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아궁이 불을 지펴 구들장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얇은 바람벽과 문틈 사이로 들어온 웃풍이 심해 방안 온도가 영상 6도로 떨어졌습니다.
송성영
그나마 큰 행자가 곁에 있어서 그 혹독한 겨울을 용케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날이 풀리면서 꽁꽁 얼어 있던 부실한 축대가 봄기운에 조금씩 무너져 내리듯 암세포와 함께 살아가는 부실한 내 몸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겨울에도 용케 버텨냈던 속 쓰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틀니 걸이로 겨우 버티고 있던 어금니마저 빠져나가 몸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뽑혀나간 자리에 다시 틀니를 끼워 교정해야 했는데 그 기간이 보름이나 걸렸습니다.
그 보름 동안 아무것도 씹을 수 없어 죽으로 연명했습니다. 하루 한두 끼 죽을 먹다가 속 쓰림이 시작되면 단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단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속을 비우는 것보다는 당장 영양 보충이 문제였습니다. 거기다 멀건 죽을 물 삼키듯이 먹다보니 음식을 씹어 삼킬 때 소화 기능을 돕는 프티알린, 침을 삼키지 못하니 소화가 제대로 될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소화시키지도 못하니 날아갈수록 체중이 빠지고 속 쓰림은 가중되고 기운은 축축 쳐졌습니다.
거기다가 미세먼지까지 가세했습니다. 먹는 것으로 기운 보충이 쉽지 않을 때는 명상이나 기혈운동으로 보충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데 그마저 미세먼지가 주저 앉혔습니다. 명상이나 기혈운동은 숨쉬기, 단전호흡을 기본으로 하는데 미세먼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지 못하게 했고 평범한 숨쉬기조차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일테면 자연요법의 세 가지 필수조건인 명상, 기혈운동, 식이요법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극심한 속 쓰림, 통증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체중도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62킬로그램 정도 나가던 체중이 불과 20여일 만에 54킬로그램까지 떨어졌습니다. 한창때 85킬로그램 전후를 유지 하던 체중이 54킬로그램이다 보니 몸은 거의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갈빗대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목욕탕에 갈 때마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큰 행자, 송인효에게 농담을 건넬 만큼 정신은 말짱했습니다.
"야 인효야! 아부지 갈빗대로 기타 쳐도 되겠다 잉? 이걸로 기타 치고 노래 한번 해볼래?"
"에이그 환장 혀."
"내 어렸을 때 별명이 갈비씨였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거 같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잖아."
"괜찮다. 내 위가 병들었지 정신은 병들지 않았다 자식아."
"기운이 뚝 떨어져서 문제지."
"기운은 다시 보충하면 되고... 암튼 그동안 필요이상으로 부풀렸던 살집을 다 내려놓고 싶었는디 잘 됐다."
먹지 못하면 단식을 하면 될 것이었고 체중이 빠지면 기운 돋는 뭔가를 섭취해 보충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달려드는 통증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전후로 종종 통증이 몰려오긴 했지만 이번이 가장 극심했습니다.
틀니 교정 때문에 씹지 못하고 넘긴 음식물은 그렇잖아도 암세포로 시원찮은 위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급기야 암세포로 헐어버린 위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에 시달려 온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혈변과 함께 십여 미터의 거리도 걷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아 아, 이제는 정말로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질 않았습니다. 이 위태로운 통증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옛 어른들의 '사람 목숨 참 질기다'라는 말이 그냥 함부로 내뱉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몸은 아무리 병든 몸이라 할지라도 그 뭔가의 질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풍전등화와 다름없는 암 환자인 나의 목숨줄은 얼마나 질긴지 그 극심한 통증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다음 기사에 자세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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