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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깃쫄깃 말복 입맛 북돋우는 닭백숙
ⓒ 이종찬
육해공군을 총망라한 복날 보양식

9일(수)은 삼복더위의 마지막이라는 말복(末伏)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초복, 중복, 말복이 되면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등 여러 가지 보양식을 즐겼다. 이는 무더운 여름철, 땀으로 빠져나간 온몸의 허한 기운을 북돋워주는 것은 물론 잃어버린 입맛까지 되찾아주는, 우리 조상들의 음식에 대한 슬기와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재미나는 것은 복날 먹는 음식이 땅과 하늘, 물에서 자라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복날 먹는 보양식이라는 것이 육군(개)과 공군(닭), 해군(미꾸라지)을 총 망라하고 있다는 그 말이다. 게다가 그 동물을 그냥 푹 고아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에 따라 그 음식에 맞는 갖가지 재료와 한약재까지 넣어 음양의 조화까지 이루어낸 것이다.

그중 삼계탕과 닭백숙은 특히 한약재를 많이 사용한다. 흔히 우리들이 자주 먹는 삼계탕과 닭백숙은 밤과 대추, 인삼, 마늘, 황기, 녹각, 구기자, 음나무, 가시오가피 등을 넣어 1시간 이상 푹 고은 음식이다. 그러므로 삼계탕과 닭백숙은 그냥 닭고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보약을 고아 먹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닭백숙은 마당에 놓고 기르는 씨암탉이 최고다
ⓒ 이종찬

▲ 생닭을 흐르는 물에 개끗히 씻는다
ⓒ 이종찬
여름철 먹는 삼계탕과 닭백숙은 오장육부의 질병 다스리는 약

삼계탕과 닭백숙 외에도 닭으로 만드는 조리는 닭곰탕, 닭튀김, 닭찜, 옻닭 등 수없이 많다. 특히 옻닭은 닭과 옻나무 껍질을 함께 삶은 것으로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옻닭은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특히 좋고, 여성의 냉증이나 생리불순, 술로 손상된 간 기능 회복, 남성 정력 강화, 항암치료 등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전통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에는 기(氣)를 보해야 한다, 이때 양기가 몸의 겉 부분에 떠올라 피부에서 흩어지면 뱃속의 양기(陽氣)가 허해진다"라며, 여름철 인삼, 대추 등 한약재를 넣은 삼계탕이나 닭백숙, 옻닭 등은 오장육부의 질병(심부전, 고혈압, 동맥경화증, 빈혈증, 당뇨병)을 다스리는 훌륭한 약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하지만 옻닭은 조심해야 한다. 특히 옻나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옻닭을 먹으면 온몸에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삼계탕이나 닭백숙은 체질과 나이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나 먹을 수 있다. 특히 한약재를 많이 넣는 삼계탕과 닭백숙은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은 닭고기와 영약으로 알려진 인삼이 서로 만나 빚어낸 그야말로 환상적인 여름 보양식이다.

<동의보감>에는 "삼계탕에 첨가되는 인삼은 심장기능을 강화하고 마늘은 강장제 구실을 하며, 밤과 대추는 위를 보하면서 빈혈을 예방하고, 호박씨는 남과인(南瓜仁)이라고 하여 기생충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이어 삼계탕은 "몸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소음인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덧붙여놓았다.

▲ 요즈음 닭집에 가면 닭백숙에 필요한 한약재를 비닐봉지에 넣어 판다
ⓒ 이종찬

▲ 솥에 한약재를 넣는다
ⓒ 이종찬
"요즈음에는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왜? 이 냄새가 맡기 싫어?"
"아니. 하도 향긋한 냄새가 나서."
"오늘 복날이잖아. 그래서 아빠가 맛난 닭백숙과 닭죽을 만들고 있지."

"닭백숙? 닭죽? 에이~ 나는 닭튀김이 더 좋은데…."
"먹어 보고 말해. 맛없다고 하면 아빠가 닭튀김 시켜줄게. 어때?"
"정말 맛있어. 근데 이걸 어떻게 만들었어?"
"요즈음엔 닭집에 가면 닭백숙 만드는 재료를 다 팔아. 그냥 닭을 깨끗이 씻어서 물을 붓고 삶기만 하면 돼."


9일 말복 오전, 보양식으로 닭백숙을 만들어 먹기 위해 가까운 상가에 생닭을 사러 갔다. 생닭 한 마리 작은 것은 4천 원, 큰 것은 5천 원이었다. 작은 닭 3마리를 산 뒤 주인에게 한약방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때 주인이 씩 웃으며 "여기 닭백숙을 만들 때 필요한 모든 재료가 다 있는 데 한약방은 왜 찾아요?" 한다.

정말 그랬다. 그 닭집에는 닭백숙을 만들 때 들어가는 각종 한약재가 든 비닐봉지와 찹쌀, 마늘 등을 한꺼번에 다 팔고 있었다. 속으로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약재와 찹쌀, 마늘도 같이 달라고 하자 덧붙이는 주인의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요즈음에는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문제는 돈이지요."

▲ 찹쌀을 미리 불려놓는다
ⓒ 이종찬

▲ 생닭이 잠길 정도로 불을 붓고 한약재를 넣어 센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중불에서 1시간 정도 끓여낸다
ⓒ 이종찬
생닭을 물에 씻은 뒤 각종 재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그만

삼계탕이나 닭백숙을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쉽다. 닭가게 주인 말마따나 돈만 있으면 여러 곳 다닐 필요도 없이 한 곳에서 삼계탕이나 닭백숙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다 살 수 있다. 그저 생닭을 물에 씻은 뒤 같이 사 온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물을 적당량 부어 1~2시간 푹 삶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삼계탕은 중닭의 뱃속에 미리 불려둔 찹쌀과 대추, 밤을 넣고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실로 삼아 꿰맨 뒤, 포장된 한약재를 넣고 그대로 푹 삶으면 끝. 이때 물은 중닭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붓는 것이 좋고, 센 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면 중불에서 1시간 쯤 더 익히면 된다.

닭백숙과 닭죽을 끓이기는 더욱 쉽다. 닭백숙은 생닭을 물에 깨끗이 씻은 뒤 한약재와 함께 솥에 넣은 뒤 닭이 포옥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센 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중간 불에서 1시간 정도 더 익히면 된다. 그리고 집에서 기른 씨암탉이나 시장에서 사온 닭고기가 조금 질기다고 여겨질 때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푹 삶으면 고기가 아주 연해진다.

닭죽은 닭백숙을 건져낸 국물에 미리 불린 찹쌀을 적당량 넣고 한번 더 끓여 소금으로 간만 하면 그만이다. 이때 미리 건져낸 닭고기의 살을 닭국물에 잘게 찢어 넣고 불린 찹쌀과 함께 끓이면 더욱 맛있는 닭죽을 맛 볼 수 있다. 닭죽을 먹을 때에도 입맛에 따라 잘 익은 깍두기나 열무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도 별미.

▲ 맛깔스럽게 잘 끓여진 삼계탕
ⓒ 이종찬

▲ 졸깃쫄깃 잘 익은 닭백숙
ⓒ 이종찬
삼복더위 집어삼킨 향긋하고도 쫄깃한 닭백숙과 닭죽

"아빠! 앞으로는 일요일 저녁마다 고기도 돌아가면서 해 먹자."
"그게 무슨 말이냐?"
"첫째 일요일 저녁은 삼겹살, 둘째 일요일 저녁은 수제비, 셋째 일요일 저녁은 닭백숙을 만들어 먹고, 넷째 일요일 저녁은 닭튀김을 시켜먹자."
"일요일마다 아빠를 아예 너희들 종살이 시키려고 그러냐?"


무더운 말복 점심나절. 큰딸 푸름이와 작은 딸 빛나와 함께 마루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맛나게 먹는 닭백숙과 닭죽. 삼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 두 딸과 함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직접 만든 닭백숙과 닭죽을 먹는 그 즐거움. 그 향긋하고도 쫄깃한 깊은 맛을 이 무더운 여름철이 아니면 어찌 느낄 수 있으랴.

▲ 말복, 닭백숙 먹고 무더위 훨훨 날리세요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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