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8 19:51최종 업데이트 22.10.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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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놀이연구소'의 최윤미·강동완 부부는 지난 9월 30일, 태안에 있는 백화초등학교에서 그들이 개발한 '함포놀이·띵가띵가·한알두알·요리조리'를 펼쳐 근사한 놀이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이 초가을 운동장에 가득했다. 오전 내내 아이들과 땀을 흘리고 돌아가는 길, 최윤미는 '노리카'에 시동을 걸면서 남편 강동완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힘들 때 뭐가 생각나요?"
"그 언제야 신양면아동센터에서 만난 현성(가명)라고 있잖아, 그 아이 생각이 많이 나."


잠시 뜸을 들이던 강동완의 대답이다. "현성, 걔가 왜요?" 예산군 예산읍의 사무실로 가는 길을 내비에서 찾으며 최윤미는 재차 물었다.

"얘기 안 했나? 내가 신양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일 때 놀이 품앗이하면서 만난 앤데 두 달 동안 한 번도 안 끼고 서성거리기만 하더라구요."

강동완이 말한 현성이는 입성이 꼬질꼬질했다. 할머니 밑에서 크는데 삼시 세끼 고추장이나 간장에 밥 비벼 먹는 형편이고, 학교도 다니는둥 마는둥 했다. 비석치기를 하건, 사방치기를 하건 바라만 보던 녀석은 5회 차가 끝나 작별인사를 할 때 슬며시 강동완의 바짓가랑이를 흔들었다. 물기 어린 눈망울로 "선생님 또 안 와요?"라고 물었다. 

"지금이야 10여년 되다 보니 처지는 아이가 보이고 끌어줄 수 있잖아. 그때 내가 현성이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그 아이 인생에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학교 앞 도로 30km 속도를 지키며 최윤미는 천천히 백화초 앞을 빠져나갔다. 강동완의 되뇌는 듯한 이야기를 물고서 가로수들은 조금씩 뒷걸음쳤다. 강동완의 말처럼 부부는 쭈뼛대고 머뭇거리는 아이를 어울리게 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 불평등한 놀이터도 만든다.

자존감이 없거나 결손가정의 아이, 주목받지 못하고 남 앞에 서 보지 못했던 아이가 이길 수 있게 슬그머니 작용을 한다. 그리곤 이긴 아이를 불러내 함께 놀이에 참가한 모두에게 두 엄지를 내밀어 칭찬하라고 외친다. 성취감을 느낀 아이가 제법 많았다. 
 

부부가 '노리카' 앞에서 부부의 보물 1호 '노리카' 앞에서 손을 잡고 ⓒ 민병래

  

밧줄놀이를 준비하는 모습 부부는 원목놀이만이 아니라 밧줄놀이도 한다. ⓒ 민병래

 
스필모빌운동을 접하고 

"서해안 고속도로 오르기 전에 밥을 먹을까요?"
"그래요, 여기 서산에 생선구이집 유명한 데가 있어요"


해미IC가 얼마 안 남았을 때 12시도 훌쩍 넘은 데다 기운을 많이 썼기에 강동완은 강한 시장기를 느꼈다. 최윤미도 맞장구를 치며 보물 1호인 '노리카'의 방향을 틀었다. '노리카'는 '놀이+카'라는 뜻으로, 강동완이 대학원 재학 시절에 접한 '스필모빌'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장만했다. 

마을공동체에서 만난 공주대 예산캠퍼스 정남수 교수는 "입학금을 대주겠다며 놀이에 대한 열정을 학문적으로 탐구해보라"며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 '꼼지락 적정기술협동조합'에서 만난 이승석 선배도 단순한 레크레이션 강사를 넘어서려면 놀이에 철학을 담는 게 좋으니 공부를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결정은 어려웠다. 2014년에 '세상놀이연구소'를 만들어 '놀이강사'를 전문으로 하겠다고 나섰으나 시간 당 3만 5천원 수준의 강사료, 그나마 불러주는 곳도 드물어 물리치료사인 아내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처지였다. 학비까지 대준다니 좋은 기회였지만 아내에게 큰 짐을 지우는 셈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 최윤미가 해보자고 격려한 덕에 40대 중반인 2015년에 입학한 농공학(지역) 대학원에서 강동완은 해외의 놀이사례를 연구했다. 그때 놀잇감을 만들어 낡은 벤이나 트럭 같은 데 싣고 고아원이나 난민촌 같은 곳을 찾아가는 독일의 사회운동 '스필모빌'을 알게 되었다. 이 운동은 6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지금은 300여개 NGO가 활동하고 있고 유럽 다른 나라로도 퍼져갔다.
 

강동완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 그는 놀이하는 어른이다. ⓒ 민병래

 
강동완은 유튜브를 검색하며 스필모빌 운동이 사용하는 놀잇감이 어떤 건지를 찾아보았다. 대학원을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마을에 있는 목수 형님과 궁리해 우리식으로 하나씩 만들었다. 그걸 낡은 트럭에 싣고 동네 학교나 예당호 같은 곳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판을 벌였다. 

주변에서 서양놀이만 잔뜩 모은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강동완은 나름 원칙을 세워 밀고 나갔다. 원목으로 만들되 쉽고 재미있으며,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어울려 겨룰 수 있고 하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될 것!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어낸 놀이도구가 '넓죽이·길죽이·꼬맹이' 등 무려 20여 종이 되었다. 지금은 '노리카' 내부에 진열장까지 짜서 싣고 다니며 아이들을 만나면 뚝딱 놀이상을 차려낸다.  

사고 쳐서 마련한 노리카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봐요?"

고등어와 전어구이로 늦은 점심을 먹고 차에 오르려던 최윤미는 먼저 나온 남편 강동완이 '노리카'를 흐믓하게 바라보는 모습에 딴죽을 걸 듯 물었다. 벌이도 시원찮은데 양쪽 문이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윙바디 트럭'을 장만하는 건 쉽지 않았다.

3년 전인 2019년 초 강동완은 3천만 원에 이르는 차를 덮석 계약했다(내부에 장난감 진열장을 짜느라 이후 수천만 원이 더 들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할부금이 나가게 했지만 아내가 알 수밖에 없기에 강동완은 머리를 싸맸다. 고맙게도 아내 최윤미는 퇴근해 들어오며 얘기 물꼬를 터줬다.

"집 앞에 새 트럭이 서 있던데 누구네 거예요?"

예산읍의 작은 골목, 다 한 식구같이 지내는 옆집이라 김장김치가 몇 포기 남은 지도 아는 처지, 게다가 운전이 힘든 어르신이 대부분인데 윤기가 흐르는 트럭이 골목길에 버티고 있으니 눈에 들어올 수밖에.

강동완은 심호흡을 하고 아내의 뒤에서 털어놓았다. "사실은 내가 60개월 할부로 긁었어. 한 달에 47만 원씩" 외투를 벗으려던 최윤미의 어깨가 떨렸다. 엄마가 왔다고 쪼르르 달려오던 아이들은 안방의 무거운 공기에 뒷꽁무니를 뺐다. 
 

최윤미의 모습 남편 강동완과 최강유랑단을 꾸렸다. ⓒ 민병래

 
강동완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향토기업인 청룡건설에 재직할 때, 1군이었던 대산건설 출신이라고 30대 후반에 업무부장을 맡아 차량과 법인카드를 제공 받았다.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뛰었다. 계약되면 좋아서 한 잔, 못 따내면 열 받아서 한 잔. 집은 하숙이고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다녀오세요"가 고작이었다.

건설회사 영업직 시원으로 5년이 넘어가던 어느 날 최윤미는 강동완에게 종이를 건네며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고 했다. 가정과 남편을 위해서 멈춤이 필요했다. 잘 살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최윤미는 생활 수준과 소비를 줄이더라도 '이타적인 삶을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아내의 권유에 남편 강동완은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놀이의 스승을 찾아서

사회복지사 2급을 따 예산군 요양원에서 일하며 강동완은 "봉사하며 살자"는 다짐대로 신양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을 맡았다. '신양놀이문화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며 놀이품앗이에 나섰다. 아이들에게 공기놀이, 잣치기, 비석치기를 알려주고 함께 놀았다. 재밌고 보람 있었다.  
 
그런데 전래놀이 몇 가지로 아이들에게 충분할까? 금세 싫증나지 않을까? 요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놀이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참교육 학부모연대'가 서울 성북구청에서 놀이 강습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작정 올라갔다. 세 시간 수업을 받고 예산으로 내려오는데 알 듯 모를 듯했다.

그는 편해문의 '우리 이렇게 놀아요'를, 이상호의 '전래놀이 101가지'를 정독했다. 읽기만으론 잘 다가오지 않았다. 강동완은 충주에 사는 이상호 선생을 직접 찾아가 저자 사인을 받고 이해 안 된 부분을 물었다. 이상호는 강동완에게 놀이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스승이 되었다.

그 다음은 아이들! 신양면은 학원이 없기에 학교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이면 놀이판을 벌여 이상호 선생에게 배운 걸 펼쳐 보였다. 아이들은 동반자이자 스승이 되었다. 전래놀이 하나하나, 잊힌 우리 놀이를 한 가지씩 마을에 전해나갔다. 그리곤 어느 순간 강동완은 '놀이'에 인생을 걸게 되었다. 
 
늦은 점심을 푸짐하게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부는 10월 일정을 점검했다. 보령시 일정이 많다. 송학초, 관창초, 남포초 등등. 많은 일정 중에서도 최윤미·강동완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섬마을 분교에 들어가는 날을 꼭 챙긴다.

바다를 가르는 뱃길도 좋지만 분교의 아이들은 고작 대여섯명, 이들에게 노리카는 특별한 손님이고 진기한 경험이다. 방문 일정은 충남교육청의 협조를 받지만 엄연히 부부의 재능기부다. 
 

노리카를 펼쳐놓고 아이들과 준비체조를 하는 모습 준비체조와 마음열기놀이가 필수다 ⓒ 강동완제공

   

노리카에서 다양한 원목놀이를 펼쳐 논 모습 노리카만 있으면 깜짝 놀이터가 펼쳐진다. ⓒ 강동완제공

 
소똥, 돼지똥을 치우더라도

"10월 일정도 꽉 찼네요"
"우리 최강유랑단도 많이 컸어요. 당신 똥 치우려던 때도 있었잖아요." 
"아, 당신 또 그 소리..."


최윤미가 약 올리듯 똥 치우는 얘기를 꺼내는 건 사연이 있다. 세상놀이연구소를 창업하며 사회복지사를 그만둔 데다가 대학원까지 다녔으니 생활이 많이 쪼들렸다. 그때 강동원의 바람은 한 달에 고정수입 백만 원만 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학부모회에서 만난 마을 형님이 운영하는 돈사를 찾아가 강동완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형님, 똥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백만 원만 주면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말끔하게 치울텐데..."
"여보게 아우, 그런 말 말어, 일주일에 한 번씩 십만 원 받고 하는 사람들 많어."


강동완은 볼이 빨개지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축사에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눈이 시큰거렸다. 괜히 아내에게 좋을 일이 있을 거라고 큰 소리를 쳤나, 입방정을 떨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아내 최윤미는 잊을 만하면 약 올리듯 그 얘기를 꺼내지만 지금은 즐거운 추억이다. 

부부가 결심해 청룡건설 업무부장 노릇을 그만둔 지 어느새 10년. 놀이품앗이로 시작해 2014년 1인기업으로 세상놀이연구소를 만든 게 8년 전이다. 최윤미가 남편과 함께 나선 건 2019년 말부터.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약속하고 남편이 사고를 친 '노리카'를 받아들인 게 계기였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한 놀이연구소는 더러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토요일 행사도 적잖고 먼거리에 가게되면 숙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직원도 힘든 일이고, 강동완도 초과근무수당을 주는 게 쉽지 않았다. 

강동완은 혼자서 버텨나갔다. 새 트럭을 장만했을 때 코로나가 같이 와 더더욱 힘들었지만 '노리카'가 생긴 데다가 놀잇감이 잘 구비되어 있으니 부르는 곳이 많아졌다. 강동완은 행사장에 가서 주변에 식당이 없으면 끼니를 건너 뛰었다. 지친 몸으로 먼 곳에서 돌아올라치면 졸음운전을 할 때도 있었다. 최윤미가 물리치료사나 보육교사로 받는 월급이 생활비의 중심이었으나 이때 최윤미는 결단했다. 

"같이 다니면서 내가 운전하고 남편 끼니만이라도 잘 챙겨 먹이자."

어차피 돈 버는 일에 마음을 접었으니, 어떻게든 수가 생기지 않겠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부부는 최윤미의 최. 강동완의 강을 따 세상놀이연구소의 '최강유랑단'을 만들었다. 세상 모든 놀이를 향한, 세상 모든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부의 길떠남이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2021년에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았다. 
  
최윤미, 강동완은 이런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놀이는 져도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습니다. 외려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법을 익히죠. 또 상대나 친구와 겨루더라도 쓰러뜨리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는 게 아닙니다. 손 잡고 즐기며 함께 커 나가지요. 문제를 풀거나 이겼을 때 큰 성취감을 갖고 인생 경험이 될 수도 있어요. 시간을 내고 마당이나 공터만 있으면 되는데 왜 머뭇거리나요?" 
 

최윤미, 강동완 부부의 가족 이들은 최강유랑단을 꾸려 예산의 답사기행을 했다. ⓒ 강동완제공

 
차 안에서 두런두런 10월 일정을 점검하고 옛 추억까지 들춰내니 벌써 신양IC다.  부부는 졸립지 않은지, 피곤하지 않은 지를 서로 물으며, 사무실이 있는 공주산업과학대학 창업보육센터를 향해 '노리카'의 속도를 높였다. 예산산악회에서 만나 9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부부의 사랑은 이제 놀잇길에서 동지애까지 품게 되었으니 이 부부가 사는 법 부럽지 아니한가.

<못다한 이야기>

① 스필 모빌이란 스필은 독일어로 '놀이'란 뜻이다. 즉 스필모빌은 '놀잇감을 실은 자동차'란 뜻을 담고 있다. 

② 부부가 최강유랑단을 만든 건 2013년이다. 최윤미의 최, 강동완의 강을 따 최강유랑단이 되어 자녀들과 예당호 저수지 둘레길을 돌고 예산 구석구석을 여행하면 '최강유랑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지금의 최강유랑단은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세상놀이연구소'의 유랑단으로 거듭난 셈이다. 

③ 강동완이 기업명을 '세상놀이연구소라고 지은 데는 사연이 있다. 예산군 다문화센터에서 이주 여성에게 전래놀이를 가르칠 때 묘하게도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는 그들에게도 익숙했다. 거의 한 목소리로 우리 고향에서도 이런 놀이해요, 라고 말했다. 

그때 강동완은 눈이 뜨였다. 우즈베키스탄의 메디나, 베트남의 뛴디아 등 이주 여성 여섯 명을 모아 '세상놀이 연구회'를 만들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캄보디아의 쁘라혹이나 중국의 마파두부를 만들어 먹으며 고향 골목길에서 배웠던 놀이를 서로 나눴다. 그네들이 친정에 다니러 갈 때 강동완은 없는 살림에 봉투를 준비해 "친정 부모에게 선물 해드리고 놀이책을 사오라"고 건넸다.

그렇게 모은 책이 20여 권. 그때 우리의 '고누놀이'가 베트남에선 '꺼잔저' 아프리카에선 '쓰리인어로우' 캄보디아에선 '라응탄 수라'로 불리며 방식도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강동완은 이주여성들과 만든 '세상놀이연구회'를 '협동조합'으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대신 1인 기업을 만들면서 회사명을 '세상놀이 연구소'로 한 것이다.   

④ 예비사회적 기업 '세상놀이연구소'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홈페이지 www.norilab.net와 유튜브 '세상놀이연구소'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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