 어제 제가 저지른 모든 잘못들을 용서하여 주세요.


그는 최근에 자신의 처지를 가족에게 말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날짜를 알 수 없는 다음의 일기는 그의 심적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집에 솔직히 얘기하고 나 좀 도와 달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용기...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다. ... 언니의 울음, 동생의 민망.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도와 주실꺼죠? 하느님, 도와주세요. 이 번만은 꼭!
저 살고 싶어요. 이번엔 정말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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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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