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2 04:57최종 업데이트 23.03.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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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지역이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필진들이 수도권 밖 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봅니다.[편집자말]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구성원들. 가장 왼쪽이 이상원 편집국장. ⓒ 뉴스민 제공

 
"그런데 이젠 한계입니다. 비대면 사회가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근근이 유지되던 사업은 축소됐고, 후원회원은 오히려 감소세입니다. 당장 올해 운영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된 겁니다. 가치를 포기하고, '자본, 권력과 함께하는 언론'이 될 것인가. 독립의 가치를 유지한 채 뉴스민의 간판을 내릴 것인가.

얼마 전 뉴스민의 모든 구성원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간판을 내리자. 가치는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였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뉴스민의 가치와 간판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지난 1월 23일, 설 명절을 앞두고 착잡한 심경으로 써내려간 글은 이렇게 끝이 났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배제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목표로 창간한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의 마지막을 알리는 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관련기사 : 뉴스민을 지켜주세요 https://www.newsmin.co.kr/news/83929/)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체념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2012년 대학을 갓 졸업하기도 전에 창간에 합류해 10년, 가치를 지키려 달려왔지만 올해 1월 첫 회의에서 대표는 공식적으로 재정위기를 알렸다. 대표는 구성원의 개별 의견 청취까지도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개인적으론 이렇게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앞으로 뭘 하며 살까? 기자로서 계속 살아가는 게 맞을까? 기자 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나? 그렇다면 어떤 기자로 살아가게 될까?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써내려간 글이었다. 마침 설 명절이 시작될 때 나가야 할 기자칼럼 연재 순번이기도 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꽥' 소리는 제대로 내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 우리가 결국 필요없던 거였느냐, 이제 우리는 떠난다는 불만 섞인 토로. 온갖 감정과 생각의 교차를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려 했다.

홀린 듯 써내려간 글의 결론은 '뉴스민의 가치와 간판을 지켜달라'는 것으로 끝났다. 참, 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쓴웃음과 함께 동료들에게 먼저 글을 공유하고, 게재에 동의를 받았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뉴스민은 독자후원회원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럴 때마다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란 학습된 체념이 내재했다. 재정위기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먼저 제외됐던 대책이 독자후원회원 확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생각보다 호응이 컸다. 글이 공개된 이후 일주일 사이 70명이 넘는 분들이 새로 후원을 신청했다. 기존 회원들 중에서도 '상황이 그런 줄 몰랐다'며 후원금 증액을 알려오는 이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체념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감동적인 반응이 많았다. 타사 선배 기자들이 먼저 반응했다. 후원호프라도 해서 종잣돈을 마련하자고 했다. 두 번째로 제외한 대책이었던 후원호프는 그렇게 되살아났다. 강혜민 비마이너 대표는 "비마이너만 살아남고 싶지 않다. 뉴스민도 지켜달라"고 했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도 "저도 새해를 맞아 뉴스민 지키기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들의 당부와 동참이 또 다른 당부와 동참을 이끌어냈다.

지역 노동·장애·시민사회계의 반응도 감동을 줬다. 이정아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처장은 "뉴스민도 지키지 못하는 운동이라면 앞으로도 막막하다"며,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장은 "대구지역 유일무이한 독립 언론사 뉴스민을 지키자"며 뉴스민 제2창간 운동에 제 일처럼 나서주고 있다. 이승렬 영남대 교수도 통 큰 후원을 더해주셨다. "후원 때문에 문 닫고 싶어도 못 닫는다고 하지 말고, 열심히 해달라"는 격려와 함께.

무엇보다 감사하고 뭉클했던 소식은 9년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이 후원을 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복직을 위해 싸우느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의 후원 소식까지 들었을 땐, 기쁘면서도 도대체 왜,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우리 소식이 여기저기에 전해지면서 일면식 없는 분들이 후원을 신청하고, 응원 메일도 보내왔다. 왜?

우리가 '돈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던 이유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홈페이지 화면 ⓒ 뉴스민

 
생각보다 큰 호응과 격려를 받고 보니, 그동안 뉴스민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이젠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겠구나'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들어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시작해, 이제 겨우 10년을 넘긴 작은 언론사의 존폐에 이토록 많은 분들이 마음을 내주는 이유가 있을 것이어서다.

아마도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뉴스민은 권력이나 자본의 시선이 아니라 보통의 시민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보도하고, 해야 할 보도는 반드시 한다는 신뢰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뉴스민이 그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독자회원들의 지원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독자회원이 늘고 지원이 늘면 그만큼 보도할 수 있는 역량과 영역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그동안 뉴스민은 400명을 조금 웃도는 독자회원의 지원을 종잣돈 삼아 취재·보도의 방향성을 침해하지 않을 용역 사업(생중계, 콘텐츠 제작, 교육 등)을 하거나, 소액의 광고로 운영해왔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도처에 있다. 유혹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뉴스민이 문을 닫을 거라고 하니, '포털에 뉴스검색제휴가 된 언론사가 왜 돈 때문에 문 닫는다는 소릴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업자들에게 넘기면 못해도 수억 원 가치는 할 거라는 말도 들었다. 그만큼 뉴스를 돈벌이로 삼으면 쉽게 돈을 벌 방법은 널렸다.

단적인 사례가 기사형 광고다. 2016년 뉴스민이 네이버 뉴스검색제휴사가 된 직후 한 광고대행사는 '기사형 광고를 전송하면 대가로 건당 30만 원을 준다'고 제안해 왔다. 당시 포털의 제재 조항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월 최대 4500만 원을 손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유혹이었다.

그 무렵 한참 유행하던 영화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를 되뇌며, 제안을 거절하고 제안 사실을 기사화했다. 해당 업체의 제안처럼 기사형 광고가 작성된 사례를 찾아보니 꽤 많은 언론이 그 일을 했다. 대형언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사화를 하지 않을 뿐이지, 이후로도 유사한 제안은 잊을 만하면 들어온다.

광고를 매개로 한 지자체의 회유도 적잖다. 2014년 대구시가 이우환 미술관 건립을 추진할 때 김범일 당시 시장과 이우환 화백이 주고 받은 서신을 공개하자, 대구시는 광고로 기사 삭제를 회유하기도 했다. 직접 광고를 언급하지 않아도 대구시나 지역 권력기관들은 다양한 경로로 기사 삭제나 큰 폭의 수정을 요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뉴스민이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서 받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반복하면,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독자회원들의 지원인 것이다.

뉴스민 제2 창간 프로젝트
 

1월 30일부터 본격적으로 독자회원을 늘려 뉴스민의 제2 창간을 이뤄재내자는 프로젝트가 본격 논의됐다. 독자회원 1000명 확보.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다. 부족한 건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일을 해서 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 사이에도 다시 활력이 돈다. 박중엽 기자가 뒤를 이어 뉴스민을 함께 이어가고 싶다는 고백을 했고, 막내 장은미 기자도 그 뒤를 이었다. 김보현 기자는 외부에 소식을 알렸고, 대표는 다시 계획을 세웠다. 오는 3월 31일 대구에서 뉴스민 제2 창간을 위한 후원의 밤이 예정돼 있다. 창간일인 5월 1일까지는 지속해서 독자후원회원을 늘리는 캠페인을 이어간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한다. 400여 명이 함께 만들어낸 뉴스민의 1회차는 여기까지였다. 이젠 1000여명으로 늘어난 독자회원들과 함께 더 멀리 나아가는 뉴스민이 되고자 한다. 그 길에 함께 해주길, 부탁드린다.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구성원들. 가운데가 이상원 편집국장. ⓒ 뉴스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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