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의 방.

결혼 10년 만에 본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파주에서 사업하는 부모님은 주말에 한 번씩 안산으로 왔다. 엄마는 그렇게 잠깐이라도 지우를 보는 일이 낙이었다. 어릴 때는 일주일 만에 만난 딸이 너무 예뻐서 마냥 물고 빨았다. 지우도 엄마를 굉장히 챙겼다. 잔소리할 때도 있었지만, 엄마가 깜빡한 일은 뒤처리를 도맡아 했고 사은품으로 받은 화장품이 있으면 꼭 나눠 쓰는 착한 딸이었다.
지우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돈 몇천 원을 아끼고, 수돗물 잠근 것도 꼭꼭 확인하는 알뜰한 성격이었지만 ‘불’은 절대 포기 못한 이유였다. 지우는 항상 방에 불을 켜놓고 잤다. 그토록 밤을 무서워하던 손녀딸이 걱정돼 할아버지는 곧잘 마중을 나갔다. 지우가 떠난 뒤에도 할아버지는 아이가 돌아오던 밤 10시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혹시라도 지우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서울까봐.
지우는 죽음도 두려워했다. 가끔 엄마에게 손금을 보여주며 "나 얼마나 살아? 오래 살지?"라고 물어보곤 했다. 참사 이틀 만에 돌아온 지우 손은 까맣게 변해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열 손가락만.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장례를 마친 뒤 엄마는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3개월 동안 산소호흡기를 낀 채 살았다. 겨우 나아지긴 했지만 몸의 고통도, 마음의 고통도 여전하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노란색을 보면 엄마는 이제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