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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분들은 뽀오얀 황태국 한 그릇 드세요
ⓒ 이종찬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그댄 너무 아름다워요
그댄 너무 부드러워요
그댄 너무 맛있어요
-강산에, '명태' 몇 토막


▲ 강원도 인제군 북면 황태먹거리촌에 있는 황태조리 전문점 '송희식당'
ⓒ 이종찬

▲ 잘 말린 황태
ⓒ 이종찬

먹는 순간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약이 되는 황태

티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른 동녘바다에서 사시사철 잡히는 명태. 먹는 순간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 되"는 명태. 조리를 할 때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정말 맛 좋은 바다 물고기가 명태다. 하지만 명태는 잡히는 순간부터 그 이름이 여러 가지로 바뀌기 시작한다.

갓 바다에서 건져올려 얼리지 않은 것은 '생태', 그대로 말려 물기가 쏘옥 다 빠져 따글따글해진 것은 '북어', 적당히 반쯤 말려 술안주로 찢어먹기 좋게 만든 것은 '코다리',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서서이 말린 것은 '황태'라 부른다. 그리고 명태의 새끼는 '노가리'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그중 황태는 내장을 빼낸 명태를 영하10℃ 이하의 기온차가 심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추운 지역에서 4~5개월 동안 낮에는 녹이고 밤에는 꽁꽁 얼리기를 거듭해 서서히 말린 명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잘 말린 황태는 속살이 노랗고 솜방망이처럼 연하게 부풀어 올라 고소한 감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잘 마른 황태는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명태에 비해 단백질의 양이 2배(몸 전체의 56%)가 훨씬 넘으며,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는 고급 단백질이어서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게다가 황태에는 인체 각 부분의 세포를 발육시키는 데 필요한 '리신' 이라는 필수 아미노산과 뇌의 영양소가 되는 '트립토판'이 들어있어 여름철 건강 유지에도 그만이다.

▲ 황태는 10마리 기준으로 크기에 따라 1~5만원 정도 받는다
ⓒ 이종찬

▲ 하얀 그릇에 깔끔하게 차려져 나오는 밑반찬
ⓒ 이종찬

술 많이 마신 사람에게 최고의 해장국 '황태국'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황태는 몸 속에 찌든 독을 해독하고 과음으로 인한 피로한 간을 보호해주며, 피로회복과 혈압조절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이어 각종 암과 난치병을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기름기가 적어 비만환자나 노인들이 먹기에 아주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달 19일(수) 아침에 만난 황태조리 전문점 '송희식당'(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 김추자(43) 대표는 "황태는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에다 담백하고 고소함까지 갖고 있어 '맛'만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말한다. 이어 김씨는 "여름철 바닷가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술을 많이 마신 사람에게는 황태국이 최고"라고 귀띔한다.

남편이 황태덕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김씨는 "이래 뵈도 이 집이 KBS '맛따라 길따라'에 소개된 집"이라며, "명태의 간에서 뽑아낸 기름에는 대구 한 마리에 들어있는 비타민A가 3배 쯤 더 들어 있어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영양제로도 아주 좋으며, 자주 먹으면 눈까지 밝아진다"고 속삭인다. 황태포 살 속에 붉게 스며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명태의 간유가 스며든 것이라는 것.

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황태찜'(대 3만5천원, 소 2만5천원)을 시킨 뒤 식당 안을 휘이 둘러보자 저만치 들머리에 잘 말린 황태가 수북히 쌓여 있다. 김씨에게 "저기 쌓아놓은 황태는 파는 것이냐?"고 묻자 "한봉지 10마리 기준으로 크기에 따라 1~5만원씩 받는다, 서울에서는 이런 황태는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힌다.

▲ 황태를 넣고 아귀찜처럼 만든 황태찜
ⓒ 이종찬

▲ 황태찜은 부들부들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황태찜 시키면 황태국은 공짜로 맘껏 먹을 수 있다

창밖, 비 내리는 설악산을 바라보며 마악 소주 한 잔 비워내고 있을 때 김치, 무말랭이 무침, 여러가지 산나물 무침 등이 상 위에 차려진다. 이어 살뜨물을 끓여 파를 송송 썰어넣은 것 같은 뽀오얀 국물이 한 그릇 나온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보니 그 속에 잘게 찢어놓은 황태살도 대여섯 점 들어 있다.

황태국이다. 숟가락으로 한 술 떠서 입에 넣자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까끌까끌했던 입속에 이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시원하면서도 뒷맛이 구수하고 깊다. 몇 수저 입 속에 떠넣다가 그릇을 통째 들고 후루룩 후루룩 마시자 이내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맛깔스러운 국물이 있었다니.

주인 김씨에게 황태국을 한 그릇 더 시키자 "황태찜을 시킨 사람한테 황태국은 공짜"라며, "드시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더 시켜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또다시 새롭게 나온 뽀오얀 쌀뜨물 같은 황태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고 있을 때 황태찜이 상 위에 올려진다. 언뜻 보기에 아귀찜이나 미더덕찜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주인 김씨에게 황태찜 만드는 비법을 묻자 "황태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뿐 그밖에는 아귀찜이나 미더덕찜을 만드는 것과 같다"라며 빙그시 웃는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생긴 황태찜을 한 수저 집어 입에 물자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부드럽고도 고소한 황태맛이 혀끝을 끝없이 희롱한다.

▲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뽀오얀 황태국
ⓒ 이종찬

내설악 풍경에 취하고, 황태국과 황태찜에 취하고

"황태를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는 황태찌개와 황태조림, 황태찜, 황태전, 황태구이, 황태국 등 다양하지요. 그리고 황태는 공해에 찌든 독과 인스턴트 식품에 들어있는 각종 유해물질을 해독시키는 역할도 하지요. 특히 황태국물은 일신화탄소 중독까지 풀어낼 정도로 해독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약재 재료로도 많이 쓰인답니다."

소주가 절로 들어간다. 옆에 있던 효림 스님과 시인 이상국 선생 그리고 시인 유종순 형이 걱정스런 눈길로 나그네를 쳐다본다. 아침부터 웬 소주를 그렇게 마시느냐는 투다. 하지만 이렇게 맛깔스런 음식 앞에서 어찌 소주 한 잔 마시지 않고 베길 수 있으랴. 그렇게 소주를 홀짝거리다가 속이 쓰리면 젖빛처럼 뽀오얀 황태국 한 그릇 더 마시면 그만인 것을.

아침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구수한 황태국과 황태찜은 자꾸만 소주를 부르고. 그날 나그네는 그렇게 비내리는 아름다운 내설악의 풍경에 취하고, 시원하고도 구수한 황태국에 취하고, 입에 넣으면 그대로 부들부들 녹아내리는 고소한 맛의 황태찜에 취하고, 주거니 받거니 아무리 마셔도 지겹지 않은 소주에 마구 취했다.

강원도의 맛! 그래 이 맛이 바로 강원도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기막힌 맛이 아니겠는가. 특히 강원도에 피서를 갔다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속이 쓰리거나 여름철 무더위에 지쳐 입맛이 떨어진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 황태먹거리촌에 들러 어머니 젖 같은 황태국을 먹어보자. 무더위와 피로가 황태국과 함께 내설악 솔바람에 시원스레 날아가리라.

▲ 황태찜 한 그릇에 소주가 열 병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양평-홍천-인제-북면-용대3리-황태조리전문점 '송희식당'(033-462-7522)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춘천 방향으로 틀어 홍천을 지나 인제 북면 황태먹거리촌으로 가도 된다.  

※이 기사는 '유포터' '씨앤비' '시민의신문' '시골아이' 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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