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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책사'(일 년에 책 한 권 내는 사람들) 사내 소모임에서 한 출판사를 방문했다. 각자 준비하고 있는 출판 아이템을 소개하고 의견을 구하는 자리였다. 지난 번 기사(관련기사 : 어머니를 "자기야"라고 부르는 아버지, 나도 결국...)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의 일책사 프로젝트는 '위기'에 봉착했다.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없으니 글쓸 게 없었다. 자연히 출판사에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다른 회원들이 아이템을 공유하는 동안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런 내게 출판사 대표님이 물었다.

"홍현진씨는 결혼 준비하면서, 힘든 점 없어요?"
"없는데요(웃음)."

그날 대표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결혼을 하면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안 겪을 수는 없더라고요.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게…. 저는 지금도 처가에 가면 어렵거든요."

"힘든 점? 없는데요"...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나와 곰씨가 살 집은 어디에? 사진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한 장면.
 나와 곰씨가 살 집은 어디에? 사진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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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집 구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 선배'들은 10월이 결혼식이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집을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곰씨와 나, 둘 다 월세를 내고 자취를 하고 있으니 집을 빨리 구해서 함께 사는 게 경제적이겠다 싶었다.

먼저 위치를 정해야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사회팀을 떠나 국제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기사를 쓰고, 상암동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현재 살고 있는 서교동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를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곰씨네 회사는 학동에 있다. 2호선을 타고 가다가 7호선으로 또 갈아타야 한다. 출장을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동으로 출근한다.

곰씨는 내근을 해야 하는 나를 배려해서 마포구 쪽에서 집을 얻자고 했다. 서교동·연남동·합정동·망원동을 후보로 정했다.

햇살이 좋은 토요일, 곰씨와 나는 우리 집 앞 부동산에서 만났다. 지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살짝 긴장했다. 한강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서 '1억짜리 전세 없냐'고 말했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S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건 우리는 S선배보다 예산이 2000만 원 더 많다는 것 정도?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 '은행 돈'이라는 거다.

학자금 끝나니 이제 전세자금... 아, '대출 인생' 

<오마이뉴스>에 입사한지 올해로 4년 차,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돈을 거의 모으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은 꼬박꼬박 월세·생활비 등으로 나갔고, 삼시 세끼를 다 밖에서 사 먹다 보니 무엇보다 앵겔지수가 높았다. 경제관념까지 없어서 월급을 규모 있게 쓰지도 못했다. 재테크 같은 건 영 머리가 아팠다. 나와 달리 곰씨는 숫자에 밝은 편이기는 했지만, 입사한 지 아직 1년이 안 돼 모은 돈이 얼마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20년 넘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줬으면 됐지 그 이상의 도움을 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곰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결혼식·예단·예물 모두 간소하게 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집이었다. 보통 남자는 집을, 여자는 혼수를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혼은 독립된 인격체의 결합인데, 왜 남자 쪽에서 더 큰 부담을 져야하는 건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부모님이 집 해준다는 친구들 보면 마음 한편으로 부럽고, 친구들이 '집은 당연히 남자가 해와야 하는 것 아냐?'라고 말하면 나도 모르게 솔깃할 때가 있다. 아, 이 얄궂은 이중성이여!)

다행히 곰씨가 저금리로 대출이 돼서 전세자금의 대부분은 대출을 받기로 했다. 학자금 대출 인생이 끝나니 이제 전세자금 대출 인생이다. 학자금은 천만 원이었지만, 이번에는 스케일이 비교도 안 된다.

"1990년대에 지어진 집이면 좋겠어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빌라들. 살기는 쉽지 않아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빌라들. 살기는 쉽지 않아요.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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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세 구하려고 하는데요. 가격은 1억에서 1억2000만 원 정도."

쭈뼛 쭈뼛 부동산 문을 열었다.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전세 매물이 별로 없단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보러오는데 처음에는 1억으로 시작해서 1억4000~5000만 원까지 올라가더라고요."

상담을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사장님에게 물었다. 

"저기 앞에 있는 아파트 27평(89㎡)이요. 3억 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없나요?"
"여기는 3억5000, 싸야 3억3000이에요. 그마저도 매물이 없어요."

곰씨와 나는 입모양으로 "3억(!)"을 말하면서 서로 눈빛을 나눴다. 우리에게는 지금 1억도 큰돈인데 3억이라니. 그 3억으로 27평 아파트도 못 사다니. 새삼, 집 앞에 있는 아파트 입주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원하는 집은 '당연히' 아파트는 아니었다. 그냥 지하철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깔끔한 빌라면 괜찮았다. 사장님이 말했다.

"1억2000이면, 연식이 얼마 안 되는 빌라는 전용이 10평, 12평 정도밖에 안 돼요. 좀 넓은 집은 대신 연식이 좀 오래됐죠." 

1억2000만 원에 10평(33㎡)이라니... 역시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980년대 말에 지어졌는데, 외풍도 심하고 손이 많이 가더라"며 "1990년대에 지어진 집이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사장님은 지금 당장은 매물이 없다며 일주일 동안 집을 찾아보고 다음 주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여기는 반지하도 1억... 매물이 없어요"

다음으로 들린 망원역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서는 직접 집을 볼 수 있었다. 사장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각자의 개성을 담은 작은 음식점, 작은 가게들이 정겨웠다.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에 나온 성미산 마을 입구도 보였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마을공동체' 속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보러 가기 전, 친구에게 "난 별로 기대치가 안 높아서 집 구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답했다. "과연 그럴까." 친구의 말이 맞았다. '좀 더 넓은 집은 없을까' '베란다가 있으면 좋겠는데' '여긴 지하철역에서 좀 머네'. 집을 보면 볼수록 욕심이 생겼다. 이날 본 집들에는 하나같이 찍은 지 몇 년 안 돼 보이는 웨딩사진이 걸려있었다.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막막한 마음으로 집을 구하려 다녔겠지'라고 생각하니 묘한 동지 의식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합정역. 6호선 라인에 직장이 있는 나와 2호선 라인에 직장이 있는 곰씨 모두 출퇴근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더블 역세권'이어서 그런지, 두 군데의 부동산을 갔지만 집을 아예 보지 못했다. 부동산에서는 말했다. "여기는 정말 전세가 없다"고.

"주인이 전세 올려달라고 그러면 (집) 내놨다가 며칠 뒤에 세입자들이 그냥 거기 살겠다고 그래요. 없으니까, 물건이…."
"반지하도 1억 원 달라 그래요. 여기는."

부동산을 나와 곰씨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아직은 처음이니까, 기다려보면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겠지. 그래도 괜스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그:#소박한 결혼, #결혼,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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