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공의 1300여명이 참여한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상급 종합병원들이 축소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의료 공백의 잠재적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뇌혈관이 막히거나(뇌졸중) 대동맥 내막이 찢어진(대동맥 박리) 환자는 불안정한 의료 상황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치명적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두통과 복통처럼 흔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빠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위중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상이 시작되고 진단을 받고서 병원을 찾아 헤매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이 의료 공백의 희생자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없다.
몸속의 폭탄이 타이머를 째깍대기 시작한 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금방 병원을 찾아 어렵지 않게 치료를 받지만, 누군가는 병원에 찾아갈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병원에 간다고 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판단할 지식이 없어 헤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의료 과오를 겪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환자와 보호자가 지금 자신이 겪는 의료가 어떤 의료인지를 판단할 여유도 지식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필수 의료 공백이나 저질 의료로 인한 비극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일도 아닌 이유다.
반대로 어떤 의료인들은 매일 이런 환자를 만난다. 말할 언어가 있고,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취재원을 선호하는 언론은 현안을 파악한다며 매번 의사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의료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언정, 사회적 대화와 공적 자원 분배에 대한 학습은 거의 되지 않은 몇몇 의사의 불만과 문제의식이 의료의 '현장'을 채운다. 그럴수록 논의는 환자들의 고통과 곤란이 아니라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에서 의사하기의 어려움에 집중된다.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건, 의사 역시 피고용인이자 의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해관계나 편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의사들이 내리는 진단은 대개 정부의 무능과 부작위를 향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리적 병원 운영으로 인한 갈등이나 의료계 내부의 위계적 착취, 폭력적 조직 운영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뿐일까. 병원을 지탱하는 노동이 의사의 갑절을 훌쩍 넘는 간호사 등 의사 아닌 노동자로 인해 가능하다는 사실 정도는 가볍게 무시된다.
의사 단체가 환자나 시민단체 같은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지금, 어떤 의사들이 과잉대표해왔던 의료체계의 문제를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논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어야 한다. 단숨에 정답을 찾을 수는 없는 문제다. 의료에 만연한 정보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듯이 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정보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더 너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거듭 강조한다. 의료개혁을 위한 공론장은 의사 집단과 관료 사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를 과학으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닫힌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어렵사리 열린 의료개혁의 창이 의대 정원을 몇 명으로 정할지에 대한 밀실 담합이 아니라, 한국 의료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열린 공론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새롬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김새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새롬은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와 공공성, 젠더와 건강, 건강 불평등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의 공저에 참여했고, 팀 블로그 'Health Socialist Clu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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