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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경/그림 김수자 기자

▲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다락.
ⓒ 김수자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우리 집에는 다락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뾰족한 지붕 아래 햇살 가득 들어오는 이층집 예쁜 다락방 말고, 그냥 안방 옆에 붙은 창고 같은 다락이었지요. 벽장을 열면 나무 계단 두 개가 나타나요. 바로 그 위에 시렁마다 보따리, 보따리가 가득하고 온갖 살림살이가 차곡차곡 쟁여 있는 다락이 있었습니다.

해도 비추지 않는 다락은 컴컴하고 싸늘한데다, 이따금 사람 손도 타지 않았는데 물건이 ‘덜컥’하고 떨어지는 일도 있어서, 어린 내겐 두렵고 무섭기 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간해선 내 손으로 다락문을 열지 않았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찌감치 학교를 파해 혼자 집에 와서 언니, 오빠를 기다리자니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집에 올 언니를 놀래주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언니는 나보다 키도 크고 불퉁거리기도 잘했지만, 그런 반면 겁도 많고 놀래기도 잘해서 내겐 종종 좋은 놀림감이 되곤 했지요.

나는 이 궁리 저 궁리 하다 다락에 숨기로 했습니다. 내가 다락에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지 아는 언니니까 막상 내가 거기서 툭 튀어나오면 얼마나 기겁을 할까. 생각만 해도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습니다. 언니가 집에 올 때쯤 나는 다락으로 올라갔습니다. 시큼한 공기 냄새에 숨이 턱 막혔지만 좋은 구경을 하기 위해 그 정도는 참기로 했습니다.

이윽고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방으로 부엌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얘 어디 갔어?" 하는 소릴 들은 것도 같은데 그뿐, 도무지 나를 찾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투덕투덕 싸우기는 잘해도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하는 찰떡같은 자매사이인데, 그날은 좀 이상했습니다. 언니는 날 찾는 대신 엄마랑 무슨 얘길 소곤소곤 정답게도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 엄마 앞에서 한없이 무뚝뚝하기만 하던 언니가 말이지요.

게다가 여느 날 같으면 집에 오자마자 야구하자 권투하자, 나를 들볶을 오빠마저 이 날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 발로 올라갔는데 어느새 유배당한 기분이랄까. 맥이 탁 빠졌습니다. 춥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그냥 나가기는 싫었습니다. 칼을 뽑았으면 두부라도 잘라야지. 나는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습니다.

혹시 내가 장난치는 걸 알고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는지도 몰라. 그렇다면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지.

더 이상 숨바꼭질이 문제가 아니었지요. 자존심 문제였어요. 나는 다시금 전의를 가다듬고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모두를 기겁하게 하고, 나의 놀라운 참을성까지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순간을. 그렇게 컴컴한 다락에서 바깥 동정에 잔뜩 귀를 세우고 있는데, 어느 순간 언니랑 오빠랑 엄마가 다정하게 얘길 나누는 소리가 꿈결인 양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만날 언니를 울리기나 하던 오빠가, 만날 오빠에게 불퉁대기나 하던 언니가, 만날 조용하라고 소리나 치던 엄마와 함께 얘길 나누다니요!

나는 차디찬 다락에 오도카니 앉아서 짧은 생을 반추했습니다. 야무진 심부름꾼으로, 김추자 흉내를 곧잘 내는 재롱둥이로, 책 잘 읽고 말 잘하는 똑똑한 재간둥이로 살아온 세월이었지요. 내가 없으면 답답하고 심심해서 못살 듯이 굴던 식구들이, 내가 없어도 없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지내는구나. 비로소 삶의 어둔 한 자락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잘 지내는구나.'

앞으로의 인생에서 숱하게 만나게 될 그 생각에 나는 그날 처음 닿았습니다. 내가 없어도, 내가 없어도, 식구들은 밥을 먹고 아침에는 해가 뜨고 새들은 노래하는구나. 섬뜩한 추위를 더는 이기지 못하고, 아마도 울면서 다락을 내려왔던 것 같습니다. 제 설움을 드러내도 좋은,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시간은 흐르고 어린 나이도 나를 떠났습니다. 우리 식구도 다락이 있던 집을 떠나 깨끗한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새 집에는 다락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 후로도 서너 번 더 이사를 다녔지만 다락이 있는 집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신, 세월과 함께 내 마음 속에 다락이 생겼습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가는구나 싶어 설움이 가슴에 차오를 때면, 나는 내 마음의 다락으로 올라갑니다. 스스로를 컴컴한 다락에 유폐시킨 채, 여전히 바깥의 동정에 귀 기울이는 자신을 쓸쓸해합니다. 그렇게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락이 “됐어, 이제 됐어” 하고 가만히 나를 일으킵니다.

누군가의 의미가 되지 못할 때, 그 ‘누구’를 지우는 대신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자신’을 지우는 데 익숙해진 사람에겐 저 만의 다락이 있을 겁니다. 그 다락을 떠올리면, 사람이 더 이상 밉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잊고 지냈던 영감을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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