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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친구의 장례식을 치른 장례식장
ⓒ 이승철
며칠 전에 친구 한명을 또 보냈습니다. 2년 전에도 한명을 보냈는데 올해 또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지난 7월 모임에 나와서 음식도 잘 먹고 웃고 떠들던 모습이 생생하던 친굽니다.

친구는 지난 7월 하순 모임에 참석했다가 돌아간 후 몸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병원을 찾았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형선고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설마 오진이겠지 하는 믿기지 않는 마음에 큰 병원 몇 군데를 찾아 정밀 진단을 마칠 때까지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BRI@그때가 8월말 경,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한 후에야 가족들에게 알리고 친구들에게도 알렸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지요,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라니.

그러나 결과는 너무 참담했습니다. 한동안 소식을 끊고 요양 중이라는 친구를 수소문 끝에 지난 10월 중순 안성의 한 요양소에서 문병할 수 있었습니다.

"나 폐암에 간암, 그리고 위암 말기래. 현대의학으로도 손을 써볼 수도 없다는구먼. 그냥, 사는 날까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맘껏 먹고 즐겁게 살다 가래,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거야."

친구의 말을 들으며 모두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죽으리라는 그의 말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종류의 암에도 견디기 어려운데 세 가지 암이 모두 말기라니 분명히 사형선고였습니다. 더구나 현대의학으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는 그냥 포기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할 수 없이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한 평생 참 허망하기 짝이 없어,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움켜쥐고 욕심 부려보았댔자 다 부질없는 짓이야. 욕심 부리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들 살아."

친구가 유언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저 장의버스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실어날랐을까?
ⓒ 이승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 친구는 내가 듣기에도 어떻게 저런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가 늑막염에 걸렸는데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거의 죽게 되어서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수술비를 낼 돈이 없어 그냥 병원에서 쫓겨나 가슴에 고름이 고여 썩어가는 것을 농사에 쓰는 비료를 치료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며 자라 그야말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이런저런 일을 하며 자수성가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딸 4남매를 잘 키워 위로 셋은 출가를 시키고 막내만 남은 상태인데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지금은 상당한 재력도 갖춰서 남은여생은 걱정 없이 살 정도가 되었는데 덜컥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 것인데…. 이 죽음이라는 것, 담담하게 받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 좀 여유롭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것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의 표정이 처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할 말을 잊었지요. 생의 마지막이 눈앞에 다가온 친구를 무슨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친구들에게 그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모두들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친구의 고생스러웠던 과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목에 메어 기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한동안 울먹이며 기도를 끝내고 친구들을 돌아보니 모두들 눈자위가 붉게 충혈 되어 있더군요.

그날 문병 후로 그 친구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미망인은 그동안 남편의 병수발과 상심으로 몹시 지친 표정이었습니다.

"나중에 병세가 심해져서 통증치료차 다른 병원으로 옮긴 후 고통이 심해져서 친구들이나 가까운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워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문상을 한 후 친구들이 위로하자, 미망인은 오히려 우리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리고 고통을 당한 기간도 짧아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친구는 처음 병을 알았을 때처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한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모두가 또 한명의 친구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2년 전에도 역시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늦게 도착한 친구 한명이 문상을 하고 나오면서 눈물을 보입니다. 목이 메어 다른 친구들에게 인사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친구를 보며 새삼스럽게 모두들 다시 숙연해졌습니다.

"살아있는 친구들은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죽은 친구에 대한 연민이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죽음은 사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건데, 왜 친구의 죽음이 이렇게 충격적이지? 몇 년 전에 큰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오히려 이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 철길너머 눈덮인 평택들녘이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입니다
ⓒ 이승철
문상 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모두들 생각에 잠기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나도 3년 전에 70대 후반이던 맏형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피를 나눈 형제인 맏형님의 부음을 듣고도 사실 큰 충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70대 후반이니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맏형님의 살아온 과정에 대한 어떤 아쉬움이나 연민 같은 것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친구 두 명을 보내는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마음이 썰렁하고 스산한지, 그렇다고 이번에 죽은 친구는 뭐 대단한 우정을 나눈 친구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로 인하여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것과 함께 알 수 없는 허탈감으로 빠져 드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 밖으로 나와 둘러본 평택 들녘이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하얀 모습이었습니다. 세모의 깊어가는 겨울 들녘이 더욱 황량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튿날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올라왔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죽은 친구의 웃음 띤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요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나만의 특종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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