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펜은 펜촉을 잉크병에 담그는 순간, 잉크가 나사산을 타고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김덕래
"아… 펜닥터님. 이런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아날로그 필기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함이 있지만, 어떤 잉크를 찍어 어떤 종이에 쓰느냐에 따라 확 달라지는 게 재밌답니다. 색색의 잉크는 당연히 컬러톤부터 차이가 나지만, 흐름이나 색이 분리되는 정도, 테가 뜨는 경향, 필기 후 변색되어가는 과정 등이 다 다른데, 이런 잉크를 어떤 종이와 조합해 쓰느냐로 넘어가면 그야말로 변화무쌍해진다는 거예요.
쓸 때는 분명 푸른빛이었는데 쓰고 난 후엔 보랏빛이 도는 잉크도 있고, 펄감이 있는 잉크를 펜촉에 찍어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에 대고 쓰면, 선의 복판과 가장자리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시각적 만족감이 크답니다. 한낱 잉크도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데, 내 기분이 때때로 바뀌는 건 그리 잘못된 게 아니다 싶어 차분해진다는 거지요."
"무슨 의미인지 알듯해요. 펜과 잉크에 내 정서가 이입되면, 단순한 필기구와 염료 이상의 의미로 여겨진다는 뜻이지요?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서로 길들이는 과정에서 위로도 받게 된다는 말로 들려요. 공감이 가요. 나이를 적잖이 먹어도 감정조절을 힘들어하는 성인이 많은데, 학생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참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컬러테라피를 하고 있었네요?"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덕목은, 마땅히 빠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라 생각할 줄만 알았습니다. 어제도 또 오늘도, 일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마치,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는 다 시골과 다름없다는 말처럼 편향된 사고입니다. 정작 아이들은 대전은 대전대로, 또 대구는 대구대로인 것처럼, 김제 역시 나름의 색이 있는 도시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날로그 필기구를 손에 쥐고, 지혜롭게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만년필을 통해 서로 다름을 배우는 지평선고등학교 만년필 동아리 학생들
김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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