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방

엄마를 꼭 닮은 아이

딸 귀한 집에서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미지는 참 순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젖을 먹고 나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혼자 잘 놀았고, 낯도 안 가리며 잘 웃는 아이였다고 한다. 크는 내내 부모님 속 한번 썩여본 적이 없었다. 학교생활도 즐거워했고, 집에 와서도 항상 잘 웃곤 했다. 미지는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물려받은 것 같았다. 엄마의 끈기, 아빠의 외향성을 타고나 누구보다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다. 특히 주변 사람들 눈에 미지는 엄마를 꼭 닮은 것처럼 보였다. 생김새, 성격, 말투 제스처까지 신기하게 똑같았다고 한다. 미지와 엄마는 친한 친구 사이처럼 붙어 다녔다. 찜질방이든 마트든 어디 갈 때면 항상 같이 다녔고, 쉬지 않고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엄마에게 딸 미지는 의지가 되는 친구 같았고, 미지에게 엄마는 뭐든 말 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절친 여울

미지는 중학교 때 대안학교를 지원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절친 여울이를 만나게 된다. 여울은 미지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그리워 자기 2층 침대를 놔두고 항상 친구 1층 침대에서 같이 잤던 미지. 토라지고 화날만한 일이 생겨도 눈치 볼 친구를 배려해, “야! 미안하지.”라고 먼저 말 걸어주던 미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시험을 망치고 혼자 울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던 미지. 여울이의 기억 속에 미지는 “자기 것을 탁 내려놓을 줄 아는 아이, 다수가 섞여 있어도 소수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아이, 다들 이것만 바라보는데 저것을 볼 줄 아는 아이”였다고 한다. (416 단원고 약전 ‘구름은 왜 구름일까’中)

미지 여행

대안학교에 다녔던 미지는 외국으로 여행 갈 일이 많았다. 중국, 일본, 프랑스 파리도 학교 친구들과 다녀왔다. 그런 기억들이 꽤 좋았는지,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의 여행 계획을 쭉 세워놓기도 했다. 고2 여름방학 때는 필리핀으로 봉사활동 간다며 비행기 티켓팅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다. 미지는 그렇게 자신을 정성껏 지원했던 부모님께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미지 아빠는 생전에 딸이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농담처럼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빠, 이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 줄게.” 참사가 일어나고 딱 한 달 뒤 미지는 나왔고, 너무 늦게 나와서 헬리콥터를 타고 안산까지 올 수밖에 없던 아빠는 미지 관 옆에서 내내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 약속을 지키려고 비행기를 태워 주는구나…’ (‘금요일엔 돌아오렴’ 中)

반장의 수첩

말도 잘하고 봉사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던 미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심한 리더십을 가진 아이였다. 상대방의 장점을 사소한 것까지 찾아서 표현해주던 친구였고, 외로워 보이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곤 했다. 미지는 기꺼이 친구들 사이에 다리를 놔주는 역할을 했고, 다른 친구 무리도 함께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진 아이였다. 워낙 발표를 잘했던 미지는 단원고 2학년 때도 반장이 됐고, 참사가 터졌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리더의 역할을 감당해냈다. 나중에 생존 학생들의 눈물 어린 증언을 통해 미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반장은 선장이 도망간 배 안에서 선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반장이 ‘지금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나가자. 지금 문을 못 여니까 물이 좀 찬 다음에 나가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가자.’ 이랬대요. 미지는 아마 위에 있다가 다시 배 밑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밑에서 한 사람씩 올리고.” (‘금요일에 돌아오렴’ 中) 그날 미지는 반 친구들 두 명을 구해내고, 무서워하고 있던 또 다른 반 친구들을 격려해서 탈출시켰다고 한다.

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

미지의 생일은 3월 16일. 미지는 수학여행 가기 전까지 꼬박 한 달 동안 생일 선물을 가득 안고 들어와서 가족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선물을 쫙 깔아놓고 인증샷 찍으며 행복해하던 미지 모습을 엄마는 기억에 꼭 담아두려고 한다.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하던 미지의 마음이 고마워 1학년 때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미지 생일은 꼭 기억해두고 챙겨주었나 보다. 함께 자원봉사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언니도 미지 생일을 맞아 전지 편지를 직접 만들어줬다. 글 속에서 동아리 선배들이 얼마나 미지를 든든하고 기특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항상 힘든 티도 내지 않고 열심히 웃으며 활동했던 미지를 아끼는 마음이 글자 곳곳에서 엿보인다. TOP라는 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미지는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친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지 장례식장에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봉사로 만났던 다양한 나이대 분들이 찾아와 슬픔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