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8 13:47최종 업데이트 23.08.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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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악성 민원은 민원이 아니라 악입니다."

지난 7월, 대구MBC와 부산MBC가 공동 제작하는 <빅벙커>에 출연했다. 주제는 '악성 민원'. 악성 민원의 문제점을 짚는 방송 말미에 마무리로 한 줄 멘트를 해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한 말이다.

악성 민원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면서, 악성 민원은 '악(惡)'이라고 평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그들에게 '악'이었더라. 씁쓸함과 함께 헛헛함이 찾아왔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겠다. 대구시가 '잦은' 정보공개청구를 한 기자를 사실상 '악성 민원인'으로 규정했다는 이야기다.
 

사진은 <뉴스민> 유튜브 화면 갈무리 ⓒ 뉴스민 유튜브

 
지난 6월 8일자 대구시 정보공개심의회 최종 결정문에는 이러한 대구시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용을 보면 "오로지 공공기관의 담당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경우처럼 권리의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 정보공개 청구권 행사를 허용하지 아니한다"며 "청구인의 유사한 정보에 대한 계속적 공개청구 및 소송으로 인해 관련 공무원의 업무수행의 공정성을 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해석하면, 기자가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는 민원인이어서 정보가 공개되면 업무수행의 공정성을 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시장 관사 정보 비공개하는 대구시

대관절 어떤 정보공개청구를 했기에? 바로 지난해 대구시 회계과가 생산한 '지방자치단체 관사 향후 조치 계획'이란 문서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 광역지자체가 같은 이름의 문서를 생산했는데, 해당 문서는 그해 4월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지자체장 관사 폐지를 추진하자, 행정안전부가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요청한 자료다. 다른 지자체들이 공개한 해당 문서를 살펴보면, 관사 운영 현황과 함께 관사의 지속 운영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힌 붙임 문서가 첨부돼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21일 해당 문서의 공개를 요청했지만, 대구시는 한 차례 기한 연장 끝에 5월 18일에야 비공개 결정했다.

사실 대구 지자체장 관사 조치 계획 내용은 그 무렵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확인된 정보들이다. 당시 홍준표 시장은 관사 존치 의사를 밝혔고, 새 관사를 구매하기까지 했다. 홍 시장이 기존 관사를 매각하고 매각 비용에 맞춰 새 관사를 구매하라고 했는데, 9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아파트를 샀다. 기존 관사는? 아직 못 팔았다. 대신 시장의 측근 직원이 관사로 쓰고 있다.

홍 시장이 채무감축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관사 유지 결정이나 새 관사 매입 결정 모두 비판의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홍 시장은 대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며 전세집을 마련한 바 있다. 국회의원 시절엔 전세집을 마련한 그가 시장을 하면서는 세금으로 관사를 사고, 채무를 감축하겠다고 하면 그 진심에 흠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세권 만료 덕에 예금은 2억 원가량 늘고, 채무는 3억 줄었다는 홍 시장의 올해 공직자 재산공개 내용을 보면 진심은 더 의심스러워 진다.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투명한 정보공개'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관사를 활용해야 한다면 근검 절약하며 사용하고 있다는 걸 공개하면 될 일이다. 행안부도 지난해 4월 지자체 관사 운영 개선 권고를 통해 미폐지 관사는 운영비, 면적 등 주민 공개를 강화하라고 했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정보공개 요구에 비공개로 버틴다. 지난해 조례에 근거해 관사 관련 운영비 지출 내역을 정보공개청구했지만, 대구시는 '사생활'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했다. 유사한 정보공개청구를 여러 단체와 언론이 진행했는데도 마찬가지 답이 이어졌다. 결국 <뉴스민>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대구시의 비공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구시는 버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소송을 하고 정보공개청구를 이어가는 기자를 '악성 민원인'으로 매도하며, 공공연하게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쯤되면 악성 민원인을 만드는 게 누구인지 의아할 지경이다.
 

홍준표 시장의 새 관사는 남구 봉덕독에 있는 한 아파트다. 새로 얻은 관사와 예전에 살던 전세집의 소재구가 수성구와 남구로 다르긴 하지만 도보로 약 10분 거리로 생활 반경에 큰 변화가 없다. ⓒ 뉴스민 유튜브 갈무리

  
대구시가 새겼으면 하는 가치와 원칙
 

되돌아가서, 지난 5월 대구시가 비공개 결정한 '지자체 관사 향후 조치 계획'에 대한 이의신청도 외부 5명, 공무원 2명으로 구성된 정보공개심의회 기각 결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부위원 5명 중 3명이 이의신청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구시 손을 들어준 2명의 위원과 대구시 간부 공무원 2명의 뜻이 맞아 결국 비공개되고 말았다.

인용 의견을 낸 3명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대구시가 새겼으면 하는 의견이지만, 홍 시장의 남은 임기 3년 동안은 요원한 일일 것 같아 '악성 민원인'은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청구인이 악성 민원에 해당한다고 하나, 청구인의 그와 같은 전력이 정보 비공개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오로지 공공기관 담당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주관적 의견에 불과하고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아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이유가 언론사의 언론 보도와 관련이 있다면 이는 일반 시민의 알권리 보장이 보다 중요하다는 비례의 원칙상 공개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 A 위원

"관사 향후 조치 계획이 확정안이 될 때까지 지속적인 검토와 수정 단계에 있다면 이는 내부검토 중인 문서로 비공개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당해 안건 관련 문서는 지금까지 특별히 추가 검토나 수정된 바가 없고,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이 예정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청구인과 사이에 진행되는 소송에 직접 관련되는 문서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치계획은 공개 대상이 되고, 이의신청은 인용한다." - B 위원

"해당정보가 공개될 경우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만한 사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비공개로 인하여 얻는 업무 수행 공정성의 이익이 불분명한데 비해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국민의 시정 참여 및 시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 이익은 상시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피청구인의 부차적 비공개 사유는 법에서 정한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다할 것이므로 이의신청은 이유 있다고 보아 청구인의 청구를 인용해야 할 것이다." - C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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