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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나는 <오마이뉴스> 선후배들과 함께 소모임을 하나 하고 있다. 소모임의 이름은 '일 년에 책 한권 내는 사람들'의 약자인 '일책사'. '일 년에 책 한권을 내자'는 목표를 정하고, 서로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조언도 해주는 모임이다. 출판사를 방문해 강의를 듣기도 한다. 모임 비용의 일부는 노동조합에서 지원한다.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매일 같이 글을 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글'을 못 쓰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입사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 이외의 글은 거의 쓰지 못했다. 하지만 연차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글을 엮어 책을 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책사'에 가입했다. 책의 주제는? 지금 쓰고 있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였다.

위기에 봉착한 '소박한 결혼' 책 만들기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한 장면. 결혼 준비로 어려움을 겪던 혜윤은 "우리 사랑은 현실에 졌어"라며 정훈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한 장면. 결혼 준비로 어려움을 겪던 혜윤은 "우리 사랑은 현실에 졌어"라며 정훈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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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오마이뉴스> S선배. S선배는 전직 기자 출신 예비 신부와 함께 블로그에 결혼 준비기를 연재할 예정이었지만, 결혼 일정이 생각보다 급하게 잡히면서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경쟁자도 없어(?)졌겠다.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책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데 또 다른 난관이 등장했다. 바로, 상견례에서 양가 부모님 모두가 우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갈등구조'가 사라졌다는 것. 모두가 알다시피, '이야기'의 재미는 '갈등'에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다들 국어시간에 배우지 않았는가.

또 다른 난관은 나와 '곰씨'가 딱히 '결혼 준비'를 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상견례 완료. 결혼식장 예약 완료. 신혼여행 예약 완료. 결혼식이 10월이니 벌써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닐 수도 없고, 웨딩 촬영은 안 하기로 했고, 예단이랑 예물도 양가가 각자 간소하게 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어떻게 하면 특별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여름 지나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결혼 준비 잘 돼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다. 그러고 보니 책이 문제가 아니라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연재도 위기를 맞은 건 아닐는지….

'일책사' 회원님들께 조언을 구했다. 이날 일책사 모임에서는 주옥같은 아이템이 많이 나왔다. 회원님들은 서로의 아이템에 대해 따스하고도 날카로운 조언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이라면 내 고민도 해결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책으로 만들기 프로젝트'에 닥쳐온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순간, 모두가 얼음땡이라도 맞은 듯 조용해졌다. '저… 저기…요. 이 사람들아.' 그러던 중, 후배 '털보'님이 입을 열었다.

"아… 잘 됐는데, 어렵네요."

동기 '오로빌'님도 거들었다.

"그러게. 어렵네. (멋쩍은 듯) 하하."

선배 '방짜'님이 사태를 수습했다.

"우리 모토는 그냥 고(Go)야, 고(Go)! 쓰다보면 답이 나올 거야."

'소박한 결혼'이 낳은 것 중 하나 '시간'

소박한 결혼을 택하니 시간이 남는다.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소박한 결혼을 택하니 시간이 남는다.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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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결혼'을 택하고 난 뒤, 나와 곰씨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친구들, 회사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 곰씨를 부르려고 한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체육대회가 열리던 날(4월 13일)에는 대전까지 곰씨를 데리고 갔다. 자주 봐야 친해지는 거니까. 승부욕 때문인지, 회사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그런지 곰씨는 정말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축구 경기를 하다가 넘어져 작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주말에는 곰씨네 가족들과 함께 주문진에 다녀왔다. 이날 나들이에는 곰씨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가 함께했다.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앉아 회도 먹고 '쏘맥'도 마시고, 어시장 구경도 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나는 애정표현에 서툴다. 어린 시절, TV에서 가족들끼리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엄마, 아빠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가족끼리 간지럽게 와 저런 소리를 하노. 말 안 하면 모르나."

곰씨네 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놀란 것은, 곰씨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기야"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에게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으니까. 서른 해를 살면서 나는 엄마 아빠가 팔짱을 끼고 걷는 것도 본 기억이 없다. 아빠는 늘 저만치 앞서서 걸어갔고, 엄마는 "너거 아빠는 와 저래 빨리 걷노"라며 뒤따라 가곤 했다. 

그래서일까. 곰씨와 만나면서도 말로 또는 몸으로 하는 '표현'은 늘 내게 어려운 문제였다. "보고 싶다"는 말도 간지러울 정도였으니. 하물며, 곰씨 부모님에게는 어떻겠나. 아직도 나는 곰씨 부모님께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말을 잘 못하겠다. 이런 내 성격을 잘 아는 부모님은 상견례 때 "며느리가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서 어떻게 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너 방금 '어머님'이라고 그랬니?"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고령화 가족>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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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곰씨 어머니 생신 날, "생신 축하드린다"고 전화를 했다. 물론 내가 먼저 한 건 아니고, 곰씨가 전화를 걸어서 바꿔줬다. '애교' 따위 가져본 적이 없는 내게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잘 웃는다는 것이다. 조금 실없어 보인다는 단점이 있지만,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에 웃음만큼 좋은 건 없다. 이날도 '허허' 웃으며 통화를 했다. 

"하하. 제가 일이 늦게 끝나서 이제 연락 드려요. 하하. 생신 축하드려요."

그러자, 곰씨 어머니 말씀. 

"어머, 현진아. 너 방금 어머님이라고 그랬니?"
"(당황하며) 아, 네? 하하하."
"어머님 소리를 자주 해야지 예뻐하는 거야."
"아, 네. 하하하. 어머님. 하하하." 

'어머님' 소리를 정말 듣고 싶으셨구나. 어른에게 이런 말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씨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엄마도 처음에는 할머니한테 살갑게 못했다고 하더라"면서 "점점 친해지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에는 곰씨가 부산 우리 집에 가기로 했다.

결혼은 두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나는 결혼이, 상대방의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돼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그래서 낯도 많이 가리고, 살갑지도 못한 성격이지만 하나 하나 조금씩 노력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곰씨네 가족이 내게도 '가족'이 될 테고, 우리 가족도 곰씨에게 그런 존재가 되겠지. 결혼 준비 기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태그:#소박한 결혼,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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