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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2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렸다. 촛불을 들고 이날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광야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1년동안 시간이 날때마다 촛불시위에 참가해왔다는 김민정씨가 29일 저녁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해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1년 전 미군 장갑차에 치여죽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든 광화문의 10만 촛불함성. 그리고 1년 뒤 오늘 500명이 촛불을 들고 다시 모였다. 그 큰 숫자의 차이 앞에 광화문에 모인 촛불집회 참석자들 사이엔 안타까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몇 차례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대학생 박미혜(21)씨는 "1년이나 지났는데도 해결된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8차례 촛불집회에 참석한 바 있다는 용산구 이촌동의 시민 김일룡(70)씨는 줄어든 대오에 대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학생들이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미국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며 답답해했다.

작년 6·13 집회 때 참석 이후 처음이라는 간호사 조남석(26)씨는 "오늘은 그 때만큼 과격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집회 참가자 수가 적은 것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면서 "진척이 없는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성토했다.

반면 안타까움과 답답함의 이면에는 1년이나 촛불행진이 계속되어 온 것에 대한 기쁨과 보람이 배어있었다.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백항기(37·중랑구 신내동)씨는 "근처에 일보러 왔다가 아들에게 많은 사람이 모여 한마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참석이유를 밝혔다.

숫자로 보는 1주년 촛불행진

- 한미SOFA개정 서명자수 : 200만명
- 6.13 추모대회 준비위원수 : 20만명
- 전국해외 동시다발 촛불시위 : 총8회, 100여 곳
- 1년간 촛불시위 참가자수 : 500만명
- 여중생 사건사진 배포 : 1500세트
- 홍보선전용 비디오 배포 : 1000개
- 미국바로알기 10종 포스터 : 670세트
- 촛불시위 구속자 : 3명
- 촛불시위 불구속자 : 3명
- 체포영장 발부자 : 5명
- 소환장 발부자 : 22명
안양 신성중학교 2학년 윤민구·오진우군은 "많이 모아오려고 했지만 시험기간이라 둘이서만 왔다"며 "많이 모일수록 힘이 나지만 부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1년 동안이나 항의가 계속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오늘이 처음이라는 황민영(26·학원강사)씨와 황씨의 친구 백일홍(26·고시생)씨는 "언론을 통해서만 보다가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싶어 왔다"며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촛불집회는 계속되어 이라크 파병반대로 이어져야 한다."
"이라크에서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가 죽어가고 있다."

10만명에서 500명으로 참석자 줄어 기쁨과 안타까움 교차

19일 오후 6시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여중생범대위)' 주최로 '자주평화 1주년 촛불행진'이 열렸다.

지난해 11월 20일, 22일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을 처참하게 죽인 미군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여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 평화시위를 시작했고, 지난 26일로 1주년을 맞았다.

▲ 29일 촛불시위에 참가해 어린이들의 귀여운 율동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시민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은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고 촛불집회에 대한 탄압중지, 소파개정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라크 파병반대를 외쳤다.

여중생범대위는 '자주평화 1주년 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미국은 여중생 문제를 해결하고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기는커녕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이라크 침략전쟁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범대위는 촛불행진 1주년을 맞아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촛불행진 1주년은 또 다른 시작"이라며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촛불행진은 미순이 효선이 한이 풀릴 때까지, 불평등하고 부당한 한미관계가 똑바로 설 때까지, 미국의 부당한 침략전쟁과 파병강요가 중단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촛불시위 1주년 기념행사는 시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오후 4시 종묘공원에서 '이라크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등 300여명이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부는 '촛불을 지켜온 사람들'이란 주제로 촛불집회의 '단골손님'이었던 푸른학교 어린이들의 율동과 노래로 포문을 열었다. 방과후 공부방인 푸른학교는 매향리 때부터 유명해진 어린이 문화패다.

매일 오후 7시면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의 단골사회자 이승헌씨는 수배 중으로 한동안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으나, 이날 무대에 서 "5개월만에 마이크를 잡아본다"며 "수배중이라 광화문에 올 수 없어 외로웠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처음엔 30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영하 20도 추위를 견뎌내며 80명이 넘게 참여하는 국민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상징으로서 촛불집회는 이라크 파병반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촛불을 지켜온 사람들' 중 인기몰이는 '반미동자' 신한얼(10)군이었다. 신군은 자신의 '18번' <기특한 과자>를 노래한 뒤 정부의 이라크 파병결정을 비판하며 "무엇이 참여정부입니까, 전쟁에 참여하는 정부입니까?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여야 합니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촛불행진은 계속됩니다"

저녁 7시가 넘어 시작된 2부 집회는 촛불행진의 현재적 의미와 고 제종철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문화행사와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지난 23일 미2사단 앞에서 노제로 영결식을 가진 여중생범대위 부상황실장 제종철(35)씨는 21일 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선로 위에서 참변을 당해 범대위측에서 '의문사' 의혹을 제기하는 가운데 경찰 조사가 진행중이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고인을 추모하며 "촛불시위를 1년 동안 이어오는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던 사람이 하늘에 있는 효순이, 미선이를 직접 가 위로해 주려고 떠났냐"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 이날 행사에 참가한 용화여고 김아람 학생은 시간이 날때마다 촛불을 들고 이곳 광화문에 왔었다며 '벌써 1주년이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상열(여중생 범대위 공동대표) 목사는 "우리의 요구가 관철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촛불시위 자제를 운운하고 소파개정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 목사는 "촛불집회 참석자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촛불기념비가 다시 철거위기에 있다"며 "철거를 하면 더 크게 만들어 세울 것"이라고 말하며 거리교통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철거명령을 내린 종로구청에 항의를 표시했다.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넋풀이 춤과 성조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 그리고 4색 천이 참석자들 머리 위로 띠를 이루며 퍼져나갈 때 집회는 절정을 이뤘다. 마지막 합창곡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집회가 3시간을 넘기며 계속되었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집회장 한 구석에서 동료 서너 명과 촛불을 들고 서있던 전윤창(39·광고영업)씨는 "집회장소가 너무 협소하다"며 "바뀐 것은 없고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하면서 촛불집회에 계속 참석할 뜻을 밝혔다.

이날 집회는 교보문고 앞 인도에서 열렸고 대형차에 마련된 무대에서 문화공연 등이 펼쳐졌다.

"12월 31일 다시 광화문에서 만납시다."

밤 9시가 넘어 집회는 끝났고, 참석자들은 12월 마지막날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대규모 촛불대행진을 약속하며 자진 해산했다.

한편 이날 집회가 열린 광화문 교보문고와 미대사관 주변에는 경찰 9개 중대가 배치되었으나 시위대와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엄마, 촛불이 왜 이렇게 많이 보이는 거야?"
[집회장 이모저모] 수천 개의 촛불로 둔갑한 한개의 촛불, 그 비밀은?

▲ 이날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이라크 파병반대 문구를 넣어 직접 만든 모형 안경을 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광화문 할아버지' 이관복(73) 선생은 암 수술로 인해 87일 결석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억에 대해 "추운날 사회자가 고생하는 걸 볼 때는 쌀을 구하러 나간 시아버지를 기다리며 불을 때고 있는 며느리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도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티토(37·학원강사)씨는 "외국인노동자 인터넷 사이트에 링크된 여중생 범대위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었다"며 "아시아인으로서 불평등한 SOFA협정에 관심이 많다"고 참석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필리핀에도 효순이와 미선와 같은 사고가 있어 국민들이 데모를 하지만 한국처럼 촛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해 촛불시위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에게 최대 관심은 '촛불 마술상자'에 쏠렸다.

"와! 촛불 되게 많다, 신기하지?"
"왜 이렇게 많이 보이는 거야?"

엄마의 팔에 안겨 검은 상자의 구멍을 들여다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신기해했다. 촛불 하나가 수천 개의 촛불을 만들어낸 이 검은 상자의 비밀은 깨진 거울조각 한 가운데 한 개의 촛불을 세웠다는 것. 착시효과를 노린 촛불행렬이었다.

시민들에게 종이컵과 촛불을 나눠주고 있는 자원봉사자 중에는 시의원도 있었다. 용인시 시의원인 주경희씨는 "작년 10만 인파가 모인 때도 이 자리에서 촛불을 나눠줬다"며 "오늘은 그 때만큼 '촛불컵'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전쟁 없는 그 날까지 마지막 한 사람에게 초를 나눠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말했다.

눈길을 끈 '집회패션'은 파병반대 머리띠, 안경, 모자, 얼굴스티커 등이었다. 청소년들과 대학생 중에는 '파병 안돼'라는 글자가 새져진 각종 장식을 직접 만들어와 사진기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석이 예정됐던 개그우먼 김미화씨와 관련, 범대위 관계자는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의식해선지 '사회자로서 안정적인 위치를 잡게 되면 다시 광화문을 찾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20일 신설되는 시사 프로그램 `2003년 가을(겨울)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표준FM 95.9㎒. 매일 오후 6∼8시)의 진행을 맡고 있다.

지난 1년 촛불시위 참가 대중연예인은 김미화를 비롯해 이정현, 문소리, 이정렬, 안치환, 신해철, 이선희, 양희은, 장사익, 한영애, 윤도현, 노브레인, 블랙홀 등이 있다. /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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