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김준우(왼쪽에서 두 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국회에서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의 로고를 공개하고 있다.
정의당
-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는 전지구적인 생태위기에 맞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녹색의 국가입니다. 온실가스, 특히 탄소 배출을 줄이고 결국은 중단함으로써 기후 변화 가속화를 어떻게든 저지하고 가장 파국적인 기후 재앙의 도래를 막아내는 것이 사회국가의 첫 번째 책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재생가능 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생산 전환, 에너지, 배터리, 전기차, 자원순환, 친환경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전환, 대중교통의 무상화, 안전한 먹거리나 수리할 권리 등에 대한 제도적 보장, 재활용 중심의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 등 소비의 전환을 더욱 빠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 기존의 정의당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결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기존의 입장과 비교해서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과거의 정의당은 노동 '존중' 사회를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가 그리는 대안의 방향은 노동 '주도'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진보정치의 기반은 언제나 노동계급에 있었습니다. 노동자는 앞서 언급한 산업 전환을 비롯해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단순한 객체를 넘어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산업별 교섭체제의 확립뿐만 아니라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비정형적 노동 영역을 포괄하는 '일하는 시민 기본법'을 통해 연대의 사슬을 사회 전반에 더욱 촘촘히 확장해나가야 합니다. 노동조합 운동과 함께 전략 수립 기구를 구성하고, 노동자 주주제를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주 독식의 지배구조를 대체하는 경제민주주의의 달성을 이룩할 것입니다.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는 평등의 가치 아래서 나아갈 것입니다. 복합 위기 시대는 사회문화 전반의 백래시, 이주민, 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게토화, 직업 선택과 노동조건에서 나타나는 성별 불평등까지 수많은 갈등을 내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 불평등과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정의당의 기존 지향을 더욱 철저하게 수행해야만 합니다.
또한 장애인의 '온전한 자립 생활'을 위한 지원,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차별 없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약속할 것입니다. 돌봄 위기를 저임금 이주민 노동자,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구습을 통해 해결하려는, 즉 돌봄 활동을 전 지구적으로 전가시키려 하는 보수정치에 맞서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돌봄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할 것입니다."
- 생태, 평등,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관되겠지만 그중에서도 '돌봄'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의 기본은 돌봄에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상호 의존적이고, 그 누구도 완전히 '자립'할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 개인의 소득이 생긴다 해도, 개인은 수많은 사회 시스템의 돌봄에 의지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특히 대한민국은 이런 돌봄 활동의 대부분을 주로 가족 단위의 의무로 치부하거나 저임금 노동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돌봄 복지의 사각지대를 넓히고 돌봄 노동자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듭니다.
사회국가는 기존 복지국가들이 자본주의의 개선점 정도로 인식했던 공적 복지제도의 역할을 확장시켜, 돌봄을 국가적 의무로 확대할 것입니다. 보육부터 장애인, 노인요양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발굴할 맞춤형 돌봄에 이르기까지 돌봄 서비스의 수요 발견과 공적 공급을 책임지는 시군구 단위 통합돌봄센터를 설치할 것입니다.
이러한 보편적 돌봄서비스 체계를 의료, 교육, 주거 등의 영역까지 점차 확대해 나가는 한편 사회연대경제 부문에서 활동하는 돌봄 관련 협동조합, 지역업체 등과 연계, 협력하여 공공의 포괄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더 광범하고 다양한 돌봄 서비스 제공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 생태·평등·돌봄의 사회국가 비전은 진보정당으로서 기존에 견지했던 체제 변혁의 비전과는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생태·평등·돌봄의 사회국가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담론을 넘어서는 사회적 소유의 국가입니다. 사회적 소유와 공적 투자의 확대로 구조적 개혁을 이뤄낼 것입니다. 공공은행 설립을 통해 지역 단위, 공동체 단위의 공동 소유 개념을 확대하는 한편,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예산안 수립을 독점했던 기획재정부와 같은 낡은 관료제 단위를 해체, 재편하고 시민들이 함께 예산안 수립에 참여하는 시민참여 예산제를 전국 차원에서 실현할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사회 전반의 근본적 기조 변화를 정의당은 새로운 제7공화국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압축하고자 합니다. 대통령제 개혁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작업을 개헌운동, 제7공화국 건설운동으로 명명하고자 합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적 전환과 불평등 타파, 돌봄사회 수립을 국가 운영의 주요 목표로 명문화하고, 교육, 의료, 주거, 교통 등을 시민의 기본권이자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하는 새로운 헌법을 세울 것입니다."
"정치개혁의 길 멈출 수 없어"
-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일들이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변화의 단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생태·평등·돌봄사회국가 비전, 제7공화국 건설 운동의 첫걸음에는 정치개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소리가 국회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제도의 보장은 다양한 선거제도 개혁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국회에서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국회 의석수를 줄여 국회의원 개개인의 기득권을 강화하자는 견해나 병립형 비례대표제 등의 퇴행적 논의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 시스템을 공고히 할 뿐입니다. 정책, 민생 중심의 정치로 나아가려면 소수정당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수적입니다."

▲정의당이 28일 국회에서 비례대표 선출 방안 승인 등을 위한 전국위원회를 열고 있다.
정의당
- 한때는 정의당이 한국 정치의 기대주였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지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난 대선, 지방선거 기간을 기점으로 거대 양당의 내전적 정쟁상황이 굳혀지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소위 '위기'라고 평가된 시기도 그 시점과 일치합니다.
인물 방탄을 중심으로 한 양당의 소모적 정쟁 구도는 대안을 삼켜버립니다. 민주, 국힘 양당이 이념적으로는 큰 차이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와의 차별성 그 자체를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양당 모두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정의당의 시선은 곧 양측 진영 모두의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두 차례 선거에서의 부진이 문제가 아니라 소수정당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정치체계 자체의 문제입니다. 다당제 연립정치의 시대를 열고, 그 속에서 정의당의 노동, 평등, 생태 중심의 색채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국면을 바꿀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어렵사리 만들어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 연립정치를 정착시켜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끝내고, 사표를 최소화해 비례성을 강화하려는 정치개혁의 첫 시도이자, 1인 2표제 도입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큰 한 걸음이었습니다. 최근 논의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훼손은 촛불의 성과를 비가역적으로 흔들려는 역사적 퇴행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우리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정의당은 단기적으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도 회귀와 위성정당 출현을 막을 대안 입법에 나설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연합정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통령·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불비례성이 가장 극심한 시·도의회 선거제도 재검토, 유럽식 선거연합정당을 보장하는 정당법 및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지역정당 건설을 통한 풀뿌리정치의 다변화 논의 또한 시작할 것입니다."
진보 다당제 시대 연대연합정치의 구상
- 정의당만의 힘으로는 그 과제들을 실현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정치개혁, 다당제 연립정치의 구상을 위해, 진보정치가 힘을 합쳐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노동 탄압과 불평등, 분단국가라는 특수성과 지정학적 갈등, 끝없는 기후위기 등 앞서 말한 수많은 복합 위기 속에서 각각의 진보정당들은 각개약진을 거듭하고 각자만의 고유한 특색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옛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구상과 같은 물리적 통합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색깔을 지키며 경쟁하면서도 연대하고, 선거를 통해 진보 전체의 파이를 결과로 녹여내야 한다는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요?
"지난해 11월, 정의당은 그 질문에 대한 해법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 지역자치분권, 차별철폐'라는 네 가지의 기준을 건 가치 중심의 선거연합정당 건설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핵심 가치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정당에 문호를 열고, 비례대표 상위 순번이라는 작은 기득권까지 내려놓은 채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녹색당이 이 제안에 화답하여 적극적으로 함께 해 주시고 계십니다.
정의당은 향후에도 단순히 소수자들의 연합을 넘어 다당제 정치개혁의 첫발을 가능케 했던 촛불혁명 당시의 가치 중심 연대 수준의 넓은 연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저 거대 양당이 남긴 부스러기에서 기호 3번을 가져가려 하고 이합집산을 거쳐 원래 소속 정당으로 돌아가 버리는 제3지대 정치는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여길 뿐입니다."
- 선거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위성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실상 무효화시키기 위해 거대 양당이 만든 가설정당이었기 때문에 참가하는 세력 간의 공동 논의체계, 지도체계, 집행체계가 전무했습니다. 기본소득당이나 시대전환처럼 이후 위성정당에서 갈라진 정당들도 선거 중에는 민주당과 공동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그저 하는 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선거연합정당은 공동의 지도부와 공동의 지도체계, 집행체계를 가집니다. 또한 지역구에서부터 단일화를 논의하며 출마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가치'입니다. 단순한 선거공학을 넘어 선거 이후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을 함께 정립하여 선거 후에도 공동의 입법, 정책 대응에 나서는 정당이 될 것입니다.
기존 통합 방식의 진보정당 단결을 넘어, 각자의 색채와 분야를 지키며 각개약진과 연대를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성으로 정의당이 처음 제안한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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