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경남 김해지역 출마 예비후보 5명이 8일 김해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3선의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 대한 김해 출마 권유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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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 지역구의 다수결제와 각 주(Bundesland)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출마 경로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후보들은 지역구 당원과 간부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자기를 홍보해야만 공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정당 내에서 선발하는 후보자의 자질을 어느 정도는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공직자는 장기적으로 정당과 유권자의 대표로 인정받는다. 당내 선발 과정은 치열하지만 대신에 총선 출마 요건, 즉 의회 입성 문턱은 비교적 낮다.
밀실에서 소수의 간부들이 공천 후보자를 결정한 과거(1960~70년대)와 달리 오늘날 사전 공천 과정은 지역구 당조직 협의회나 간부들이 전략적 합의로 결정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비교적 투명하게, 최소한 당직자나 당원들이 반발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한다.
현역 의원들은 일반적으로 본인 또는 지구당 이하 당조직에서 새로운 인물이 출마해야 한다고 판단할 때까지 공천 우선권을 갖는다. 왜냐하면 현역의원도 원래 당원·당직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했기 때문에 선발되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한 교체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당이 인사 결정권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고, 후보 선발에 대한 결정 과정은 주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구조로 되어 있다.
당내 예비 공천은 정당의 지역 조직이나 정당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선거구 후보자가 되려는 지원자들은 당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지, 당선되면 당을 위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등에 대해 지역 당원·당직자들로부터 심층 검증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 지원자들은 지역구를 돌며 여러 하위 지역위원회에서 10~40회에 걸쳐 20~30분의 짧은 정견 발표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당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당내 사전 공천 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지역구 대의원 회의에서 공식적인 공천으로 지역구 후보로 최종 선출된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는 지원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식적인 공천 절차는 지역구가 아니라 주(州) 수준(Länderebene)에서 이루어진다.
지원자들은 되도록 말솜씨도 좋아야 하지만 당원들의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당내에서 사회화되지 않았고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이 약한 지원자는 첫 번째로 이 관문에서 막힐 확률이 높다.
따라서 거의 모든 정당은 본당과 밀접하게 연결된 청년 조직을 가지고 있고, 당원들은 일찍부터 이 조직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 정치인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고 관심 있는 문제를 다루는 데에 조기부터 전념하면서 본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정치를 관찰하며 배울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중요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
일찍부터 청년 정당 조직에 참여하면 공직을 획득하고 맡는 데 중요한 핵심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이 기술에는 당 규정을 다루고, 회의를 주재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조직 내 경쟁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필요할 때 다수를 동원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등의 기술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서 청년 당원들은 다년간의 정치 경험, 폭넓은 정치 지식, 자발적 당내 위원회 활동 경험, 선거 운동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 영향력 있는 정당 인맥, 웅변력과 설득력 등 공천에 유리하고, 이후 의원활동에 유익한 자산을 얻을 수 있다.
후보가 당내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공천에 성공하고 나서 남은 출마 조건은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의 독일 국민이어야 한다. 하지만,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구에 거주하는 선거권자에게 받아야 하는 추천 서명수는 200개로 한국(300~500인)보다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 기탁금 등 추가적인 요건이 없다. 또한 한국과 달리 선거운동의 기간이나 방식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다.
독일에서 신인 영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마지막 이유는 강력하고 활발한 시민사회의 존재이다. 결국 건강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제도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원외에서 이를 견제하고 보완하는 시민사회 행위자에게도 필요하다. 시민, 당·직원, 의원, 재단 등과 같은 비영리조직, 활동가 등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너무 많은 활동가들이 정치에 뛰어들면 두뇌 유출이 일어나고 관계가 불균형해진다.
비례제, 지지율만큼 권력 부여하는 제도

▲녹색정의당 김준우 상임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총선 '야권 위성정당' 불참 결정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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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독일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독일의 사례를 통해 한국의 제도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으나, 그럴 경우에 늘려야 할 의원 수 등 때문에 어렵다면 현 준연동형제를 확대하는 것이 차선이다. 그래야만 거대 양당 카르텔을 깨고 비례제의 다원주의 촉진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법을 개정해 정당명부식 의석 비율(15.7%, 47석)을 최소한 전체 의석의 3분의 1 이상으로 대폭 늘릴 필요가 있고, 위성정당 설립은 법으로 막아야 한다. 이에 대한 입법안은 이미 충분히 제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중 적합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물론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는 '정직한 사람을 위한 제도'인 만큼 이 선거제의 원래 취지를 완벽하게 살리려면 법만으로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당들의 꼼수 관습을 반드시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
한국에서 비례대표제에 대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도를 바꾸기 싫은 수혜자들의 괜한 핑계이자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연동형 비례제는 전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상식적이고 간단하다. 첫 단계로 각 정당은 자기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할애받는다. 그다음 이렇게 받은 의석 몫 안에서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의 의석을 배분한다. 마지막으로 의석이 남으면 정당명부의 순서대로 채우면 끝이다. 즉, 선거에 참여한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는 만큼 정당이 권력을 부여받아 그 의사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의석 배분 방식의 혁신만큼 선거 출마 제도에 관한 개혁도 직면 과제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출마와 선거운동의 요건을 가장 과도하게 규제하는 국가 중 하나인 만큼 민주주의를 꽃피우기가 어렵다. 능력 있는 지원자가 정당을 통해 쉽게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법의 과잉 규정들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각 당 내부의 공천 관습의 개혁, 즉 당내 민주화가 시급하다.
무소속과 군소정당의 국회 입성을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만든다면 거대 양당의 카르텔도 막을 수 있고 그에 따라 국회에 다양성과 다원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사가 더 잘 대표될 수 있다. 그리하여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신인 영입의 악습도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 이 글은 모두 필자가 한글로 작성했으며 편집자가 약간의 교정·교열만 했음을 밝힙니다.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하네스 모슬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입니다.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이고 최근의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입니다. 최근 저서로는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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