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에 올여름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6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서강대교 위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정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박종철·채여라 연구원은 논문에서 "폭염의 강도와 빈도 모두 2018년이 1994년을 넘어섰지만 초과 사망자수는 1994년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그 이유로 "국민의 건강과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이로써 폭염에 의한 죽음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큰 연관을 맺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고 지극히 불평등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폭염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관을 맺고 있지만 동시에 직관적인 실체로도 닥쳐온다. <폭염사회>가 다루고 있는 시카고는 1995년 폭염에서 7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두번째 폭염에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사망자를 단 2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즉, 적극적인 공공정책들이 폭염의 재난화를 막은 것이다. 특히 당장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노동해야 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책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실제로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2020년 기준 낮 시간대(53.7%), 실외(84.1%), 단순노무 종사자(26.6%)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삶의 전반적인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과 적응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폭염과 맞설 수 있는 법이나 제도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5월 폭염 대비를 위해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노동현장 등에 배포했다. 가이드에는 체감온도 31도가 넘을 때는 사업주가 단계별로 매시간 10~15분 휴식을 제공하고, 오후 2~5시 사이 옥외작업을 단축 또는 중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이드는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할 방안이 없고 사용자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잦은 폭염과 폭우 때문에 임금 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작업중지나 건강을 고려한 자체적인 휴식 같은 건 엄두를 내기 힘들다. 이에 건설노조는 지난 6월 19일 폭염에 맞서는 기본적인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폭염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매우 높은 확률로 곧 극한 폭염이 닥칠 태세지만 손에 잡히는 제도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린 매년 일터에서 '폭염-죽음'의 반복을 겪고 있다. 그리고 때마다 국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지난 5년간 정당을 불문하고 김성원, 노웅래, 박대수, 우원식, 윤미향, 이소영, 이수진, 이용빈, 이은주, 전용기, 홍영표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폭염·한파시 지자체장의 작업중지 명령권과 불이행시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 부과, 작업중지로 인한 임금 보전, 사업주에게 시설 개선을 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 개정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엔 폭염-죽음의 고리가 조금이나마 끊어질 수 있을까? 이미 한여름 7월, 죽음의 예고장이 날아들었다. 부디 여야가 당장 닥칠 폭염 앞에 모처럼 손잡고 법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