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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위로가 되는 공간
ⓒ 김수자
오른쪽 윗니가 아픈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치과를 가는 일은 산부인과를 가는 것만큼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 미룹니다. 한 열흘 오른쪽 이들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왼쪽 이들이 피로해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든 이들이 "더는 씹지 않겠다!"고 파업을 선언할지 모릅니다.

가까운 곳에 치과가 있지만,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버스 타야 하는 곳으로 갑니다. 먼저 아파 본 사람들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지요. 도착하자마자 치아 사진을 찍고 진단을 받습니다. 6번 이에 금이 갔다고 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전체적으로 약한 몸에서 이만 속을 썩이지 않아 질긴 것, 단단한 것 마음대로 씹어댔고, 때로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악물기까지 했으니까요.

금 간 이 한쪽을 떼어내고 신경 치료를 한 후 남은 이에 금이나 도자기를 씌워야 한다고 합니다. 침대에 누워 '아∼아' 입을 벌립니다.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고통과 나를 분리해야 합니다. 어디선가 가녀리게 들려오는 클래식의 선율에 귀를 세웁니다. 무언가가 막 끝나고 베토벤의 <운명>이 시작됩니다.

"빰빰빰 빠암 빰빰빰 빠암∼∼." 입 안으로 의사의 손과 기구들이 들락날락할 때 들어도 역시 명곡은 명곡입니다. "자, 아프실 겁니다. 따끔합니다." 친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 <운명>이 끝나더니,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어집니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러시아의 서정이 감은 눈앞으로 펼쳐집니다.

"꽤 오래 걸리죠? 아직도 십 분은 더 해야 합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의사의 친절이 놀랍습니다. 작은 입 안 한쪽 구석의 이를 연마하느라 정작 힘든 건 자신일 텐데 오히려 누운 사람을 위로합니다. "입이 작아 힘드시죠?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취한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어느새 바이올린 곡이 끝나고 볼레로가 흐릅니다. 몸은 얌전히 누워 있지만 머릿속은 볼레로 무도장입니다. 연마를 하는 의사의 손이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파가니니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손입니다. 마취로 굳은 입인데도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흰 가운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알아채지 못하게 얼른 냉정을 회복합니다.

4년 전 여름, 복부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은 환자복에 갇히고 손엔 링거 주사가 꽂혀, 움직일 때마다 링거액이 매달린 행어를 끌고 다녀야 했지만 음식을 먹지않으니 머리가 유리알 같았습니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음악 소리가 유혹하는 대로 병실을 벗어났습니다. 이 방 저 방 고통으로 신음하는 방들을 지나 느릿느릿 걷다 보니 복도 천장 한쪽에서 파헬벨의 <캐논>이 쏟아졌습니다. 일생 동안 들어본 <캐논> 중 가장 아름다운 <캐논> 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그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 다른 종류의 <캐논>이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여러 종류의 <캐논>을 모아 놓은 CD가 있다는 걸 몰랐고, 그냥 누군가 제게 <캐논> 축복을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자라는 상태가 불행의 옷을 입은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힘드셨죠. 다 되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까지 뜨거운 것 드시지 말고 오른쪽으론 음식물이 가지 않게 하시고 혹시 아프시면 진통제 드시고…" 주의 사항이 이어집니다. "혹시 바이올린 연주하세요?"라고 묻고 싶은 걸 꾹 참습니다.

이 치료가 아주 끝난 후에 물어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무얼 묻는 대신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곡이 담긴 CD를 선물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마취로 굳어 있던 입이 서서히 풀려 갑니다. 돌아가면 입은 덜 움직이고 귀로 많이 들어야지, 긴 반성에 어울리게 긴 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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