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근무가 덕목처럼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 출산율 반등이 일어날 수 있을까?
셔터스톡
아이를 낳아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는 순간 좋은 근로자가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유·무언의 시그널을 받게 된다면 좋은 근로자로 성장하고 싶은 여성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회사가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이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를 20년째 보고 있다.
오랫동안 성 역할 규범과 출산의 관계를 연구해 온 미 하버드대 메리 브린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은 여성이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지만 그러면 가족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식도 강한 나라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인정하지만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 일-지향 보수주의(pro-work conservative)라고 이름 붙여진 이 독특한 종류의 성 역할 의식이 조사 대상국들 중 독보적으로 강한 나라였다.
브린튼 교수팀은 2016년 연구를 통해 일-지향 보수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홍콩대 한신원 교수는 2023년 연구를 통해 그러한 성 역할 태도가 강한 나라일수록 아이를 기쁨보다는 무거운 짐으로 인식하는 경향성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경제학에서도 사회적 규범과 출산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중 2021년 <유럽 경제학 저널>에 실린 한 연구는 한국의 센서스 자료와 가구 서베이 자료들을 이용해 불평등한 성별 돌봄 분담이라는 사회적 규범이 사라지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1.2%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한국은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다. 돌봄이 여성의 몫이라는 규범이 사라지고 남성이 돌봄 노동에 더 많이 참여하는 변화가 일어난다면 출생률의 반등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무려 11.2%나! 그러려면 남성들이 가족과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OECD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했던 나라, 직장인이라면 야근과 밤샘 근무가 덕목처럼 여겨져 왔던 나라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최근 한 기업에서 인구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거금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해 화제가 되고 있다. 출산 장려금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국내외 연구들이 많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지급하는 보너스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기업들이 초저출생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지 알리는 캠페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왕에 쓰는 돈이 효과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아이가 짐이 되지 않도록 가족 돌봄 근로자에 대해 고용주가 배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가 기쁨이 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이 가족 돌봄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그만두는 것이다.
▲김영미 / 연세대 사회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김영미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영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는 연세대 젠더연구소장, 고등교육혁신원 혁신교육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연구 분야는 노동시장과 기업조직 내 젠더 불평등, 불평등과 인구변동입니다. 그밖에 젠더 관점의 사회혁신 교육에 관심이 있으며 다양성과 포용성 전문가네트워크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