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이의 방.

한 살 터울인 보현이와 오빠는 개와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했다. 초등학교 때엔 ‘오빠 좀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찌질이’라고 놀리는 오빠가 미워 공부를 할 정도였다. 장난은 여전했지만 둘 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름 서로를 챙겨주는 사이가 됐다. 보현이 장례를 치른 뒤, 오빠는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오빠가 정말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건 너한테 예쁘다고 많이 못 해준 거... 착한 내 동생… 못된 선장 말 너무 잘 들어서 배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겠지…”
애교가 정말 많은 아이였다. 보현이는 매일 엄마·아빠에게 사랑의 총알을 날렸다. 출근길엔 어김없이 뽀뽀를 해줬고, 등에 매달려 나무늘보 흉내를 내던 막내를 떠나보낸 아빠는 한동안 극심한 두통으로 입원까지 했다. 아침이면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한 뒤 빙그레 웃으며 사랑한다고, “엄마 딸인 게 너무 좋다”고 재잘대던 딸이 사라진 다음 엄마는 웃음을 잃었다. 모두 아파하고 또 아파만 하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보현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다. 붓과 물감으로 가구를 직접 리폼하기도 했고,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해 땅콩집과 거꾸로 된 집도 구경하러 다녔다. 언젠가는 건축가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먼 일산까지 찾아가 종일 건축박람회를 보고 왔다. 그 뒤 때가 되면 집에는 건축박람회 초청장이 날아온다. 하지만 받아볼 사람은 없다. 수신인은 보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