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2 07:01최종 업데이트 23.08.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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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오후 대구시 중구 의회 표지판 모습. ⓒ 연합뉴스

 
7월 27일 대구참여연대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대구시 중구의회 앞에서 부의장인 배태숙 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의 제명과 윤리특위위원장인 안재철 의원(더불어민주당)직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단체들은 '감사원 감사 결과 중구의회 배태숙 부의장이 유령회사를 설립해 중구청과 각종 인쇄물 등을 경쟁 입찰 없이 임의로 선택해 체결하는 수의계약으로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 및 지방계약법 등을 위반한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배 의원이) 그동안 발뺌하고 문제 제기하는 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겁박하고, 인쇄업체의 착오로 발생한 오해라는 거짓 해명을 하며 시민을 기만했다"면서 "감사원 결과가 나왔음에도 공식 사과나 사퇴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중구의회가 이런 사실을 알만한 직·간접적 근거가 있음에도 배 의원을 비호하고, 안재철 의원은 과거 배 의원이 시민단체에 찾아와 거짓 해명하는 자리에 동행함으로써 윤리특위위원장의 중립·공정 의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도대체 어떻길래 이들이 이렇게 분노한 것일까.

당선 후에도 유령회사 만들어 구청과 거래

시민단체들이 언급한 감사원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못해 '한편의 범죄드라마'와도 같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배 의원이 구 의원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운영해온 인쇄·간판 홍보업체는 중구청 등과 2017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총 102건(3억3500만 원)의 물품 구매 또는 용역계약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해 왔다.

계약내용을 보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홍보물, 국회의원 보궐선거 홍보물, 코로나19 방역용 구내식당 비말 차단 가림막, 재활용품 분리수거함 등 다양하지만 주로 홍보·인쇄물에 집중돼 있다. 중구청의 거의 모든 부서와 계약해왔고, 가끔 보건소, 동사무소 등과도 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배 의원이 2022년 중구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그의 회사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수의계약 제한 업체가 돼 중구청·중구의회 등과 수의계약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배 의원은 유령회사를 세워 중구청과 계약을 계속 진행했다. 유령회사의 대표는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배 의원 회사에서 보낸 이메일이 유령회사에서 보낸 이메일과 동일한 점  ▲유령회사 명의로 계약한 물품을 배 의원 회사가 매입한 점 ▲유령회사 대표가 계약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고, 계약 내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진술한 점  ▲배 의원 회사 직원이 유령회사 계약 건에 대한 지역개발공채를 매입한 점(지역개발공채에 배 의원 아들 성명,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인적사항이 기재된 점) 등으로 배 의원의 법 위반 사실을 확정했다.

참고로 지역개발공채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로, 지자체 등과 물품구매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대구시의 경우 대금 청구액의 1.5%만큼 지역개발공채를 매입하도록 돼 있다. 

이밖에 중구청 계약 담당 공무원이 유령회사와 배 의원 회사 간의 관계를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유령회사의 납품 실적이나 인력·장비 등을 점검해 계약 이행 능력이 있는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구민 기만한 '사기극', 단죄될 수 있을까
 

2022년 12월 19일 대구 중구청에서 중구의회 김오성 의장(왼쪽부터), 김동현·배태숙 의원이 예산안 갈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배태숙 의원 ⓒ 연합뉴스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7월 27일 열린 대구 중구의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배 의원의 징계에 대해 '30일 출석정지' 처분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윤리특위 회의가 열리기 직전 안재철 의원이 위장직을 사퇴한데다, 의원들이 자료부실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징계 양정 논의는 보류된 상태다. 당시 몇몇 의원은 '제명'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명백한 법 위반을 지적하며 징계요구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통보했는데도 왜 징계 절차가 이토록 지지부진한 걸까. 사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꽤 복잡다단한 쟁점이 얽혀 있다.

첫째, 관련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배 의원의 유령회사와 계약을 맺고 용역사업을 진행했던 중구 공무원들은 한 두명이 아니다. 중구청 몇 개 부서, 중구의회,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동사무소 등 계약 담당 공무원들이 다 연계돼 있다. 

배 의원만 징계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다. 감사원은 "중구 공무원들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라고 에둘러 지나갔지만, 상식적으로 중구청 공무원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자가 '주소지에 상호조차 표기되지 않은 회사와 어떻게 거래하게 됐는지' 물으니, 중구의회 사무과는 "명함도 받았고 상품을 찾다 보니 업체를 찾아냈다"고 답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는 공무원이 찾아낸 회사가 유령회사라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둘째, 사건 진상규명에 나섰던 의원들 역시 갑질 논란 등으로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일부 의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올해 초부터 배태숙 의원 건과 관련해 도심재생문화재단 등의 서류를 점검하고 열람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공무원노조는 지난 2월 16일 성명을 내고 이들의 행위가 '의원 갑질,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징계를 요구했다. 의원들은 해당 재단의 업무보고가 부실해 사전에 전화를 하고 찾아가 배태숙 의원 회사 거래내역 등이 포함된 회계서류 등을 열람했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의원들이 절차를 어기며 갑질을 했다고 지적했다.

두 의원은 결국 출석정지 30일 징계를 받았는데, 한 의원은 이에 불복하는 과정에서 주소지를 남구로 옮긴 사실이 드러나 지난 4월 10일 의원직을 상실했다. 또 한 명의 의원은 한 차례 더 징계를 받고 의장 등과 갈등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중구의회 윤리위가 솜털 같이 가벼운 징계를 내린다면, 분명 이러한 한계들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에 뜻을 모은 입법기관의 자정능력은 사실상 없다는 게 정답이다. 

윤리심사자문위 결과를 뒤늦게 알게 된 시민단체들은 배 의원과 관련 공무원들에 대해 경찰 고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구민을 대표하는 지방의원의 '유령회사 사기극'은 단죄받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인 백경록 기자는 스픽스대구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SPEAKS_TV_TK)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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