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5 04:48최종 업데이트 23.06.1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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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신관 대강당에서 열린 홍준표 경남도지사 퇴임식에서 홍준표 당시 도지사가 퇴임사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밤 11시 57분.
 
검사 출신 홍준표의 법 활용법을 어느 때보다 정확히 보여준 시각.
 
2017년 4월 9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는 그해 5월 9일로 예정된 '탄핵 대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대선에 나설 공직자의 사퇴 시한을 3분 남겨두고 사임서를 전자문서로 경남도의회에 제출했다. 그탓에 정상적으로 사퇴가 이뤄졌다면 5월 9일 함께 치러졌어야 할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는 무산됐다. 경남도민은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1년여 동안 '민주주의를 잃어버렸다'.
 
도민에게서 '민주주의를 빼앗은' 그는 4월 10일 오전 6시 29분, "어제 자정 무렵에 경남도지직을 사퇴했다. 반대측 반발이 있지만 임기 1년 남짓한 도지사 보선을 피하기 위해 지난 10여일 대선 선거운동을 못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도민에 대한 미안함보다 자신이 감수한 불이익을 먼저 언급했다.
 
오전 10시에는 도청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눈물로 퇴임사를 읽었다. '스트롱맨'의 의외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약 10분 동안 담담히 읽어내려가던 그의 목이 메이기 시작한 건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가 가까이 있어 자주 갈 수 있어 좋았다"는 대목을 앞두고부터다. 끝까지 자신만 생각하던 도지사, 라고 평가하는 게 어쩌면 적확할지도 모를 그 순간은 '법꾸라지'로서의 그의 면모도 확실하게 보여준 순간이다.
     
법을 잘 아는 시장의 절묘한 방책
 
뜬금없이 왜 6년이나 지난 일을 들출까? 여전히 그는 그 모습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홍 시장은 대구에서 15회째 이어져 온 퀴어축제를 '막을 수 있는' 자신만의 묘수를 페이스북에 알렸다. 경찰의 교통 통제 협조 요청을 거부하고, 축제가 이뤄지는 장소 주변 도로에 대한 버스 노선을 조정할 수 있는 자신의 권한을 쓰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혀를 내두를 만큼 절묘한 방책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경찰에서 원만한 질서 유지를 잘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시기 바란다"는 마지막 덧붙임에 미뤄 그는 자신의 결정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인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안전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정말 소름 돋는 꼼꼼함이다.
 
대구시장으로서 그는 필요한 순간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뜻한 바를 관철하고 있다. 법적 책임 소재도 절묘하게 피해 간다.
 
2022년 10월 11일 오전 대구시청 동인동 청사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주최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불통 행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대구시와 행정안전부 사이에서 논란이 된 지자체 조직권 문제에서부터 그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시기구를 만들고 전문임기제 직원을 임용할 때 해야 하는 행안부와의 협의는 문자 그대로 '협의'에 그친다. 행안부가 문제를 제기해도 '합의'가 아니라 '협의'일 뿐이라고 일갈하고 뜻대로 직제를 운영한다. 자신의 측근들을 대구시 중요 사업을 컨트롤하는 데 배치하면서 행안부 협의 내용과 다르게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시장 보좌 기능에 그쳐야 할 '특보'들은 그렇게 '본부장'이 돼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법률적 결재권이 없는' 책임자가 된다.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조직표는 특보, 내부에선 본부장으로 불리는 웃픈 상황이 연출돼도 '협의' 했으니 그만이다.(관련기사 : 대구시 민선8기 과제 실천하기 위한 6개 한시기구 신설 https://omn.kr/20jix)
 
자신의 말 한마디로 촉발된 달성군 가창면의 수성구 편입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툭 던지듯 한 말로 가창면은 수십 년을 형님, 동생 하던 지역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편을 나눠 다투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관련기사 : 달성군 가창면 수성구 편입 위한 주민설명회, 시작도 못하고 파행 https://omn.kr/245fm)

운을 떼고 3개월 만에 법이 정한 절차를 추진하겠다면서 대구시의회로 '경계변경 조정 신청 동의안'을 던졌다. 동의안 회부를 앞두고 가창면에서 열린 주민설명회는 파행했다. 그래도 "연말이면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거수기'라고 비판 받는 대구시의회조차 이건 좀 너무 한 건 아니냐며 혀를 차지만, 마이웨이다.
 
공무원 골프대회 지원금이 부적절하게 쓰인 것 같다는 의혹에 대한 대응도 법대로는 문제가 없다. 시상금, 심판비 명목으로 쓴 1300만 원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유독 올해만 비공개다. 지난해에도, 2018년에도, 2017년에도 공개했던 자료다. 심지어 대구시 산하 사업소인 상수도사업본부는 같은 내용을 담은 올해 문서를 버젓이 공개하고 있지만, 대구시는 비공개다.

시민의 권리를 빼앗는 명분
         
이 모든 일이 그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성소수자 권익만큼 중요한 성다수자 권익을 지키고, 지방자치 시대에 도 넘는 행안부의 월권에 맞서는 것이며, 지역민들의 행정 불편을 교정하는 일이고, 사생활 침해를 막고 공정한 업무 수행을 위해서라는. 6년 전 오밤중 사퇴도 쓸데없이 보궐선거에 돈을 쓰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명분이 도민의 참정권을 빼앗듯, 시민들이 안전하게 누릴 집회와 결사의 자유나, 대구시 공무원들이 인사상 얻을 수 있는 기회, 가창면의 평온한 일상, 시민의 알권리를 빼앗는 결과도 함께 가져온다.

그럼에도 자신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을 먼저 토로한 도지사 홍준표처럼, 시장 홍준표 역시 자신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을 계산하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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