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6 10:50최종 업데이트 23.07.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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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지역의 주민과 통화를 했다. 그 지역의 시장이 어떤 사정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서 지역현안을 갖고 부시장과 소통을 하려는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부시장은 도청에서 인사발령을 받아 잠깐 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책임감 있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는 게 주민 의견이었다.

부군수, 부시장, 부구청장같은 부(部)지방자치단체장이면 지역의 행정에서는 '넘버2'다. 그런데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자치구의 부단체장은 광역 시·도의 공무원들이 순환해서 인사발령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인사관행이다. 그렇다 보니, 부단체장이 지역의 어려운 현안을 책임있게 해결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광역지방자치단체(시·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넘버2'라고 할 수 있는 행정부시장, 행정부지사도 서울을 제외하면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순환해 임명되고 있다. 지방자치법과 그 시행령에서 시·도의 행정부시장, 행정부지사를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방자치법 제123조 제3항 및 시행령 제71조 제2항). 시·도지사가 제청권을 갖지만 행안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니, 사실상 행안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임명되는 행정부시장과 행정부지사들은 시·도의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감독하는 권한을 갖는다(지방자치법 시행령 제71조 제4항). 그야말로 지방자치단체의 2인자로서 지위를 갖는다. 그리고 도지사가 궐위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행정부시장과 행정부지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지역주민들이 선출하지도 않은 국가공무원이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을 총괄하게 되는 셈이다. 
 

2월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14일 오후 국기와 정부기가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예를 들면, 지금 국토교통부 장관을 하고 있는 원희룡 장관이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하던 2021년 8월 대선출마를 이유로 지사직을 중도에 사퇴해 버렸다. 임기를 11개월이나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당시에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였던 행안부 공무원이 졸지에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당시 행정부지사의 경력을 보면, 경기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행정고시 합격 이후에 행안부에서 주로 근무했고, 중간에 충남의 한 도시의 부시장을 지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다가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로는 2021년 6월에 왔는데, 몇 달만에 도지사 권한 대행을 맡게 된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지방자치의 기본은 지역을 알고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공무원이 잘 알지도 못하는 지역에 갑자기 내려와서 지방자치단체의 '넘버2'가 되고, 심지어 광역 시·도지사의 권한대행까지 한다는 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치도 아니다
     
지역주민들이 선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 지역의 지방자치를 총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 심지어 부단체장 임명과정에서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임명되는 행정부지사는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국가공무원은 자신을 임명한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이지,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부단체장이 잘못을 하더라도 지역주민들이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주민소환이라는 방법으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아니면 다음 번 선거에서 떨어뜨리기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낙하산으로 내려온 부단체장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이 통제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단체장에 대한 실질적인 임명권을 지방자치단체장이 갖되,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중앙정부의 국무총리를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광역 시·도의 부단체장 인사에 중앙정부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초 시·군·자치구의 부단체장 인사에 광역 시·도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두면 된다. 그래야 잘못된 관행을 근절할 수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 중에는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 중에서 당선무효형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그 지방자치단체는 부단체장이 권한대행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단체장이 보궐선거로 선출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된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자치라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제주, 세종, 강원, 전북은 '특별자치'까지 한다는데, 여전히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부단체장으로 오고 있다. 

이것을 '중앙과 지역간 소통'이라고 미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자리챙기기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을 여전히 '중앙의 출장소'처럼 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치(自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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