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법원 2심 패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조선학교 학생들고교무상화 배제 철회 소송에서 1심과 달리 2심에서 패소했다.
김지운
더군다나 이 촬영 작업은 앞날을 계획할 수 없었다. 민사소송이니 1심에 이어 2심 그리고 3심까지 심리에서 판결까지 정해진 기한이 없었다. 다행인 걸까? 2020년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일본 출입이 막혔다. 그 후 2020년 9월 3일 아이치현의 판결을 시작으로 2021년 7월 27일 히로시마시의 판결까지 일본최고재판소는 각 지방법원에서 올라온 상고를 기각해 조선학교 학생에게 "너희는 패배했다"라고 도장을 찍었다.
재판에서 졌지만 투쟁 자체는 끝난 게 아니다. 이 길고 긴 싸움은 일본이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차별을 시정할 때야 끝나겠지만 최고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영화로라도 한 매듭을 지어야 했다. 그때부터 2년여에 걸친 편집 과정이 시작되었다. 촬영본에 담긴 수많은 장면을 작품으로 빚어야 하는 시간이다. 판결을 기다리는 긴장감, 일본 변호인단의 헌신적인 노력, 재일동포의 간절함을 90분으로 응축하려면 힘든 나날을 거쳐야 한다. 그는 100시간의 촬영본을 보고 또 보면서 우선 1차로 3시간 분량의 초본을 만들었다. 보석 같은 장면, 애달픈 장면을 우선 추려냈다.
오사카 1심의 승소가 있고 두 달 후인 2017년 9월 13일 도쿄 재판에서는 패소 판결이 나왔다. 소식이 전해지자 법원 앞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고교무상화로부터 조선학교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활동을 하는 모리모토 타카고는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 조선학교 학생을 왜 이렇게 괴롭히냐"며 울부짖었다.
사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고교무상화정책에서 배제된 게 최초가 아니다. 1948년 조선학교를 폐쇄하면서 일본 정부는 일본소학교에 들어가라고 했다. 재일조선인에게 일본 학교는 차별의 소굴이다. 학교에 들어선 순간, 조선 학생은 이지메에 시달리고 매일 두들겨 맞는다. 김치 냄새 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살길은 일본식 통명을 쓰며 조선인임을 숨기는 것뿐.
1955년을 기점으로 일본 전역에 조선학교가 다시 세워지면서 민족교육이 시작되었으나 정규 학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종의 기술학원인 '각종학교'로 지정받아 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해도 대학수험자격을 얻지 못해 '검정고시'같은 '자격시험'을 봐야했다. 일본 고등학교 체육연맹이 주최하는 일본고교스포츠 공식대회에도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학교 학생은 일본 학생에게 주어지는 JR통학권 학생 할인을 똑같이 적용받지 못했다. 조선학교 앞에는 '스쿨존'도 설치해 주지 않았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의 사례는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2009년에는 재특회를 비롯한 일본 극우가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를 습격해 조선인은 '바퀴벌레'라고 욕하고 "차별당한다고 생각하면 일본을 떠나라"라고 막말을 늘어놓았다.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는 대낮에 칼질을 당했다. 고교무상화 정책 이후 일본 정부가 내놓은 유치원과 보육 무상화 정책에서도 조선유치반 아이들은 제외되었다. 코로나 때 일본 정부는 모든 유치원에 마스크를 지원하면서 조선 유치원은 쏙 빼놓았다. 참으로 졸렬하고 치사한 차별을 대놓고 정책으로 시행해 온 것이다.
도쿄지방법원의 이날 판결은 세상에 대놓고 조선학교에 대한 모든 차별은 합법이라고 도장을 찍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분노가 클 수밖에 없었다.
2019년 3월 14일 후쿠오카지방법원에서는 "'무상화'에서 제외되어 발생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로금 청구 소송 판결"이 있었다. 재판정에서 나온 일본 변호사 키요 타미키는 '패소' 팻말을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소송에 규슈지역의 일본 변호사 80여 명이 무료 변론을 하며 동참했다. 키요 타미키는 변호사가 되어 처음 맡은 소송이 이 재판이었다. 그는 법률 지식으로만 이 소송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어 많은 공부를 했다.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이 재판에서 이기는 게 역사의 정의이고 조선인의 손을 들어주는 게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최소한의 자세라고 봤다. 그 희망이 좌절되어 흘린 눈물이었다.

▲규슈 소송에서 패소 결과를 알리는 일본의 변호사 왼쪽이 키요 타미키 변호사다.
김지운

▲규슈 법원에서 패소 소식을 듣고 눈물 흘리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소송은 무상화 배제에 따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로금 청구 소송이었다.
김지운
김지운 감독은 이런 애달프고 보석 같은 장면을 추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날을 세웠다. 물론 그의 옆에는 깡통 재떨이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편집을 마무리해 1시간 30분의 작품을 만들었다. 100시간 정도의 촬영분에서 90시간 가까이 덜어내는 건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이다.
이렇게 만든 <차별>을 2021년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해 '아시아발전재단상'을 받았다. 그리고 2023년 극장 개봉에 올렸다. 500여 회 상영 기회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배정된 시간은 조조 아니면 밤늦은 시간, 겨우 2258명이 상영관을 찾았다. 너무 초라한 성적,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조선학교 학생은 일본 정부와 일본최고재판소에서 차별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낙인찍혔는데 고국에서마저 외면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오사카 1심 재판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1, 2심에서 패소할 때 김지운은 정들었던 학생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이 슬픔 앞에서 나의 카메라가 무슨 소용이 있나? 아무리 기록하고 이 아픔을 영상으로 담은들 현실이 바뀔까 하는 회의에 빠졌다. 그런데 한국 관객에게까지 외면받으니 가슴 한쪽이 베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영화가 개봉관에서 내려오고 나서 공동체 상영이 밀려들었다. 충남 보령에서는 극장 하나를 빌려 150명이나 되는 시민이 감상했고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영화를 본 선생님의 제안으로 전교생이 관람했다. 국내만이 아니라 미국,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에서도 상영이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오사카 씨네누보극장에서 6주간, 오사카 씨어터세븐극장에서 2주간, 후쿠시마 극장에서 1주간이나 상영되었다. 자주상영(한국의 공동체상영)은 일본 전역에서 이제까지 60여 회나 진행되었고 3월 초까지 여섯 군데의 일정이 잡혔다.
영화를 본 관람객의 목소리는 따듯했다. "조선학교를 잘 몰랐다, 알게 해줘서 고맙고, 함께하고 싶다"는 평이 많았다. 일본에서도 조선학교를 전혀 모르던 이들이 <차별>을 보고 상영회를 추진하고,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고 있다. 멀리 독일에서도 '재독조선학교후원회'가 조직되었으니 다큐 감독으로서 이만한 기쁨이 또 있겠는가?
▲<소리여 모여라> 작품 제작회의에서 김지운김지운은 박영이 감독의 차기작 <소리여 모여라>에 PD로 참여한다.
민병래
김지운은 오래 붙잡고 있던 답신을 마무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눅진한 담배 연기를 내보내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밤하늘 멀리 금싸라기 같은 별빛이 돋아난다. 멀리 부산항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가느다란 뱃고동 소리가 별무리 사이로 꼬리를 늘어놓는다. 그는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김지운의 등 뒤 모니터에는 통일부에 보내는 답신의 마지막 문장이 깜박거린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조총련 특히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학교를 단순히 북을 지지하는 교육기관이 아닌 매일매일 일상에서의 작은 통일이 일어나는 곳, 일본 사회에서 역사와 인권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곳, 나아가 동북아 평화의 마중물이 될 곳으로 인식해 주시기를 이번 기회를 통해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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