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채상병 특검(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유성호
구체적인 양상은 어떨까? 블라인드에서 '상사'와 '책임'을 키워드로 검색된 140개 글과 그 댓글을 분석해 봤더니 "시켜놓고 발뺌한다", "결정을 떠넘긴다", "말을 바꾼다"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외 "거짓말을 한다", "자기 입장이 없다", "지시가 불명확하다", "그냥 일을 안 한다", "성과를 가로챈다" 등도 자주 등장했다.
이런 상황은 세대갈등으로도 나타난다. 블라인드에서 586을 키워드로 게시된 글을 살펴보면 90% 이상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이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한국 사회의 갈등으로 소득차이 갈등(79.1%)에 이어 세대 간 갈등(76.5%)을 지목했다. 성별 갈등(72.3%)보다 높은 수치였다.
"요즘 MZ들은 개념은 없는데 불만은 많다"는 글이 있었다. MZ도 할 말이 있다. 한 청년이 지시에 따라 물에 들어가 목숨을 잃었는데,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수사 결과가 왜 바뀌었는지 아직도 불분명하다. 블라인드에는 목숨까지 잃은 건 아니더라도 유사한 호소가 수없이 발견된다. 그때마다 이용자들은 '개념'은 없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조언했다.
더 많은 권한과 임금이 직위와 근속에 당연히 따르는 대가가 아니라 책임의 크기에 비례해야 한다는 점에 많은 청년이 동의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유명한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하찮은 힘에 큰 책임이 따르고 힘이 클수록 책임이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책임을 지라고 힘을 받은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 힘을 사용하는 건 직장이나 공직사회 모두에서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채 상병 사건을 보며 한국 사회에 실망했지만 동시에 책임을 인정하며 진실을 밝히겠다는 대대장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청년들도 있었다. 그들은 관련 보도마다 으레 등장하는 해병대 조롱에 대해 대대장을 언급하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반박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와중에도 이 글만큼은 추천과 동의 댓글이 이어졌다.
청년들이 책임 회피하는 상사를 제일 미워하는 건 그만큼 책임지는 상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상사들 이상으로 청년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청년들이 어쩌다 정권 교체의 키가 되었는지, 그러고서도 왜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