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순이는 그나마 산과 바다를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살다갔습니다.
송성영
곰순이는 동물병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예방 주사나 약을 먹지 않았고 진드기를 잡는 약 처방이 전부였습니다. 긴 털 때문에 여름철이면 진드기로 고생했지만 잔병치레 없이 산과 바다를 누비며 살았습니다.
평생 사람에게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았던 순하고 순했던 순딩이 곰순이는 제가 인도로 떠나기 전, 이미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일기처럼 써 놓은 메모장이 곰순이와 함께 해변으로 나섰던 기억을 재생시켜주었습니다.
그날 곰순이는 더 이상 뛰지 않았습니다. 산과 바다로 나설 때마다 늘 팽팽한 심줄을 원했는데 훈련 받은 개처럼 얌전히 걸었습니다. 목줄에서 풀려나자마자 해변을 힘차게 내달렸던 예전의 기마병이 아니었습니다. 모래사장에 선명한 발자국도 없이 터벅터벅 걷거나 혓바닥도 내밀지 않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해변으로 굴러온 용암 덩어리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곰순이는 나비의 날개 짓으로 수평선 저만치로 가볍게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곰순이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랑하는 것들은 이별하기 전에 이미 이별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나또한 언젠가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훨훨 날아가겠죠. 곰순이처럼.
식이요법·명상·기혈행공 3개월 만에
곰순이가 세상을 떠나고 5개월 쯤 지나서 저 또한 다섯 봉지의 수혈을 해야 할 만큼의 위출혈과 함께 호흡곤란으로 쓰려져 병원에 입원,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 판정을 받기 이전에 인도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4개월여의 무대책 장거리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거의 매일 인도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 값싼 자오민(기름에 볶은 국수종류), 모모(만두) 등의 밀가루 음식과 함께 짜이를 하루 평균 두세 잔씩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밀가루 음식과 튀긴 음식, 삼겹살, 차가운 맥주를 거의 매일 같이 마셨던 것이 한창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위에 독이 되어 위출혈을 유발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암 발생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누군가의 자비로운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을 가장한 식탐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내가 원치 않는 음식을 극구 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했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내 속이 좋지 않아 육고기를 먹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들은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아 몸이 부실하다며 한 달에 두세 차례, 특히 기름투성이의 삼겹살을 권했습니다.
"먹고 싶은데, 요즘 소화가 잘 안돼서..."
"기운이 없어서 그려, 먹어 먹으면 괜찮아져."
그 성의를 무시 못해 고마운 마음으로 꾸역꾸역 먹다가 종종 인도에서처럼 속 쓰린 배를 움켜잡곤 했습니다. 2018년 11월, 위출혈로 쓰러지던 그 전날에도 그 분들이 고맙게 챙겨준 낙지를 대충 씹어 삼켰으니 위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먹는 육고기, 특히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뭔 식탐이냐 하겠지만 결과가 그랬듯이 부실한 위,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위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반복되는 위통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던 우유부단한 성격이 화를 불러들였습니다.
암 판정을 받고 나서 음식을 가려먹는 식이요법을 시작했음에도 그 분들의 성의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먹어도 괜찮다'며 온갖 첨가물, 화학조미료가 들어 있는 음식들을 권했습니다.
그들이 권하는 맛난 음식들은 먹을 때는 큰 무리가 없는데 먹고 나면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화학조미료나 화학소금 등의 탁한 첨가물들이 느껴져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입안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역겨워 물로 헹궈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식탐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정신을 챙겨 그 고마운 유혹들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암 판정 받고 수술을 거부하면서 채식위주의 식이요법, 명상과 기혈행공을 꾸준히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입맛이 변했습니다. 내 입이 잘못된 것인지 그동안 맛나게 먹었던 시중의 음식들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분석해 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 입맛이 변하고 탁한 음식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