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등의 시설은 그 자체의 엄격한 폐쇄성으로 인해 학대가 잘 적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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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상당수의 시설은 노인이 처음 입소할 때부터 잠을 자지 않거나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약물을 투입해서 노인을 제지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보호자의 사인을 받고 있다. 이를 근거로 공식·비공식적으로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를 투여해서 노인을 약물로 통제하고 있다.
특히 요양원은 약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요양병원은 약물의 처방 및 투입이 너무 용이해서 '약물에 의한 학대'가 만연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실태조사나 대응 정책 연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약물 학대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
둘째, 시설은 서비스와 인력 등이 구조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에 노인은 실제 거동능력에 비해 빨리 침대에 누워만 있는 와상상태가 된다. 그래서 음식 제공과 대소변 관리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겨우 받으면서 사실상 '방임 학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의 요양병원은 의료적 치료에 치중하다 보니 노인을 위한 사회적 활동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요양원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상근 의사가 부재하고 간호사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가 주로 업무를 한다. 그러다 보니 간호인력과 요양보호사들이 콧줄 교체와 같은 각종 불법 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셋째, 요양병원은 완벽한 제도적 사각지대다. 시설은 그 자체의 엄격한 폐쇄성으로 인해 학대가 잘 적발되지 않는다. 내부인력의 고발이 있거나 보호자가 자주 시설을 방문해서 감시기능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감염을 핑계로 보호자의 면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설이 많다.
그나마 요양원에 대해서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 조사를 하고 기초지자체에서 행정처분을 할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법적으로 행정처분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이 없다. 면허가 없는 간병인이 사적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면서 학대 발생 가능성이 높지만, 조사권한을 가진 보건소는 매우 소극적이다. 설령 조사를 해도 행정조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도대체 왜 이런 제도적 공백을 방치하고 있는가?
넷째, 서구에서는 경제적 학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적 학대가 2023년에 352건으로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재산이나 현금 등을 가져가는 경제적 학대는 노인의 기본적인 삶을 빼앗아 가지만 대응체계가 거의 없고 드러나지 않은 사례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시설에 있는 치매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나 기초연금 등을 요양원 직원이 몰래 가져가는 일도 일어난다. 특히 요양원은 노인의 자금관리를 시설장이나 부장 등의 관리직이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낮은 직급의 요양보호사들이 발견해서 신고하기도 어렵다. 노인들은 현금이 있으면 베개 속이나 사물함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서 경제적 학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체계 마련에 소극적이다.
요컨대 정부가 발표하는 노인학대 통계는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인학대의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노인학대의 제도적 사각지대인 '약물 학대, 방임 학대, 병원 학대, 경제적 학대' 등에 대한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해서 학대로 포함시키고 적극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인학대 예산을 대폭 증액해서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을 비롯한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확실히 늘려줘야 한다. 이러한 조처는 노인의 존엄한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