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북방산 개구리. 겨우내 죽은 듯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면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사지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그 간극 어디쯤에 생명의 환희심이 깃들어오지 않을까요? 통증의 극점에서 내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송성영
보름 가까이 온갖 통증을 지켜보면서 나름 통증에서 벗어나는 무지막지한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통증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 나는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증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통증은 좀 더 나를 옥죄어 옵니다. 하여 통증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습니다.
극단적인 통증이 시작되면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거의 기절할 만큼 통증의 극단 점까지 끊임없이 지켜보다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그 순간은 아무런 고통 없이 몸이 가장 편하다고 느낄 때와 견딜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통증이 몰려드는 그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통증을 있는 그대로 지켜볼 때 통증은 또 다른 내가 되고 결국은 나도 그 무엇도 아닌 그 무엇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무엇도 아닌 상태를 말로 표현하자면 몸과 마음이 명료하게 깨어 있는 지점, 그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그 어떤 편안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점은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그 모두를 껴안고 동시에 그 두 가지 상태마저 사라진 순간, 마치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의 경험이었지만 통증 없이 어찌 이 양극단을 만날 수 있겠는가 싶습니다. 어찌 부처님의 중도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가늠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고행 없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없듯이 통증은 나를 일깨워주는 더없이 좋은 스승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통증의 극점을 지켜보며 마치 죽음이라는 큰 스승 앞에서 온갖 시험을 통과한 행자처럼 비로소 진정한 도가 어떤 맛인지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다(夕死 可矣)'라는 말이 진정으로 뭔 의미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라 말하면 도가 아니듯, 통증의 극점에서 희열감을 맛볼 수 있기에 통증이 있는 것이고 통증이 있기에 희열감이 있는 것이겠죠. 하여 언제든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 둘 다 없는 상태, 통증도 희열감도 느낄 수 없는 그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수행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로서 앞으로 그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아부지 힘든디 원고는 나중에 쓰시지..."
"글 쓰는 게 내 업인디 어쩌겠냐."
"그래도 기운을 좀 더 챙기시고..."
"기운을 끌어올리려면 한도 끝도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뭔가 하다가 죽고 싶다."
"뭘 하고 싶으신데?"
"글쓰기 아니면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하다가 그도 아니면 밭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 맥없이 누워 있다가 세상 뜨고 싶지 않다. 이 세 가지가 내가 평생 지어온 업인 걸 어쩌겠냐. 내려놓을 수 없다면 그 업대로 살다가야지."
내가 살아온 길이 악습이든 선한 습이든 그 길대로 가는 것은 '살아있음'이었습니다. 살아있기에 살아온 길대로 가는 것입니다. 가부좌 틀고 명상하는 것은 마음을 위한 것이고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없이 청정한 밭일을 통해 나오는 건강한 먹을거리는 몸을 위한 것입니다.
하여 그 힘겨운 와중에도 모종 포트에 케일, 오이, 브로콜리, 오크라 등등의 온갖 씨앗을 넣고 씨감자를 심고 상추씨를 뿌려가며 틈틈이 텃밭을 가꿔 왔습니다. 맥없이 손 놓고 주저앉아 죽을 날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설령 가꿔 놓은 밭작물들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하여도 누군가는 저 싱싱한 먹을거리를 통해 건강을 챙겨 또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챙기게 될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내게 있어서 그 사랑으로 가는 길 중에 하나가 글쓰기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길은 바로 내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여 내 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앞두고 부질없어 보이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마치고 내일 또다시 속 쓰림으로 배를 움켜쥐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내일은 그냥 내일로 내버려 두기로 합니다. 바람 맑아 좋은날, 살아있기에 지금 이 순간 좋으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