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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비추는 가을날의 창가
ⓒ 김수자
이상하지요.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 다른 얼굴이 떠오릅니다. 전화가 암호가 되어 과거로 가는 문을 열었나 봅니다. 읽던 시집을 덮고 아직 덜 바랜 잎들이 툭툭 떨어지는 길로 나섭니다. 바쁜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남겨두었던 발자국은 그리다 둔 그림인가 봅니다. 옛 그림을 지우는 붓질처럼 무수한 발길이 더해집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그 창가에 앉은 건 얼마만일까요. 그와 걷던 거리, 그와 들르던 밥집과 찻집, 책방까지 다 눈에 들어옵니다.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둘이 함께 망설이던 조그만 삼거리도 보입니다. 젊음이란 어쩌면 망설임의 다른 말일지 모릅니다.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된 후에도 발은 늘 김유신의 말처럼 그곳을 향했지만, 한동안은 가지 못했습니다. 낯익은 커피 향내는 물론 그곳으로 가는 길목의 비 내음 속에까지 늘 그가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나서 아주 가끔, 높은 산을 오르듯 힘겹게 이층 계단을 올랐습니다.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어느 새 먼저 온 그가 앞에, 옆에 앉아 있곤 했지만 만질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와 만났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약이란 말도, 나이 들면 무뎌진다는 말도 반 거짓입니다. 시간은 얇은 껍질을 말리는 가을 햇살 같은 것, 깊은 기억들은 오히려 시간의 숫돌에 날을 세웁니다.

점점이 빗방울이, 사위어가는 것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굿 윌 헌팅>의 '숀'처럼 속삭입니다. 다독임 한마디에 간신히 남아 있던 기억 창고의 밀랍 봉인이 녹아 버리지만 그녀는 '윌'보다 어른이니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창고 속을 응시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안개가 자꾸 몸을 키워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빗줄기가 거세어지고 유리창은 맑아집니다. 강물이 된 횡단보도엔 구명조끼 같은 우산들이 가득합니다. 어느 우산 속에 그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삼거리에도 그가 있습니다. 커피는 마침 그냥 검은 물입니다.

젖은 계단이 자꾸 발목을 잡습니다. 비가 오는데 어딜 가느냐고. 오래 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계단 끝엔 망설이는 젊음이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저 빗길로 나가자고? 그러지 말고 이층 카페로 가자.

“함께 있을 수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젊음은 어쩌면 아직 모름의 다른 말일지 모릅니다.

젊지 않아 망설이지 않는 여인 하나가 비의 세상으로 나섭니다. 금세 신발 가득 빗물을 담고 찰박찰박 기쁜 얼굴입니다. 누군가의 우산 끝에서 날아 온 빗방울이 호숫가로 날아드는 작은 새처럼 그녀의 눈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런, 새가 아니고 마중물이었나요. 그녀의 호수가 열려버렸나 봅니다. 용케도 눈물과 빗물을 구분하는 행인들이 그녀를 흘깃거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빗줄기처럼 빠르게 사라진다는 걸.

그를 잃고, 그와의 망설임을 잃고 모든 설렘을 잃고, 무수한 시를 읽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고, 숱한 깨달음과 다짐 끝에 그녀에게 남은 건 아마도 자유입니다.

백 년 전 바다에
백 년 뒤 비가 오고 있었다. 젖은
그의 눈에 내리다 마는 나는 빗줄기였다


이성복의 시 마지막 연이 느릿느릿 그녀의 젖은 머리 속에 지친 새처럼 내려앉습니다. 마침내 가을입니다. 추억을 비추는 거울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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