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4 13:28최종 업데이트 23.05.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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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는 한 지역의 주민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는 업체가 지역 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고, 환경청이 업체에 보완요구를 한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업체가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어떻게 제출했는지, 그리고 환경청이 업체에 어떤 보완요구를 했는지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였다.

국민 알 권리 침해하는 환경영향평가 절차
 

3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허가 등 현 정부의 환경정책을 비판하며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환경영향평가란 어떤 계획이나 사업을 시행하기에 앞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평가해 환경 친화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는 제도다.

그런데 한국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지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업체가 처음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작성하면 공람을 한다. 환경영향평가정보시스템(https://www.eiass.go.kr/)에 들어가면 공람할 내용을 볼 수 있다.  


이후 초안을 놓고 설명회나 공청회를 연다. 업체가 설명회를 하더라도 주민 30명 이상이 요구하면 공청회를 하도록 의무화돼 있기도 하다. 

문제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할 의무는 없다는 점이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는 '주민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했는지 아닌지를 14일 이상 공개하라'고만 명시돼 있다. 주민의견이 타당할 때는 꼭 반영하도록 하는 조항은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설명회든 공청회든 형식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업체는 초안을 보완한 다음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작성해 환경청에 제출한다. 그런데 본안은 공개되지 않는다. 앞서 필자가 전화를 받은 산업폐기물매립장에 대해 업체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찾아보니 '진행중'이라는 표시만 뜬다. 내용은 볼 수 없다. 또한 환경청이 업체에 보완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이후에 진행되는 절차는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한 '깜깜이' 절차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환경청이 최종적으로 협의의견을 낸 이후에야 본안이 공개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끝난 다음이다. 주민들이 '다 끝난 다음에 공개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더구나 환경청이 최종적으로 협의의견을 보낸 이후에도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이 비공개되는 경우가 있다. 논란 속에서 지난 2월 환경부가 '조건부 동의'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완료된 지금도 환경영향평가서를 볼 수 없다. 양양군이 비공개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법 제66조는 사업자가 해당 계획 또는 사업의 추진에 현저한 지장을 줄 것으로 판단돼 요청하면 절차가 완료된 환경영향평가서도 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사업자가 '현저한 지장'이 있다고 주장하면 비공개된다는 것인데,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다. 

대부분 '동의' 또는 '조건부 동의' 

환경영향평가법 제1조는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하고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목적이 달성되려면 '친환경적이지 않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나 '국민의 건강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훼손하는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통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대부분 경우에 환경영향평가 절차는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최종적으로 '동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를 할 수 있는데, 100% 가까이가 동의나 조건부 동의다.

조건부 동의라도 사업은 그대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조건부 동의도 사업추진 자체에는 동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012년~2019년까지 환경영향평가에서 환경청이 부동의 의견을 낸 비율은 1.1%에 불과했다(이종호, '토지환경 및 자연생태환경을 고려한 환경영향평가 협의결정 개선방안', <환경영향평가> Vol. 29, No. 1, 2020).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도대체 '다 동의해 줄 거면 환경영향평가는 왜 하느냐'고 묻는다. 

이렇게 실효성이 약한 환경영향평가 제도이지만, 그나마도 업체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들이 많다. 예를 들어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따르면 발전사업의 경우에는 10MW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다. 만약 어떤 업체가 발전용량을 9.9MW로 잡으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산업폐기물소각장도 하루 100톤 이상을 소각해야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된다. 하루 90톤을 소각한다고 하면 환경영향평가를 피해갈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환경영향평가조례로 이런 기준을 절반까지 낮출 수 있지만, 현실을 보면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광역지방자치단체도 많다.  

그 외에도 숱한 문제들이 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 외에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도 규정돼 있다. 주로 일정 규모 이상 개발사업에 적용되는 절차다. 그런데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는 협의가 완료될 때까지는 초안조차도 아예 공개가 안 된다. 그래서 주민들이 평가서 내용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환경파괴 사업에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제도 만들어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2022년 8월 2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환경규제 혁신방안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환경영향평가법의 실효성이 매우 약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 지난 3월 30일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외 10명의 의원들이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간이평가절차'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간이평가 대상으로 분류되면 그나마의 의견수렴 절차, 평가서 작성, 환경청(환경부)과의 협의절차도 생략할 수 있다. 한마디로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더 약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의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슷한 취지의 방안을 '환경규제 혁신방안'이라면서 보고한 바 있다. '사실상 청부입법 아니냐'는 환경단체 생태지평의 비판도 이 때문에 나왔다.

가뜩이나 실효성이 약한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더 약화시키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국민의 알 권리와 실질적인 참여권을 보장하고, '환경파괴' 사업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환경부가 '환경파괴 방관부'를 넘어서서 '환경파괴부'가 되지 않겠다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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