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이 지난 3월 29일 자 1면에 게재한 기사 "가디언 소유자가 설립자들이 노예제에 연관된 것을 사과하다"
가디언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설립자와 노예무역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지난 2020년 <가디언>은 신문사의 역사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기로 약속했었다. 초점은 노예 노동, 자본, 그리고 언론이다.
16~19세기 대서양에 존재했던 노예무역은 1833년 영국이 노예제를 금지한 후 프랑스, 미국, 브라질 등에서도 차례대로 폐지되면서 19세기 말에 사라졌다. <가디언>이 알고 싶었던 것은 노예 소유 여부 같은 단순한 수준이 아니다. 노예 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이 신문사로 흘러 들어왔는가의 여부 그리고 신문사 사설에 끼친 영향을 알고 싶어했다.
<가디언>의 캐서린 바이너 편집국장은 '노예제 유산 보고서'를 받았을 때 "토할 것 같았다"고 직접 쓴 사설에서 밝혔다. 특정 자본과 밀착되었을 때, <가디언>이 그동안 자부심을 가졌던 두 가지 가치, 즉 개혁과 독립성이 흔들린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1821년 <맨체스터 가디언>으로 시작했다. 19세기 맨체스터는 산업 혁명의 중심지로 소위 '가진 자'들이 급진적 사상을 키웠던 곳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맨체스터 면방직 공장에서 노동자의 현실을 목도하고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저술했고 이후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운동가로 활동했다.
<가디언>을 창간한 존 에드워드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면방직 사업가였지만 재산에 따라 선거권을 갖는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성인 남성 10% 정도만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동자 계층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819년 피털루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투표권 확대를 요구하며 맨체스터 시민 6만 명이 집결했으나 기병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15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테일러는 "시민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 개혁"을 지지한다며 <맨체스터 가디언>을 창간했다.
창간 100주년인 1921년 당시 편집장 찰스 스콧은 <가디언>이 추구하는 목표에 언론의 독립성을 더한다. 영국의 주류 언론들이 1차 대전 대독일 프로파간다와 가짜 뉴스 유포에 참여한 후였다. 그는 사실 왜곡에 혐오감을 느끼며 인간 의식을 조정할 수 있는 언론의 힘을 고민했다. 그리고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며 신문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가 "독립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초대 편집장이 내세운 개혁, 100주년 당시 편집장이 내세운 독립성은 현재 <가디언>의 중심 가치다. 특히 대기업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영리 공익재단인 스콧 트러스트를 만들고 시민들의 구독료와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0년 의심되는 정황
2020년 하반기 <가디언>은 수수께끼 하나를 접하게 된다. 2021년 5월 창간 200주년을 맞아 특집을 준비할 때였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과 21세기의 개혁을 다시 고민하는 과정에서 200년간의 종이 신문의 역사 그리고 <가디언>이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취했던 입장을 되돌아보았다.
지금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지식의 한계와 시대적 한계를 노출한 부분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문제가 노예제였다. <가디언>이 노예제를 반대했음에도 정작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수수께끼가 주어진 2020년, 노예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이 한창이었다. 영국에서는 그해 6월 청년들이 브리스틀의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을 무너뜨려 강으로 빠뜨렸고 옥스퍼드대에서는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동상 철거 운동이 벌어졌다.
21세기 인종 문제에 신문사 의견을 내기 위해서라도 <가디언>은 미궁의 역사를 좀 더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논의 끝에 2020년 11월 <가디언>은 자체 조사를 선언했다. <가디언>을 소유한 스콧 트러스트의 알렉스 그레이엄 대표는 설립자가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고 노예무역을 하지 않았지만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단체들은 각자의 역사를 이해하고 토론해야 한다. 특히 언론 기관은 개방성을 가지고 과거와 현재의 위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수를 직시하고 부끄러움을 가지고 미래를 마주해야 한다. 우리가 책임을 묻듯 우리도 책임을 지겠다. (…) 우리의 역사를 검토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한 과거의 불공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디언>은 노팅엄대학교와 헐대학교의 대영제국 경제사와 노예무역 전공자들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이들에게 200년간 <가디언>의 모든 기록물을 보관한 문서 보관소의 무제한 접근을 허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