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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개 여성단체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5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넋을 기리며 불평등한 소파 개정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여성도깨비굿 행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니 이것이 웬 통곡소리여…. 우리 딸들의 한맺힌 통곡소리여…? 또다시 어여쁜 여동생들이 죽었어. 어째서 우리 땅에서 온전히 살고픈 우리 꿈을 짓밟는가."

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 때아닌 곡소리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천하무적 장갑차야 이 바퀴에 깔려서 사람이 죽었는데 모두가 무죄라니 니가 바로 유죄구나. 한번가면 못오는 길 그냥가도 서러운 길 아이고 효순아 미선아…"

무당의 절규에 가까운 위로가에 이어 흰 소복 차림에 삼베두건을 두른 여성 70여명의 "어이∼어이"하는 곡소리가 시작됐다. '여성 도깨비굿'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여성 도깨비굿이란 진도 지방에서 벌이던 대표적 여성굿.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리가 벌어졌을 때 마을의 여인들이 여성의 상징이자 생명의 상징인 월경서답(생리대의 옛말)을 장대에 매달아 뛰어다니며 인간의 뜻을 하늘에 전하던 굿이다.

이 굿의 유래를 살려 효순·미선양을 추모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를 개정의 뜻을 알리기 위해 21개 여성단체 대표자와 회원들이 이날 하루 굿판을 벌였다.

여성계, 4년만에 다시 '여성 도깨비굿'으로 뜻 모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해결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위해 여성들이 뜻을 모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 이오경숙, 이하 여연),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공동대표 김숙임·이김현숙), 자주 여성회 등 21개 여성단체는 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효순·미선의 넋을 위로하고 불평등한 SOFA개정을 위한 '여성 도깨비굿'>을 벌였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효순이·미선이의 넋을 위로하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위해 굿을 한판 벌여보려 모였습니다."

황금명륜 여연 기획국장의 설명이다. 그의 앞에는 흰 소복을 입고 삼베를 두른 여인네들 70여명이 줄지어 서 있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SOFA 전면개정!""부시사과""형사재판권 이양" 등이 적힌 카드가 매달린 금줄과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황금 국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 이날 여성도깨비굿은 숯, 솔잎, 소파개정의 염원을 쓴 한지를 매단 금줄로 테두리를 두른 상태에서 진행됐다. 'SOFA라는 악귀'를 몰아내고 금줄로 차단된 평화의 공간에서 행사를 벌인다는 의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도깨비굿'은 본래 진도지방에서 나라에 심한 재앙이나 변란이 있을 때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여인네들이 월경서답(생리대의 옛말)을 장대에 매달고 양푼을 두드리며 온 마을을 뛰어다니던 굿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성의 힘으로 효순이·미선이의 넋을 위로하고 잘못된 SOFA가 개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21개 여성단체 대표자와 회원 70여명이 모두 흰 소복에 삼베를 두르고 직접 굿에 참여했다. 여성 도깨비굿은 4년만에 등장한 행사였다. 지난 98년에는 국회의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여성단체들이 같은 굿을 벌였다.

도깨비굿의 무당은 김애영 예술집단 '아라리오' 대표가 맡았다. 김씨는 노래패 '꽃다지'의 창립 대표이기도 하다.

굿이 시작되기 전 김씨는 "국민의 한 사람이자 내 딸의 어머니로서 당연히 해야될 일을 하는 것"이라며 "내가 지닌 작은 기능인 '소리'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뜻 알릴 수 있게 돼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굿판이 정리된 후 그는 "목상태가 안좋아 오늘 만족스런 소리가 안나왔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날 김씨의 소리는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생명의 상징 월경서답에 'SOFA 전면개정' 등 소망 담아

▲ 이날 열린 여성도깨비굿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불평등한 소파 개정을 촉구하는 월경서답을 태우고 있다.
ⓒ 송정근
이날 도깨비굿은 풍물패의 길놀이로 시작해 참가자들의 곡소리와 무당의 위로가 순으로 진행됐다. 끝으로 장대에 매달려있던 월경서답을 내려 태우면서 굿판이 마무리됐다.

월경서답이란 생리대의 옛말. 여성과 생명의 상징인 생리혈이 묻은 이 속곳을 태워 여성들의 뜻을 하늘에 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날 준비된 월경서답에는 "SOFA 전면개정" "부시사과" 등의 문구가 씌여 있었다.

황금명륜 국장은 "여성들이 월경을 하지 않으면 이 땅의 새 생명은 잉태될 수가 없다"며 "이 소중한 월경서답에 오늘 우리의 뜻을 새겨 이 땅의 운명을 관장하는 모든 신께 이 뜻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소복을 입고 굿판에 참여한 남윤인순 여연 사무총장은 "그동안 많은 여성이 미군범죄에 희생당해 왔다"며 "이런 굿을 통해 그동안 억울하게 죽은 넋들을 위로하고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윤 총장은 또한 "여성단체들이 이제서야 나서게 돼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여성들이 평화애호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만큼 이제라도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나서 후손에 '평화의 땅' 물려주겠다"

한판 굿이 벌어진 후에는 여성단체 대표자들의 입장 발표가 이어졌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정현백 여연 공동대표는 "온 국민이 월드컵으로 들끓는 동안
▲ 김숙임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가 '무죄평결 원천무효, 형사재판권 이양, 부시 직접사과, 소파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송정근
두 여중생이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며 "이처럼 미군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 계속되는 한 SOFA는 전면적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현재의 SOFA는 두 번의 개정을 거쳤으나 모두 형식적인 개정에 불과했다"며 "이를 받아들이는 것 차제가 민족의 수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선미 자주여성회 대표(여중생 범대위 대변인)도 "우리는 여기에 여중생들의 한을 풀기 위해 나왔다"며 "이 땅의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여성단체들은 △부시 대통령의 직접 공개 사과 △재판결과 무효, 재 재판 실시 △형사재판권 보장·여성인권조항 등을 신설해 SOFA 전면개정 등이 담긴 성명서를 채택, 발표했다. 또한 21개 여성단체 명의의 항의서한을 주한 미 대사관에 전달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미제 불매 맥스나월 운동' 시작, 사이버 범대위 발족 등
'반미 및 여중생 사건 항의 시위' 계속돼


한편,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단체들의 항의시위는 이번 주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도 민주노총은 낮 12시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옆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산하 택시연맹과 화물노조 조합원들이 여중생 사망요일인 매주 목요일 정오에 경적 시위를 벌이고 금속·화학노련 조합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 `소파개정 촉구집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 한편 이날 미 대사관 앞에서는 민주노총 주최로 미군무죄판결에 항의하는 정오 경적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6일부터는 현재 SOFA 개정 등을 촉구하며 단식기도를 벌이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기도회를 계속한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소파개정을 위한 생명·평화 촛불 음악회>를 열었다.

방송·연예인도 이에 가세한다. 개그맨 김미화씨등 방송·영화·연예인들은 6일 낮 1시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옆에서 <살인미군 처벌 방송·영화·연예인 선언 기자회견>을 갖는다.

오는 7일에는 지난주부터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주말 촛불시위'가 계속된다. 또한 이날 낮 3시부터는 여중생 범대위가 주최하는 '인간 촛불 띠 잇기 대회'가 열린다.

사이버 상에서는 '사이버 범대위(bioviz.net)'가 공식 발족되는 한편 미제 불매운동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사이버 범대위는 지난 달 30일 서울 광화문 네티즌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 일부가 주축이 돼 결성됐다. 이들은 지난 2일 개설한 임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이버 항의시위' 및 이후 촛불시위 활성화 등 온라인에서 네티즌 관심을 모으는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미제품 불매운동'은 여중생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migoon.org) 게시판 등 인터넷 게시판에 '맥스나월 운동하기' 등의 글이 퍼지면서 시작되고 있다.

'맥스나월 운동'이란 대표적 미국 브랜드인 '맥도날드(패스트푸드)·스타벅스(커피전문점)·나이키(스포츠 용품)·월마트(유통업체) 가지 않기'를 뜻하는 말이다.

현재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이같은 내용을 제안하는 게시물이 속속 퍼지고 있어 네티즌을 중심으로 '미제 불매운동'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아니… 이런 일이, 쯧쯧…" "아이고 기가 막히네…"
[현장] '미군범죄' 거리사진전 시민들 반응

▲ 미군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시민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송정근

이날 여성단체들과 여중생 범대위는 여성 도깨비굿을 벌이는 한편 미군 범죄를 알리는 거리 사진전을 함께 진행했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시민은 "(굿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기가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역시 굿을 지켜보던 최진영·이지은 (부천정보고·3) 학생도 "(두 미군은) 당연히 우리나라에 와서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며 "사람을 죽였는데 별거 아니듯 '무죄 평결'이 난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거리 사진전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사진전에는 효순·미선 양이 사망한 현장 사진을 비롯해 92년 윤금이씨 살해사건 현장사진 등 대표적 미군범죄 일지가 전시됐다.

현장 수업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를 지켜보던 풍납중학교 3학년 학생 한 무리는 "잔인하다" "끔찍하다"를 연발하며 사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최주혁·선상우 학생 등은 "미국에 대항해야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SOFA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우리가 다 약하기 때문"이라며 "빨리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학생들은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시위에 참여하자'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굉장히 화가 나고 미국이 이젠 제일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범수(풍납중) 군도 "힘없는 정부를 보면 답답하다. 아직 중학생이라서 시간도 없고 시위에 참여도 못하지만 '백악관에 이메일 보내기'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효순·미선양 사건' 현장 사진을 보던 최경순(56·경기도 고양시)씨도 "어처구니가 없다. 어째 그렇게 사람을 처참하게 죽여놓고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최씨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며 "항상 '선진국' 운운하더니 이런 일 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면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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