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3 18:25최종 업데이트 24.04.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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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국의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재판정인 것 같기도 하다. 특정 인물부터 세대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를 심판해야 한다는 말이 가득하다.

지난 1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하며 밝힌 '586 운동권 정치 청산' 역시 그런 심판론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위원장의 586 청산에 대해 여당에서도 '동료시민 586'과 '586 운동권 정치'는 다르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한 위원장 역시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여권 지지자 사이에서는 이번 총선을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대 789(70·80·90년대생)로 규정하고, 세대 대결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물론 현시점에서 그러한 구도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586은 정확히 누구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취임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언론에 '386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그해 4월 <경향신문>은 "'신촌 대학가' 점령한 '386'세대"라는 기사에서 '386세대'를 "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던" 30대라 표현했고, <한겨레>는 이들을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고 썼다.

386세대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점은 1999년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언론에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나타나던 이 단어는 1999년 들어 300회 이상 등장한다. 특히 <조선일보>는 3월부터 11월까지 총 36회에 걸쳐 386 세대의 정체성과 사회 진출 이후를 취재한 기획보도를 내보냈을 정도다.

이때만 하더라도 '386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난 80년대 학번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한 구체적인 코호트(공통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즉, 이 단어가 의미한 대상은 80년대 대학진학률(1980년 27.2%, 1989년 36.9%)을 고려했을 때 아무리 높게 잡아도 60년대생의 37%를 넘을 수 없다. 당시 학생운동에 부정적이었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 낮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386이란 단어는, 특히 이들이 586으로 접어들면서 60년대생 전반을 뜻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언론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조차 86세대를 밀레니얼, X세대에 상응하는 단어로 쓰는가 하면, 아예 86과 60년대생을 동의어로 규정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근래 586이라는 단어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상당수는 이처럼 해당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호적으로 해석했을 때 그가 말하는 '586 운동권'은 좁은 의미의 586, 더 좁힌다면 전대협을 비롯한 학생운동 조직을 거쳐 야당의 직업 정치인이 된 이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여당에서 지적했다는 '동료시민 586'은 넓은 의미에서 60년대생 전반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이렇게 인식이 다른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얼마나 차이가 클까?

눈여겨볼 점은 60년대생 사이에서도 586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KBS가 한국리서치를 통해 진행한 '세대인식 집중조사'에 따르면 50대 응답자의 67.2%만이 자신을 '586'이라고 생각했다. 이 중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36.8%였다. 즉, 60년대생이 인식하는 586조차 좁은 의미의 586과 넓은 의미의 586 사이에 걸쳐 있었다.

586 증오한다는 청년들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비하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세대 갈등 양상이 과거와 다르며, 반목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셔터스톡

 
청년들이 586에 가지는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같은 조사에서 청년 세대(20~34세)는 "586세대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질문에 50대의 74.7%보다 더 높은 78.2%가 동의했다.

반면 "586세대는 젊은 세대와 비교해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질문에는 56.8%가 그렇다고 대답하여, 50대의 31.7%와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586에 부정적인 청년들의 인식은 이처럼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인 이들이 노력에 비해 많은 것을 가졌고, 그것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체적인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2030세대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최근 1년 동안 '586'을 키워드로 게시된 글 370개를 살펴봤더니, 94%가 586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글이었다. 주된 연관어로는 꼰대, 무능, 권위적, 일을 안 함, 무책임, 고성장 혜택, 양심 없음 등이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이 지칭하는 586은 사실 앞서 이야기한 586과 또 의미가 다르다. 좁은 의미에서 586의 상당수는 이미 686이 되어 은퇴했을 시기다. 한국에서 주된 일자리를 떠나게 되는 평균 나이(49.3세)와 2024년 기준 69년생이 이미 만 55세임을 고려한다면, 지금 청년들이 직장에서 마주하는 50대 관리자의 상당수는 오히려 X세대인 70년대생에 해당한다.

왜 이런 간극이 나타나는 걸까? 최소한 블라인드에서 586이라는 단어는 특정 세대를 지칭하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면모를 비판하는 표현으로 의미가 변한 탓이다. 동시에 '어른'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본받을 만한 기성세대의 이야기도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무능하거나 권위적인 기성세대는 실제 세대와 무관하게 586이 되고, 본받을 만한 기성세대는 설령 60년대생이라도 586이 아닌 '어른'이 된다.

586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품게 된 건 그 세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좋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런 양상은 비단 586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원래 마케팅 용어였던 'MZ세대'는 이제 젊은이들의 부정적인 행동 양상을 지적하는 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거나, 의무에 앞서 권리만 요구하거나, 과소비와 허세가 심하다는 식이다. 'MZ 알바'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마케팅 용어로 출발한 '영포티'는 본래 의미(젊게 살고자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40대)가 퇴색된 채, 비하적인 의미를 잔뜩 머금게 되었다.

결국 핵심은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비하로 변해가고 있다는 데 있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아니라도 꼰대면 586이다. 90년대생은 정시에 딱 맞춰 출근하는 자신이 MZ냐고 묻는다. 범죄 뉴스에는 피의자의 연령에 맞춰 이대남(녀), MZ, 영포티, 586이라는 댓글이 따라붙는다.

실제 의미가 어떻든,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비하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세대 갈등 양상이 과거와 다르며, 반목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훈계하고, 청년 세대가 어른들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들은 60년대생의 상당수가 여전히 은퇴하지 못한 채 노동 빈곤층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꿀 빤" 기득권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 세대가 이례적으로 자산 형성이 늦은 세대이자, 기성세대와 격차가 오히려 더 확대되는 세대란 점을 안다면 그들이 가지는 불안과 불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도 불분명해진 586을 비난하고 있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고민하고, 공부하고, 모이고, 대안을 만들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비하가 아니라, 공통의 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청년의 문제와 기성세대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서로가 이해하는 데 있다. 586의 누구는 청년들을 괴롭힌 꼰대일지 몰라도, 60년대생의 누구는 결국 청년들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조현재 / 데이터 분석가(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조현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현재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이며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하고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이며, 청년 노동, 청년 일자리 문제와 세대 갈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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