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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현장:홍성식 김지은 권박효원 정민규(부산) 김나영 기자
- 사진:남소연 기자
- 편집:김시연 기자
- 총괄:정운현 김병기 기자


경찰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으로! / 곽기환 PD

광화문을 환하게 밝히다/ 곽기환 PD

▲ 7일 저녁 광화문 세종로 일대는 촛불시위에 참석한 5만여 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글을 닫으며] 민족사와 같이 호흡해온 광화문 네거리

밤 11시. 광화문 네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불과 한 시간반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5만여 인파가 차도를 막고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채 '촛불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를 막던 경찰은 어느새 시위대와 뒤섞여 '하나'가 돼 있었다.

1919년 3월 고종의 인산일을 기해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광화문 일대도 백의(白衣)의 인파로 넘쳐 났었다. 다시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의해 궐기한 청년학도들이 다시 이 거리를 메웠으며, 87년 독재의 끝자락에서 최루탄과 함께 '6월항쟁'이 바로 여기서 피어올랐었다.

그러나 광화문 네거리가 절규와 분노로만 가득찼던 것은 아니다. 불과 5개월전 '월드컵' 열기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던 때 수 십만 '붉은 악마'들이 다시 이 거리를 열광으로 가득 메웠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들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켜고 이 땅에 모인 것이다. 우리 두 딸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 비통해 하면서.

우리 민족이 절규할 때, 또 열광할 때 광화문 네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했다. 그 마당에서 우리는 신명나게 춤추고 웃기도 하도 또 때론 목놓아 울기도 했다. 이제 광화문은 이 시대의 민중과 호흡하는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것이다. 이 시각 광화문 네거리는 다시 평온 속에 내일의 밝은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메운 촛불시위대. 일민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제8신: 7일 저녁 9시30분>
시위대, 9시 30분경 자진해산...삼삼오오 '뒷마무리'
'서울판 아크로폴리스 광장'으로 변한 광화문


광화문 촛불시위 인파는 모두 몇 명?
SBS "수천명", <오마이뉴스> "5만명"

12월7일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인 인원은 대체 몇 명일까?

광화문 4거리에서 미대사관 앞까지 차도를 꽉 채우며 늘어선 인파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센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촛불시위 참가인원은 대략적인 눈짐작과 유사한 시위현장을 자주 경험한 취재·사진기자의 느낌으로 파악된다.

그 때문일까? 각 언론사가 보도한 시위 참가자의 숫자는 천차만별이다. YTN은 '1만명에서 최대 3만명'으로, MBC와 연합뉴스는 '1만여명'으로 시위 참가자를 파악해 보도했다. KBS와 SBS의 경우는 각각 '1만명'과 '수천명'으로 보도했다고 한 네티즌은 전한다.

<오마이뉴스>의 경우에는 현장에 나간 취재기자들이 추산한 결과, "5만명"이라고 보도해 SBS와 대조를 보였다. 시위현장을 자주 취재한 한 사진기자는 '어림잡아 보기에 2만명은 넘어보였다'는 의견을 전했고, 경찰관계자는 "1만7천명 정도가 모였다"고 말했다. 경찰의 추산이 각 방송사와 연합뉴스의 보도보다 더 많은 것이다.

한편, 이날 광화문에 배치된 경찰은 80개중대 9천여명이었다. / 홍성식 기자
세종로 미 대사관 앞에서 1시간반 가량 집회를 가진 촛불시위대는 9시 30분경 자진해산했다. 현재 시위대들은 삼삼오오로 모여 집회 얘기를 나누며 뒷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날 미대사관 앞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그 자리에서 집회를 가졌다. 57년만에 미 대사관 앞길을 되찾은 기쁨에 집회는 '집회'라기보다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도로에는 '아리랑'과 '아침이슬' '광야에서'가 이어졌다.

함께 온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 아이를 어깨에 태운 젊은 부부, 두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은 모두 이 날의 '승리'를 기뻐했다. 6개월 전 월드컵전에서 승리했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뒤늦게 대열을 따라온 무대차량이 시위대 중간에 자리잡고 마무리 집회를 시작했다.

무대에 오른 최근식 사이버범대위 대표는 "우리는 이겼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최 대표는 "여러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이 열기를 끝까지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사람은 이 집회를 처음 제안한 '앙마'는 "나는 촛불시위하자는 글을 딱 세 군데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며 "나머지는 다 누가 올리셨나요?"라고 질문했고 시위대는 "우리요"라고 답했다.

'앙마'는 "처음부터 사건을 덮은 언론은 사과보도문을 내야 한다" "'세계 시민'인 우리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이라크에서 효순이, 미선이같은 아이들이 100만명 죽어가는 것을 슬퍼해야 한다"고 야무지게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앙마'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시위대는 "울지 말아요"라며 격려를 보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시민 자유발언대'가 뒤를 이었다. 교사를 대표해서 무대에 나선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은 "우리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부끄러운 선생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런데도 우리들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오신 제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한 대학생은 "시민들이 없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라며 "저희 학생들은 늘 함께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연대를 호소했다.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구호가 뒤를 이었다.

여중생 2명도 당차게 무대에 올랐다. "효순이, 미선이는 남이 아닙니다"라고 말문을 연 학생들은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지만 곧 다시 힘찬 목소리로 "미군을 무찌르자"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구호를 외쳐 시위대로부터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 '이문동에서 온 대한민국 아줌마'는 "이 근처 회사를 다니는데 인도로 가는 시위대를 경찰이 막더라"면서 "인도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곳인데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왜 막냐"고 발언했다. '아줌마'가 "나중에 경찰들도 아들낳고 딸낳아 살텐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냐. 그냥 눈치껏 물러나주면 안 되냐"고 하자 시위대는 '아줌마 짱! 아줌마 짱!'을 연호했다.

시위대는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모든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한 뒤 "14일 시청에서 봅시다"라는 약속을 뒤로 하고 오후 9시 40분경 자진 해산했다.

차량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재빨리 근처 인도로 옮긴 시위대는 대부분 삼삼오오 집으로 흩어졌고 이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 일부 참가자들은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둥글게 모여 '쨍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감격스럽다" "SOFA 개정 확실히 될 것"
다시 한번 광화문 신화 창조한 서울 시민들


지난 6월 월드컵의 응원신화로 세계를 놀라게 한 서울 시민들은 다시 한번 신화를 만들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광화문에 다시 모인 시민들의 돌아가는 길은 감격에 차 있었다.

386세대로서 지금은 30대 초반의 직장인이 된 91학번들은 남다른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91학번은 89년 전교조 해직 사태에 이어 91년 분신정국을 겪은 '운명의 세대'. 자신을 "91학번"이라고 소개한 정영립(32)씨는 "사회생활하면서 내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져 속상했는데 이 일이 제대로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주중에도 시간이 되는대로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인 정도일(29)씨는 "집회에 나오면서 헌법까지 찾아봤다"며 "도대체 우리나라가 주권이 있는 나라인지 모르겠다"고 분개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뭐라 더 이상 말 할 수가 없다"며 "그렇지만 한 가지 부탁하건데 좋은 얘기 듣고 좋은 기사 써서 다시는 이런 일없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내내 붉은 눈시울로 '솔아 푸르른 솔아' '아리랑' 등을 불렀다.

한 곳에 모여 한 곳을 바라보며 한 소리를 낸 그들은 서로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길엔 서로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또 봅시다"라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지난 월드컵 때도 광화문에 나와 응원을 했었다"는 주현정(25·서울 상계동)씨는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다"며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주씨는 "만약 내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해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시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있다는 것에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전국 청년학생총력투쟁대회에서 삭발한 머리 위에 털모자를 눌러쓴 김혜진(덕성여대 3년)씨는 "너무 좋다. 그동안 수없이 시도했지만 올 수 없었던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목욕탕에 가면 남탕 표를 준다. 여탕에 들어갔더니 아줌마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더라"고 귀띔했다. 그래도 "이쁘다. 끝까지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학생들이 있어 이 나라가 사는 것 아니냐"며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많아 김씨는 자신의 삭발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허종민(연세대 3년, 25세)씨는 "처음 나올 때는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이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미 대사관 앞 도로에 선 지금은 참여한 게 너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허씨는 "당당하게 미국에게 우리 주장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기분좋다"며 "더이상 식민지 같지 않다. 자주국가 같다"고 덧붙였다.

아내, 형수와 함께 참여한 시민 정상훈씨(46세)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기 위해" 양수리에서부터 달려왔다. 흥분한 표정의 정씨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 미 대사관 안으로 쳐들어가고 싶다"며 "SOFA 개정 얘기를 하는데 사실 근본적으로는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선 미선·효순같은 아이들 100만명 죽었다"
"경찰도 나중에 아기 낳고 살텐데 부끄럽지 않나"
광화문 '아크로폴리스'에 울려퍼진 시민들의 즉석 '명연설'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촛불시위의 연단이 된 대형 무대차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자유발언을 했다. 시위 인파가 미 대사관 앞으로 옮겨진 오후 8시 20분부터는 시민들의 참여로 시위가 진행됐다. 말하자면 '광화문 아크로폴리스'가 된 셈이다.

이날 '아크로폴리스'에는 촛불시위의 최초 제안자인 김기보(아이디 '앙마', 30·학원강사)씨도 참석했다. 김씨는 그간 실명 밝히기를 꺼려하고 아이디인 '앙마'로 자신을 소개했었으나 이날은 최초로 실명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연단에 올라 "저번 주에는 많이 울어 얘기를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MBC <피디수첩>을 보고 울다가 새벽 6시까지 잠을 못 자고 글을 하나 썼다. 딱 3개 썼다. 나머지는 모두 여러분이 했다"며 공을 시민 및 네티즌에게 돌렸다.

이어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바로 효순이·미선이의 영혼이다"라고 말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그는 "우리는 대한민국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며 "이라크에선 미선·효순 같은 아이들 백 만명이 죽었다. 이젠 그들에게도 관심을 갖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김기보씨의 얼굴을 처음 본 시민들은 "얼굴을 보여달라" "안 보인다"고 외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시위 참여의 주류로서 한 몫을 단단히 한 청소년 대표도 연단에 올랐다. 여중생 사건 청소년 대책위 소속 강한 학생은 "지금까지 역사를 바꾼 세력도 민중이었고 청소년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서 있었다"며 '청소년의 기'를 살려 박수를 받았다. 이어 그는 "민중의 힘으로 꼭 SOFA를 개정하고 미국의 사과를 받자"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연설은 '대한민국 아줌마'가 장식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연단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인물은 이예진(34·서울 이문동)씨. 이씨의 우렁찬 목소리와 입바른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멋있다" "대한민국 아줌마 만세" "언니"를 외쳤다.

이씨의 매서운 지적의 첫 번째 타깃은 경찰. 그는 연단에 올라 "맞으면서 피터지면서 미군기지 앞에서 싸울 때 경찰은 한 사람씩 끌고가 때리더라. 이게 경찰인가"라며 "경찰도 나중에 아기 낳고 살텐데 부끄럽지 않나"고 호통을 쳤다. 이어 "진압 잘못했다고 위에서 때리면 맞고 좀 구르면 되지 않나. 우리 효순이·미선이는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며 "좀 맞아주고 시민들이 집회하면 좀 눈치껏 물러서면 안되나"라고 말해 최근 경찰들의 행태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그는 "언론은 일시적으로만 보도하지 말고 끝까지 제대로 다 보도하라"고 말해 또 한번 시민들의 환호세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힘으로 소파를 개정하고 이 나라를 바꿔 아이들에게 희망의 나라를 물려주자"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는 '명연설'로 시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이예진씨와 잠시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을 "생각많은 한 아줌마"라고 소개했다. 직장인이기도 한 이씨는 "원래 떨려서 말을 잘 못하는데 오늘은 정말 힘이 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왜 시민들의 많은 환호를 받은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 똑같은 심정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남편과 일곱 살, 아홉 살 바기 두 아들과 함께 왔다"는 그는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에게 '옳게 살아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 김지은 기자


내가 광화문에서 목격한 풍경들
[독립기자 정지환의 촛불시위 참가기]

ⓒ오마이뉴스 남소연
광화문 네거리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사통팔달의 네거리에는 쌀쌀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로수를 뒤에 거느린 이순신 장군 동상도 오늘 따라 쓸쓸하게 보였고,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의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도 오늘 따라 더욱 구슬프게 들렸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면서 추위는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두터운 방한복으로 완전 무장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젊은 부부,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있는 청소년들…. 그들의 손에는 촛불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인파는 어느새 인도를 넘쳐 차도까지 점령했다.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의 숲은 서로의 방풍림이 되어 칼바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광화문 네거리는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교보빌딩 전면에 내 걸린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 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다운가."

8시 20분.

'적막한 바람을 이겨낸 아름다운 사람들'은 마침내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경찰의 방어벽을 뚫고, 미대사관 앞으로 노도와 같이 밀려갔다. 이 촛불시위를 가장 먼저 제안했던 네티즌 '앙마'의 연설처럼, 시청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지도부의 일원으로 '광화문 패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어떤 구원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대한민국 땅이지만,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었던 성역이자 금단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온갖 구호를 외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나를 감동시킨 구호는 이것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누구는 그것을 국수주의적 몸부림이라고 과소평가하겠지만, 그리고 어느 신문사의 주필은 그것을 '식민지 콤플렉스'라고 해석한 모양이지만, 나는 그 '원초적 구호'야말로 가장 극명하게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 그 신문사 주필께서도 미대사관 앞의 차가운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서울 하늘을 쳐다봤다면,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보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내지른 구호가 미대사관 건물을 뒤흔드는 동안 불켜진 창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전에 철저하게 교육했던 결과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들의 문화가 그런 것일까. 한 사람이라도 고개를 내밀어 볼만도 하건만, 그들은 철저한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거기서 '오만한 미국'을 다시 한번 보았다.

'외면하는 침묵자'는 또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조망권을 완전히 장악한 두 신문사의 대형 전광판이 바로 '그들'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그 신문사는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21세기판 만세시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운 채 무심하게 상업광고를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 촛불시위에서 명연설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던 네티즌 '앙마'는 연설 도중 두 번이나 언론의 책임을 물으면서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론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함을 증언했다. 한 방송사가 방영한 프로그램을 보고 새벽 6시까지 잠을 못 이룬 끝에 촛불시위를 제안했다고 한 것이다.

군중은 언론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열띤 호응을 보였다. 옆에 있던 한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죠?"


▲ 세종로 미 대사관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시위대. 시위대 뒤로 보이는 건물이 미 대사관이다. 경찰은 이날 전경버스로 대사관을 철통경비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제7신 대체: 7일 저녁 8시30분>

분노한 시위대, 미 대사관 앞에서 '아리랑' 합창
세종로 일대 3만여 명 '추모인파' 물결


<오마이뉴스> 사무실까지 울려퍼진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미 대사관 앞 촛불시위대의 함성과 노래소리는 세종문화회관 뒷편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도 또렷하게 들리고 있다. 흡사 광화문 거리 한복판 시위대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한 집회 참가자가 마이크를 잡고 울먹이며 말하는 목소리, 또다른 여자 참가자의 절규소리, 그리고 함성소리…. 눈물과 분노의 외침이 뒤범벅돼 미대사관을 뒤흔드는 '오 필승 코리아'.

<오마이뉴스> 편집국, 열어놓은 창틈으로 들려오는 촛불 시위대의 외침은 마치 지난 6월 월드컵 때 울려퍼진 응원가 '오! 필승코리아~' 합창소리를 다시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분노한 시위대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미 대사관 앞으로 전진했다. 이들은 미 대사관 앞에 주저앉아 '아리랑'을 목청껏 불러제꼈다. 이처럼 대규모 시위대가 미 대사관 앞에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위대 역시 미 대사관까지 행진한 것이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시위대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대학 4년 내내 데모만 했지만 여기 와본 것은 처음이야" "여기가 뚫릴 수도 있구나"라면서 '해방'의 기쁨을 나눴다.

광화문에 촛불시위에 참석한 5만여 명의 인파는 오후 8시 5분 광화문 네거리에 겹겹이 쌓여있던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 앞을 포위했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미군없이 더 잘 산다" 등의 구호가 대사관까지 울려퍼졌다.

일부 시위대는 미 대사관을 향해 여중생 범대위가 나눠준 계란을 힘껏 던졌지만 미 대사관까지 날아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대부분의 계란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차에 맞았다.

이날 전경의 저지선은 맥없이 허물어졌다. 처음 행진을 시작했던 오후 7시 45분경에는 전경과 시위대의 몸싸움이 길게 이어졌다. 오후 8시 20분경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앞 저지선이 뚫리자 시위대는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 대사관 앞은 뚫릴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전경이 새로운 저지선을 만들 겨를도 없이 미대사관을 향해 뛰었다. 순간 도로에는 전경과 시민들이 뒤섞였다. 전경들은 '막아, 막아. 저쪽으로 가'라고 지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전경은 'XX, 이런 데서 어쩌라구'라면서 푸념을 했다.

이날 미대사관과 시위대를 막은 것은 20cm 간격을 띄고 줄지어 길가에 주차한 전경의 '닭장차' 뿐이었다. 경찰은 세종로 미 대사관 건물 주위를 전경들로 에워싸 '인의 장벽'을 치는 동시에 수십여대의 경찰기동대 차량으로 아예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시위대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시위대는 누구라도 할 것없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세종로는 '아리랑' 노래로 넘실댔다. 시위대의 주위를 지나던 차량들은 구호에 맞춰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를 격려하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승객들도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박수를 쳤다.

현재 세종로 도로 양쪽은 전경 차량으로 철벽방호가 돼 있는 상태다. 시위대들은 양쪽 도로 점거한 채 미 대사관 앞에서 '아리랑' '광야에서'를 합창한 후 집회를 갖고 있다.

미 대사관 건물에는 15개 정도 방에 불이 켜져있다. 그 앞에선 할아버지, 할머니, 5살 꼬마 등 남녀노소 할 것 없는 시민들이 초를 들고 두 여중생 추모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집회.시위 주최측이 평화적 시위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만, 일부 시위대의 돌출행동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며 "외국공관 보호를 위해 철저히 경비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시민들의 반미(反美)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고, 매일 저녁 6시 광화문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미 대사관과 덕수궁 인근 미 대사관저 등 미국 관련시설에 대한 철통 경비체제를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 광화문 세종로 일대 촛불시위 행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제6신 대체:7일 저녁 7시 10분>
"어느날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딸의 주검…"
권영길 후보, 촛불시위 동참


"SOFA가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렇게 다 모여주시니 감사합니다."(심미선 아버지 심수보씨)

"많은 분들이 우리 딸을 위해 이렇게 나서주셨습니다. 이제 미군들은 다시 재판해야 합니다. SOFA는 개선이 아닌 개정을 해야 합니다. 잘못된 법은 고쳐야 합니다. 이번만은 물러서면 안 됩니다."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

"미선이 엄마입니다. (울먹이면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로서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우리 미선이는 너무 착한 애였습니다. 어느날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딸의 주검을 보고 그때 심정을 뭐라 표현하겠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심미선양 어머니)

"온 국민이 나서서 이렇게 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신효순양 어머니)


오후 6시 50분경. 광화문 교보문고 근방에 설치된 대형 무대차에 올라선 고 심미선·신효순 양 모친은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어머니 힘내세요. 우리는 이깁니다"라고 합창하면서 힘을 북돋아 줬다. 두 어머니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시위 참가자들은 손을 힘껏 붙잡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 심수보(심미선 양 아버지)씨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석한 권영길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황방열
고 심미선양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마침 종각 쪽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선거차량이 지나갔다. 어머니의 발언은 잠시 멈췄다. 집회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이회창 물러가라" "한나라당 물러가라"를 외쳤기 때문이다.

현재 광화문 한국통신 건물 앞쪽부터 동아일보 앞까지 시위대로 꽉 차 있고, 종로 쪽 도로에 있는 국세청 앞 도로까지 추모 집회 참가자들이 점거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계속 불어났다. 교보 빌딩 앞쪽에서 광화문 사거리로 시위대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있던 경찰들의 저지선도 집회 도중 뚫렸다.

한편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6시 40분경 광화문 촛불시위대에 합류했다. 점퍼에 여중생범대위의 추모버튼을 단 권 후보는 무대 바로 앞에 서서 촛불을 들고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쳤다.

"개선도 못하겠다? 양키는 가라"
"압박 끝나고 해방이 왔습니다"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6일째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가 "국민 여러분, 지금까지 압박과 설움이 많았습니다만 이제 해방이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시위대는 '와' 하는 함성으로 답했다. 문 신부가 '민족자주만세' '민족해방 만세' '자주통일만세'를 외치자 시위대는 함께 '만세'를 선창했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지난 1차 촛불시위에서처럼 즉석 시민자유발언대가 꾸려졌다. 여기저기서 발언자가 나섰다.

'산양초등학교 운영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정부가 개정이 아닌 개선을 하자고 하는데 미국은 그것도 힘들다고 한다. 복잡하게 얘기하는데 진리는 간단하다"며 "양키 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수능을 마친 고3학생 공형진군는 "입시 때문에 이런 사건도 전혀 몰랐다"며 "교육과정에 근대사가 전혀 없다. 근대사를 공부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학생다운 제안을 했다. 고2인 이병우군은 "미국 대사관으로 갑시다. 우리나라 땅인데 왜 못 갑니까. 갑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청자들이 밀리자 진행자들은 "몇 사람 발언을 더 듣겠다"라고 말했지만 시민들이 "가자. 가자"를 연호했다. 진행자들은 "이 자리는 여러분의 자리다. 여러분이 가자고 하니까 이제 미 대사관으로 가자"며 오후 7시 40분경 집회를 마쳤다.

진행자들은 "천천히 행진합시다. 급하게 가면 위험합니다"라고 방송했고 시위대는 "한미소파 개정하라"는 구호와 함께 "비폭력"을 외치며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시작했다.

주말 전국 곳곳서 여중생 추모행사 잇따라
- 부산.경남, 광주.전남 지역 등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들을 추모하고 부시 미대통령 직접사과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7일 경남도내 6개 지역에서 잇따라 열렸다.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경남통일연대 등 도내 3개 연대조직은 7일 오후 3시부터 마산시 창동 거리 일대에서 '부시직접사과, SOFA전면개정, 살인미군한국법정심판을 위한 경남도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여중생살인만행 규탄 100인 기자회견과 본대회를 가진뒤 창동 사거리~3.15의거탑까지 2㎞ 가량을 행진하며 촛불시위와 자주선언문을 낭독했다.

또 이날 오후 거창민중연대와 서부경남연합, 합안군 민중연대, 사천민주단체협의회 등도 지역별로 살인미군처벌 결의대회와 촛불 가두행진을 갖고 SOFA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과 사진전시회 등을 가졌다.

이에 앞서 부산에서는 오후 4시부터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000여명이 태화백화점 앞에서 추모집회를 가진 후 서면로터리-밀리오레백화점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후 다시 태화백화점 앞에 모여 촛불시위를 벌였다.

광주.전남지역 여중생 사망 규탄대회 잇따라

광주. 전남지역에서도 여중생 사망 항의집회와 추모식이 잇따라 열렸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중생 사망 광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시민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 동구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여중생 살인 만행 규탄 선전전'을 가졌다.

이들은 이에 앞서 오후 3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조선대 노천광장에서도 같은 시각 학생과 시민 등 100여명이 규탄대회를 가진 뒤 걸어서 광주우체국 앞 행사에 동참했다.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 군사재판의 무효와 살인미군 한국법정에 세우기, 부시 대통령의 공개 사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면 개정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광주우체국 앞에서 충장로 1가와 전남도의회를 거쳐 전남도청에 세워진 5.18기념탑까지 왕복하는 1.5㎞ 구간에서 '촛불시위'를 벌여 비명에 간 여중생들을 추모하고 미국에 항의의 뜻을 표했다.

또 전남 목포와 여수통일연대, 해남.화순.영광군 농민회 등도 비슷한 시각 지역별로 100-300명이 참석한 '여중생 살인 규탄대회'를 갖고 촛불시위를 벌이며 부시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SOFA 즉각 개정 등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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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신 대체:7일 오후 6시>

교보 빌딩 앞을 가득 메운 '촛불시위대' 1만여명


광화문이 두 여중생 추모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광화문에는 '촛불시위대'가 손을 치켜들고 부르는 애국가와 아리랑이 울려퍼지고 있다.

김근태·심재권 의원 촛불시위 참여
- "정치인으로서 부끄럽다"

▲ 촛불시위에 참여한 심재권(좌), 김근태 의원
ⓒ홍성식

12월7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 촛불시위에는 민주당 김근태 의원과 심재권 의원이 참여했다.

교보문고 입구에서 만난 김근태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아픈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말했고, 심재권 의원은 "국회에서 소파개정 건의안을 발의했고, 대선이 끝나는 대로 (소파개정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촛불시위는 몇몇 운동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네티즌의 순수한 마음에서 제의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한 것이라 더 의미가 크다"며 "나 역시도 참담하고 아픈 마음을 가진 한 시민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다"고 거듭 말했다. / 홍성식 기자
서울 시내 곳곳에서 초를 들고 온 시민들이 '촛불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집결하고 있다. 현재까지 광화문에 모인 집회자는 1만여명. 이들은 교보건물 앞에서 불을 켠 초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다.

이들은 오후 6시가 되기 전부터 촛불을 들고 애국가를 불렀다. 이들은 또 '아리랑'을 부르며 '형사재판권 이양' '소파 전면 개정'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재 추모집회 참가자들 주변에는 전경버스 15대 정도가 둘러싸고 있으며, 경찰 기동대원들에 의해 포위돼 있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계속 영역을 넓히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은 촛불을 위로 치켜들면서 평화시위 보장을 외치고 있다.

민노당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소파개정' '살인미군 처벌'이라고 씌여져 있는 40센티미터 길이의 주황색 리본을 나눠주고 있고, 시민들은 이를 초에 묶고 있다.

현재까지도 지하철 5호선 입구를 통해 속속 시위에 합류하는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편 오후 4시부터 종묘공원에서 '촛불인간띠잇기'를 진행한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2000여명은 행사를 마치고 도로 2차선을 점거한 채 광화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 등 사회단체 인사들이 이 행렬의 맨 앞에서 앞장서고 있고, 그 뒤를 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따라가고 있다. 이들은 깃발과 촛불, 피켓 등을 든 채 "가자 광화문으로" "살인미군 처벌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80m 가량 이어진 이 행렬은 행진 내내 주변 시민들에게 촛불시위 참여를 호소했다. 길가던 시민들은 차도쪽으로 몰려 행렬을 지켜봤으며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행렬은 서울 YMCA 앞에서 전경 200여명이 막아서는 바람에 인도로 잠시 자리를 옮겼으나 곧 다시 차도로 뛰쳐나갔다. 전경은 중앙선을 따라 대열 옆만을 지킬 뿐 다시 시위대를 막아서지는 않았다. 경찰들이 지나가는 차량행렬이 혼잡하지 않도록 교통정리에 나섰다.

두 여중생 억울한 넋 천도하는 퍼포먼스 열려
- 퍼포머 한영애씨 "어린 넋 예쁘게 보내주고 싶었다"

▲ 한영애씨가 두 여중생을 위한 추모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홍성식
미선이와 효순이의 가여운 넋을 하늘로 보내는 여배우의 퍼포먼스는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광화문 촛불시위가 열리기 1시간 전인 7일 오후5시 광화문 교보문고 후문 앞에서는 <미선이 효순이를 위한 추모 퍼포먼스>가 열렸다.

춤꾼 이삼헌씨와 연극배우이자 퍼포머인 한영애씨가 준비한 무대는 억울한 영혼을 달래는 씻김굿과 진혼 퍼포먼스로 연이어 진행됐다. 교보문고 후문 앞 광장에는 향불을 피운 화로가 마련됐고, 이삼헌씨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담아낸 춤사위를 운집한 500여명의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이삼헌씨의 씻김굿이 끝나갈 무렵 움직이지 않는 마네킹처럼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던 한영애씨가 몸을 일으켜 붉은 꽃잎이 소복하게 얹혀있는 하얀 베를 온몸으로 가르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베 가르기' 역시 억울함과 원통함으로 인해 구천을 떠도는 넋을 온전하게 하늘나라로 보내주는 의식의 하나.

싸늘한 12월 바람에 팔과 다리를 하얗게 드러낸 한영애씨는 추위에도 불구, 열정적이고도 안타까운 몸짓과 표정으로 미선이와 효순이의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었다. 꿈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았을 두 어린 여학생의 억울함을 매만지는 한영애씨의 춤은 슬픔과 아름다움이란 극단의 감정을 모여든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번 퍼포먼스를 기획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영애씨는 "오는 17일 홍대 앞 '씨어터 제로'에서 추모 퍼포먼스가 열린다. 그에 앞서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두 여중생의 억울함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답하며, 퍼포먼스에는 "억울한 두 여중생의 영혼을 예쁘게 보내주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영애씨는 "미군과 정부당국은 우리들의 조그만 몸짓과 작은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15분여의 공연이 끝난 교보문고 후문.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붉은 꽃잎들이 짓밟힌 채 뒹굴었다. 그 꽃잎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인 미선이와 효순이를 닮아있었다. /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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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 7일 오후 4시>
노인들도 "미국 잘못했다" 한 목소리


2차 촛불시위가 있는 7일 서울의 반미집회는 탑골공원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오후 1시 30분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국민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주한미군 규탄집회'를 열렸다.

▲ 반미집회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탑골공원의 노인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이 집회는 시간이 이른 탓인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변에 있던 노인들이 삼삼오오 집회를 지켜봐 최근 반미 집회 중 가장 평균연령이 높은 집회로 진행됐다.

노인들은 집회 발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집회장 양옆으로 놓여진 주한미군 관련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최근 반미열기는 젊은 세대의 운동'이라는 인식과 달리 이들은 대부분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예전부터 미국이 싫었다" "이번 일은 미국이 정말 잘못했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조병항 할아버지(84)는 "미국이 잘못했지. 지휘관이 잘못했어. 미국 대통령이 제대로 사과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조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놈들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고생시켰는데... 미국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거야"라고 답했다.

한경남 할아버지(84) 역시 "우리는 36년간 일제에 압박을 받은 게 원이 됐는데 미국이 일본에 협조했다는 게 분통 터진다"며 '반미' 의사를 밝혔다. 한 할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면 죄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집회를 보니) 감동이 된다"고 말했다.

▲ 탑골공원에 모인 노인들이 공원정문 앞에 설치된 주한미군 범죄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이날 집회에서 민가협 회원 임기란씨는 "우리 식수에 독약을 풀어넣고 여성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미군은 이 땅에 있을 이유가 없다. 정 있어야 한다면 평등한 소파 아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열린 '삼일문 현판철거 1주년 기념식'에서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일제가 한반도 통치를 미군에게 물려줬고 그 결과 이 땅에는 아직도 일제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친일파 박정희가 쓴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을 작년까지 철거하지 못한 일이나 미군 장갑차에 딸들이 죽었어도 미군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제3신: 7일 오후1시 30분>
전국 35개 지역에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와 규탄대회


▲ 지난 30일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사고를 낸 미군에 대한 무죄평결에 항의하는 시위와 규탄대회가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12월7일 오후에는 전국 35개 지역에서 촛불시위와 규탄대회, 추모제 등이 열린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추모집회를 마치고 지역의 미군부대 앞에서 규탄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에서는 오후3시부터 종묘와 광화문 등지에서 인간띠 잇기 대회와 촛불시위가 열리고, 부산에서는 오후4시 '시민학생대회'가 개최된다. 대회 종료 후 참석자들은 부산 하야리아 부대까지 평화행진을 할 예정이다. 대전과 광주, 전주에서는 '촛불 추모제'가 계획되어 있다.

대구에서는 오후2시 미군부대 캠프워커 앞에서 '민중대회'가 열린다. 대구 집회 참가자들 역시 대회장에서 대구백화점까지 평화행진을 가질 예정이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오후3시 캠프롱 미군기지 앞에서 결의대회가 열리고, 이어 5시부터는 촛불시위가 이어진다. 경남 마산과 전남 해남에서도 규탄대회와 촛불시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돼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진혼한다.

무죄평결에 대한 항의를 넘어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는 여중생 추모시위의 전국적 확산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SBS <손숙 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은 상업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여중생 사망사건 해결과 SOFA개정을 촉구하는 특별 방송'을 실시했다.
ⓒ SBS
<제2신: 7일 오전 9시 30분>
상업방송 SBS, '여중생 사건' 추모대열에 첫 동참


“나의 사랑하는 딸 보고 싶은 미선아, 정말 가야만 하느냐. 목이 터지도록 불러보고 울면서 울면서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는 우리 미선이. 사랑하는 미선이가 정말 보고 싶구나…”

7일 SBS 라디오 프로그램 <손숙 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연출 손근필, FM 103.5㎒)>은 '특별한 편지'로 문을 열었다. 바로 지난 5일 <오마이뉴스>를 통해서도 보도된 효순·미선양 아버지가 딸들에게 쓴, '하늘나라로 보낸 편지'다.

이어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군은 물값도 할인 받는다?
-인상분과 물이용부담금 내지 않아

부산지역에 산재한 미군시설 5곳이 최근 3년 동안 두 차례 인상된 상수도요금 인상분을 지불하지 않고, 올 9월부터 도입된 물이용부담금도 내지 않았다고 부산일보가 12월7일 보도했다.

미군측이 인상분과 부담금을 지불하지 않으며 내세운 이유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의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부산지역 미군시설이 사용하는 물 사용량은 연간 22만톤이며, 하수 배출량은 35만톤.

부산일보에 따르면 미군부대가 지급해야할 3년치 상수도요금 인상분은 228만원이며, 물이용부담금은 연간 2천만원이다. / 홍성식 기자
“우리들의 딸인데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니 우리가 어떤 도움이라도 줄까 그래서 나오고 있다.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효순이, 미선이 미안하다. 우리들 잘못 때문에….”

“처음에 월드컵 때문에 그렇게 아이들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이건 말도 안된다. 사과도 안하고. 부시 대통령이 엎드려 큰 절이라도 해서 우리에게 직접 사과해야한다.”

“아니 어떻게 아이들을 이렇게 죽일 수가 있나. 머리가 주뼛주뼛 솟는다.”

그동안 두 여중생 사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상업방송 SBS가 이례적으로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의 희생자 효순·미선양을 추모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면개정을 촉구하는 특별 음악방송을 결정했다.

SBS 라디오 <손숙 배기완의 아름다운 세상>은 7일 '오만한 미국 규탄 및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등 각종 시위·집회에 동참하는 의미로 이같은 특별방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손숙…>의 '특별방송'은 7일 오전 9시부터 두시간 동안 방송된다.

이 방송의 연출을 맡고 있는 손근필 피디(PD)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시민들과 종교계·사회계를 비롯 학생들까지 움직이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방송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전국적인 SOFA 개정운동에 동참하고 힘을 불어넣는 의미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손 피디는 “지금 거리로 나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에게 이 운동은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뜻이 맞는 좋은 디제이를 만나 일이 수월하게 풀렸고 또 책임 프로듀서(CP)도 ‘잘 해보라’고 격려해 준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7일 현재 여중생 사망사건 해결과 SOFA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시위 현장의 목소리를 담을 계획이다. 또한 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방송·문화·연예인들인 안치환, 정태춘, 노래를찾는사람들, 이정열, 윤도현, 장사익, 권진원, 이정현, 싸이 등의 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현재 이 프로그램의 홈페이지(www.sbs.co.kr) ‘청취자 참여’ 게시판에는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다. 감사하다” “(이 프로그램에) 용기와 박수를 보낸다” “좀더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바라기도 했지만 생방송에서 정말 쉽지않은 결단이 필요했으리라 생각 한다” 는 등의 격려 메시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제1신: 12월 7일 오전 9시>
두번째 '광화문 촛불시위''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 등
여중생 사건 규탄 및 SOFA 개정 촉구 시위, 7일도 계속


▲ 지난 30일 열린 광화문 촛불시위에는 1만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미국 부시 대통령 직접 사과, 형사재판권 이양, SOFA 전면개정' 등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군 장갑차(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부시 대통령의 직접사과·SOFA 전면개정·형사재판권 이양’ 등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항의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7일도 이 같은 항의 및 추모물결이 계속된다.

이날 오후 3시부터는 여중생 범대위가 주최하는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가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다. 이 대회에는 수 천명의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달 30일 한 네티즌의 호소글로 시작된 시민들의 자발적 ‘광화문 촛불시위’도 이어진다. 특히 이날 시위는 서울 뿐 아니라 전국적 34개 지역에서 동참할 전망이다. 또한 낮에 열리는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 참가자들도 동참할 계획이어서 지난 주에 이어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광화문 촛불시위’를 제안하는 글을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린 ‘앙마(ID)’는 지난 3일 두번째 제안 메시지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다음은 ‘앙마’가 올린 두번째 촛불시위 제안 메시지다.

▲ 지난달 27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통해 '촛불시위'를 최초로 제안한 '앙마'.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 수 천의 반딧불을 보면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니, 수 천의 미선이 효순이를 보았습니다.
모두의 손에 들린 종이컵 속에서 미선이 효순이는 그렇게 숨쉬고 있었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선의 속에서 그렇게 따뜻하게 쉬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았습니다.
연단에 올라온 사람들, 울먹이는 중학생부터 속삭이는 할머니의 발언속에서 누가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같이 평등하게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6시에 추모제를 하고자 합니다.
두 누이를 압사시킨 폭력에 대항하는 비폭력의 추모제입니다.
땀냄새로 찌든 전경의 철모에 국화꽃을 꽃아줍시다.
광화문 전각에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합시다.
효순이 아버님을 뵈었습니다. 그 분의 새카만 주름속의 타는 가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수 천이 시작했습니다. 수 만명이 되어 따라와 주십시요.
그분들의 멍든가슴에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되게,
억울해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미선이 효순이가
웃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광화문에 서있겠습니다.
수 만의 반딧불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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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중생 추모시위 전국일정
<서울>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오후 3시, 종묘) 및 광화문 촛불 추모 행사(오후 6시, 광화문 교보문고 앞)

지역 추모제 및 시위
1. <부산> - 부산 시민 학생 대회 (오후 4시, 태화쇼핑 앞 → 하야리아 부대까지
행진)
☞ 문의 : 부산 민주노총 051-637-7460 / 019-599-1423
2. <대전>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대전역)
☞ 문의 : 대전 충남 대책위 042-256-8087
3. <청주> - 촛불 추모제 (오후 7시 성안길 입구)
☞ 문의 : 충북 지역 대책위 016-463-4717
4. <전주>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객사 앞)
☞ 문의 : 전북 지역 대책위 063-253-3569 / 017-617-2296
5. <광주>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광주 우체국 앞 / 전남대 후문)
☞ 문의 : 광주 지역 대책위 019-609-0900
6. <대구> - 민중대회 (오후 2시, 캠프워커 앞 → 대구 백화점 앞까지 행진 / 오후
6시 촛불 추모제)
☞ 문의 : 대구 경북 연석회의 053-474-3381 / 011-822-8484
7. <울산> - 촛불 추모제 (오후 7시, 현대 백화점 성남점 앞 / 오후 6시, 울산
공업탑)
☞ 문의 : 울산연합 052-294-7278
8. <춘천> - 촛불 추모제 (오후 5시, 캠프 페이지 앞)
☞ 문의 : 민주노총 강원본부 017-370-5874
9. <서울 노원>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롯데백화점 앞)
☞ 문의 : 개혁국민정당 노원지구 011-9796-3983
10. <경기 용인> - 용인시민 비상 시국대회 (오후 3시, 통일공원 / 촛불 행진)
☞ 문의 : 민주노동당 용인 지구당 016-685-3968
11. <경기 의정부> - 경기북부 교사, 학생, 학부모 행동의 날 (오후 2시, 의정부
역 광장)
☞ 문의 : 경기북부 지역 대책위 017-220-0137
12. <경기 김포> - 규탄 대회 (오후 4시 30분, 사우동 사거리 하나은행 앞 / 6시
촛불 추모제)
☞ 문의 : 김포군 농민회 019-9113-1409
13. <경기 이천> - 이천시민 비상 시국대회 및 촛불 추모제 (오후 5시, 중앙통)
☞ 문의 : 이천 청년회 018-323-6841
14. <경기 여주>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중앙통)
☞ 문의 : 여주 농민회 031-884-7790 / 011-9150-7509
15. <경기 고양> - 고양시민 결의대회 (오후 2시, 화정역)
☞ 문의 : 민주노총 고양, 파주지부 019-305-2023
16. <경기 안성> - 안성 시민 시국선언 및 촛불 행진 (오후 3시, 금산로터리 앞)
☞ 문의 : 안성군 농민회
17. <강원 원주> - 캠프롱 미군기지 결의대회 (오후 3시, 캠프롱 미군기지 앞 /
5시 촛불 추모제)
☞ 문의 : 원주 대책위 019-240-8796 
18 <경북 안동> - 미군장갑차 압살 여중생 추모 문화제 (오후 2시)
☞ 문의 : 016-510-7264
19. <경북 포항> - 촛불 추모제 (오후 5시, 우체국 앞)
☞ 문의 : 포항 KYC 054-251-5025 / 011-9384-1289
20. <경북 경주> - 서명 선전전 (오후 2시, 신라쇼핑몰)
☞ 문의 : 경주 민주 청년회 016-854-1409
21. <경북 상주>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문화회관 앞)
☞ 문의 : 상주시 농민회 054-535-2152
22. <경남 마산> - "부시 직접 사과, 살인미군 처벌, 소파 전면개정을 위한
경남도민대회' (오후 3시, 창동 사거리 / 5시 촛불 추모제)
☞ 문의 : 경남통일연대 055-286-6150 / 016-356-6150
23. <경남 거창> - 규탄 집회 (오후 1시, 중앙 로터리)
☞ 문의 : 거창민중연대 016-558-6288
24. <경남 함안> - 규탄 집회 (오후 2시, 가야읍 문화의 거리 / 오후 6시 촛불
행진)
☞ 문의 : 함안군 농민회 011-588-0855
25. <경남 진주> - 청소년 단체 행사 (오후 4시, 대안동 차 없는 거리) 촛불추모제
(오후 6시, 차 없는 거리)
☞ 문의 : 서부경남연합 055-759-6064 / 011-9903-6064
26. <전남 영광> - 영광군민 1차 대회 (오후 4시, 가든 예식장 앞 / 오후 5시,
촛불 행진)
☞ 문의 : 서부경남연합 055-759-6064 / 011-9903-6064
27. <전남 진도> - 규탄 대회 (오후 2시, 철마광장)
☞ 문의 : 진도군 농민회
28. <전남 해남> - 규탄 대회 (오후 2시, 군민광장)
☞ 문의 : 해남군 농민회
29. <전북 익산> - 촛불 추모제 (오후 6시, 제일은행 사거리)
☞ 문의 : 익산군 농민회
30. <전남 목포> - 목포 시민 궐기대회 (오후 4시 30분, 목포역 광장 / 6시 촛불
행진)
☞ 문의 : 목포 민주시민운동협의회 011-9615-5061
31. <전남 여수> - 무죄판결 규탄대회 (오후 4시, 진남관 앞 / 대회 이후 바로
촛불 인간띠잇기)
☞ 문의 : 여수통일연대 061-682-3902
32. <전남 화순> - 규탄 대회 (오후 1시, 농협 군지부)
☞ 문의 : 화순군 농민회 
33. <전남 함평> - 장날 선전전 (오전 10시부터, 함평읍 장)
☞ 문의 : 함평군 농민회 
34. <전남 나주> - 규탄 대회 (오후 12시 30분, 영산포 구 우시장)
☞ 문의 : 나주군 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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