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올해 가을, 8년 사귄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 상견례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장도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계획은 그러하다.

스무 살 중반 이후, 수많은 결혼식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늘 같았다.

'아, 정신없다.'

몇십 분 단위로 하루에도 몇 건의 결혼식이 열리는 결혼식장은 거대한 결혼식 '공장' 같았고, 결혼식장에 가는 건 내게 하나의 '숙제'였다. 고백하자면, 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파를 보고 발길을 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소중한 사람들의 중요한 날을 축하해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들을 초대해서, 모두 함께 웃고 즐기는 결혼식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결혼을 결심한 이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다.

"결혼 준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영화 <멜랑콜리아>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
 영화 <멜랑콜리아>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
ⓒ 팝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행복한 결혼식'을 이야기하면서 꺼낼 영화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결국 주인공의 결혼은 결혼식이 끝나면서 파경을 맞는다) 영화 <멜랑콜리아>를 보면, 내가 꿈꾸는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가까운 사람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악기 연주도 하고, 춤도 추고. 마치 축제 같은, 한국으로 치면 잔치 같은 결혼식. 남자친구 곰씨('곰돌이' 아니죠, '곰'이다)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할 때면 늘 <멜랑콜리아>를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판타지'와 거리가 멀다.

"언니, 우리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하는 결혼식 하기 싫었지. 언니랑 똑같았어.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 난 주례 없는 결혼식 했잖아. 그거 하나 하는 데도 엄청 힘들었어."(대학 친구 M)
"야, 제일 소박하고 돈 안 드는 결혼식이 남들처럼 하는 결혼식이야."(초등학교 친구 A)

가족, 지인 100명 정도만 초대해서 일반 결혼식장이 아닌 곳에서 소박하고 검소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자, 공통적으로 나온 반응이다. 지난해, 같은 결혼식장에서 3개월 차이로 결혼식을 올린 재수학원 친구들은 내게 말했다.

"세상에 남들이랑 똑같은 결혼식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막상 결혼을 준비해보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 홍여사(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별명), 니가 진보적인 결혼식을 보여줘!"

그리고 덧붙였다.

"니가 결국 남들이랑 똑같이 해도 우린 다~ 이해한다."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의 결혼식 장면.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의 결혼식 장면.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관련사진보기


그러니까, 친구들 말은 이거다. 정해져있는 '결혼 패키지'에서 벗어난 것을 하려면 그게 다 돈이고 시간이고 정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 또 하나, 결혼은 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가족의 일'이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 생각도 해야 한다는 것. 지난 일요일 함께 당직을 선 <오마이뉴스> L선배는 말했다. 

"결혼식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거야."

우리 부모님이야 늘 딸의 생각을 존중해줬던 분들이니 설득해본다고 하더라도 곰씨네 부모님은 어떨까. 당장, 양가 부모님 손님까지 생각하면 하객 총 100명은 어림도 없다. 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결혼식이 부모님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처음 내 '구상'을 듣고는 "그냥 평범하게 하면 안 돼?"라고 말했으니). 곰씨는 "부모님 인생에서도 자식의 결혼은 중요한 일"이라면서 "부모님도 고려해야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리가 있다. 

"결혼식을 여러 번 나눠서...", "합동결혼식은?"

이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객수를 늘려서 200명으로 한다면, 장소가 문제다. 애초 생각했던 레스토랑 결혼식은 일단 어렵고, 일반 결혼식장에서 패키지로 하는 결혼식은 정말 하고 싶지 않고, 공공기관 결혼식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고민이 깊어지자 곰씨는 "그냥 결혼식을 다 불러서 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번 나눠서 가족들이랑 한 번 하고, 친구들이랑 한 번 하고 그러는 건 어때"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폐교를 개조해서 교육공간으로 만든 강화도 불은면에 위치한 오마이스쿨(자료사진).
 폐교를 개조해서 교육공간으로 만든 강화도 불은면에 위치한 오마이스쿨(자료사진).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다가 떠오른 곳이 있었으니 바로 강화도 오마이스쿨. 강화도의 한 초등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교육공간으로 만든 곳인데, 운동장이 있으니 수용인원은 걱정 없고 강당, 식당도 있다. 30분 결혼식 하고, 단체사진 찍고, 밥 먹고 '안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은 나와 곰씨에게는 딱인 것 같았다. 숙박시설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접근성이 걸린다. 결혼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보니 준비하는 데 생각 외로 비용이 더 들 것 같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K선배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혼식은 보통 형식적이니까, 한 번 독특하게 해보면 재밌겠네. 음식 같은 것도 사회적기업에서 케이터링 같은 거 해주는 데 찾아서 하면 좋을 것 같고. 올해 회사에 결혼할 애들 많다니까 아예 합동결혼식을 하면 어때?"

그러자 바로 L선배로부터 "무슨 통일교도 아니고...그럼 교주가 오 대표(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야?"라는 반응이 나왔다.

오마이스쿨에 가본 적이 있는 인턴 동기들도 적극 찬성했다.

동기 : "좋다. 강화도에서 하면, 정말 올 사람만 오겠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나 : "정말 몇 명 안 오는 건 아니겠지..."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하느냐'고?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한 장면.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한 장면.
ⓒ JTBC

관련사진보기


언제부턴가 결혼은 '비즈니스'가 된 지 오래다.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보다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예단 삼총사(이불, 반상기, 수저세트)' 같은 결혼 용어를 듣고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놀랐던 건, '현금 예단'. 현금으로 얼마를 신랑 측에 보내면 시댁에서 그 중 얼마를 결혼 준비하라고 신부 측에 돌려준단다. 얼마 전에 결혼한 개그맨 정경미는 "현금 예단 1000만 원을 시어머니에게 드리고, 500만 원을 돌려받았다"고 방송에서 공개한 적이 있다. 액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몇 백만 원 마련하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돌려줄 거면 왜 그 큰돈을 주고받는 걸까.

여기에 예물, 함, 이바지 음식...요즘에는 신부 화장품이나 가방 사라고 주는 '꾸밈비'라는 것도 있단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결혼 준비 하다보면 돈이, 돈이 아니다"라는 토로가 나오는 이유다.

나는 나와 곰씨가 오롯이 서 있는 결혼을 하고 싶다. 정해져있는 결혼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나와 곰씨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택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직접, 그리고 함께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냥 하면 될 일이지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결혼식을 꼭 해야 해? 그냥 동거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찌됐든 나는 결혼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렇다면 내 가치관을 지키는 방식으로 하고싶다. 결혼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의 결혼식'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말처럼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고, 나는 조금은 다르게 하고 싶을 뿐이다. 아마 난관이 많을 거다. 부모님과의 조율도 필요할 거다.  이러다가 '패키지 결혼식'으로 '급선회'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혼준비는 시작되었다.


태그:#결혼, #결혼식, #스드메, #예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