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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압구정 모 아파트의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모욕감을 느낀 뒤 분신을 시도해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간 묻혀있던 경비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최저임금 100% 적용을 앞둔 탓에 전국적으로 '대량 해고' 조짐이 나타나는 등 해결은 요원한 상태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경비원들의 산업재해 등 또 다른 문제와 이를 둘러 싼 지자체 등의 노력을 차례로 보도합니다. [편집자말]
판·검사 등 법조인들이 대거 사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요청한 초과임금지급을 피하기 위해 부당 인사·재계약 거부 등 인사권을 휘둘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4월 촬영한 S아파트.
 판·검사 등 법조인들이 대거 사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요청한 초과임금지급을 피하기 위해 부당 인사·재계약 거부 등 인사권을 휘둘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4월 촬영한 S아파트.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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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아파트 경비 초소 내부 모습.
 S아파트 경비 초소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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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등 법조인들이 대거 사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요청한 초과임금지급을 피하기 위해 부당 인사·재계약 거부 등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비원들이 근무시간 중 다쳐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해도 이를 거부하며 자비 치료를 종용하는가 하면, 아파트 관리팀장이 일부 경비원의 근로계약서를 대신 작성하는 등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일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동 S아파트에서 약 2년간 근무한 박종범(59·가명)씨는 사고 당시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새벽 근무 중 불법전단지 업자를 막다가 밀쳐져 계단을 구르는 바람에 오른쪽 쇄골 4대가 부러졌다.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그때 산재 처리를 얘기했더니 관리소가 못하게 막았다, 산재요율(보험료 기준비율)이 올라가고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였다며 "결국 노무사를 고용한 뒤에야 산재를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관리소는 제게 알아서 치료하라고, 개인 의료보험으로 해결하라고 했다"라면서 "보통 경비원들은 이런 걸로 싸우면 당장 업무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씨는 산재처리를 언급한 뒤 '외곽 초소'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그는 "외곽은 일종의 땜빵 근무이자 징계를 받아 가는 곳으로, 근무 환경이 나빠 다들 기피한다"라면서 '괘씸죄'에 의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결국 지난 7월 사직했다.

S아파트는 입주민 대부분이 판·검사 등 중산층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평형부터 64평형대까지, 매매 시세만 해도 최대 16억 원을 호가한다. 지난 27일 찾아간 S아파트 주차장에는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외제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 근무했던 한 경비원은 "경비원을 대하는 입주민들을 보면서 마치 귀족이 노예를 부리는 듯 '우린 그래도 된다'는 상류층 특권의식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S아파트는 매매 시세만 해도 최대 16억 원을 호가한다.  지난 27일 찾아간 S아파트 주차장에는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외제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S아파트는 매매 시세만 해도 최대 16억 원을 호가한다. 지난 27일 찾아간 S아파트 주차장에는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외제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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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처리 요청은 '나 자르라'는 의미... 경비원들은 바로 계약해지"

산재 처리를 받은 박씨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동료 경비원들의 경우, 입주민 차를 밀어주거나 골프가방을 대신 들다가 허리를 다치는 등 부상을 입어도 대부분은 관리소에 "찍힐까 두려워서" 자비를 들여 치료받기 일쑤였다. 현재 이 아파트에 근무 중인 경비원 A씨는 "산재는 모든 아파트의 아킬레스건"이라면서 "우리가 다쳤다고 산재를 신청하는 건 관리소에 '나 잘라 달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S아파트에서는 지난 4월 초에도 한 경비원이 과한 업무 수행 후 뇌출혈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사인을 두고 산재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관리소는 "과로사가 아니"라면서 업무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리소 측은 경비 초소마다 '특별지시사항'을 배포한 뒤, 경비원들에게 "별도의 취침시간이나 장소 없음, 24시부터 오전 4시까지는 잠자지 말고 가수면 상태를 유지"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관련기사: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조용하다"). 

S아파트는 경비 초소마다 '특별지시사항'을 배포한 뒤, 경비원들에게 "별도의 취침시간이나 장소 없음, 24시부터 오전 4시까지는 잠자지 말고 가수면 상태를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S아파트는 경비 초소마다 '특별지시사항'을 배포한 뒤, 경비원들에게 "별도의 취침시간이나 장소 없음, 24시부터 오전 4시까지는 잠자지 말고 가수면 상태를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 S아파트 경비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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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남짓 S아파트에 근무한 경비원 권상길(가명, 사진)씨도 최근 다리 마비가 와 자비 1000만 원을 들여 긴급수술을 받았다.
 5년 남짓 S아파트에 근무한 경비원 권상길(가명, 사진)씨도 최근 다리 마비가 와 자비 1000만 원을 들여 긴급수술을 받았다.
ⓒ 경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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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남짓 S아파트에 근무한 경비원 권상길(가명, 사진)씨도 지난달 다리 마비가 와 자비 1000만 원을 들여 긴급수술을 받았다. 그 또한 "입주민 차를 밀다가 허리를 삐끗했고, 밤마다 초소 의자에 앉아 자다 보니 (증세가) 심해져 수술까지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산재신청은 서류만 받아놓은 채 고민 중이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경비원은 대개 1년마다 재계약을 하다 보니 산재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 계약해지 등 불이익이 따른다"라고 지적했다.

S아파트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이 아파트의 전·현직 경비원 11명은 아파트를 상대로 "휴게시간에도 가수면을 하라며 근무를 시켰다, 초과근무 임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낸 상태다. 경비원들은 관리소가 이와 관련된 경비원을 자르기 위해, 입주민 명의를 도용해 '민원 일지'를 조작하고 근로계약서까지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소송에 참여한 한 경비원은 1·2차 인사평가에서 9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지만 재계약을 거부당했다.

경비원 C씨도 같은 경우다. 그는 지난 2013년 '투철한 사명감으로 근무해 모범이 된다'며 아파트 측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지만 지난 6월 말 외곽 초소로 보내졌다. C씨는 "관리팀장이 6월 초부터 '소송을 취하하라, 안 그러면 외곽 배치한다'고 협박했다"라고 전했다. 관리소는 입주민 이아무개씨 등 3명 민원을 근거로 '근무 기강이 해이해 외곽근무를 보냈다'고 설명했지만 C씨는 해당 입주민의 말은 달랐다고 주장했다.

C씨는 지난 7월 31일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아무개 입주민에게 전화해 민원 제기 여부를 물었다. 경비원들은 이 통화를 녹음해 녹취록을 작성했는데, 녹취록에 따르면 이씨는 "나는 (민원제기)한 적이 없는데 관리팀장이 나를 팔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라아무개 관리팀장은 지난 8월 아파트 놀이터에서 C씨와 만나 "(입주민) 회장이 '네가 소송만 취하하면 외곽에서 빼준다'고 했다"는 식으로 그를 설득하기도 했다. 

라아무개 S아파트 관리팀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C씨를 둘러싼 민원과 관련해 "제가 더 이상 말할 게 없다, 입주민들이 밝히기 싫어한다"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일부 경비원의 근로계약서를 자신이 작성한 것을 인정하며 "노동부 제출용으로 써낸 건 맞지만 당사자의 사인이 없으니 효력이 없다, 내용도 전년도와 같았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산업재해와 관련해서 라 관리팀장은 "박씨도 결국은 산재를 받지 않았느냐, 우리는 거부하지 않고 산재를 하겠다고 하면 다해준다"며 "경비원들이 신청을 안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경비원들에게 소송 취하를 종용했다고 의혹이 제기되는 S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고위기' 놓인 경비원들... "이런 밑바닥 세계 있는 줄 몰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감시·단속직 노인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2013년 11월)에 따르면, 경비원과 같은 감시·단속직 노동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61시간에 이른다. 초과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이도 전체 설문대상(874명) 중 160명에 달했다. 최근 경비원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라 근로환경이 점차 개선되는 듯 보이지만, 내년도 최저임금 100% 적용을 앞두고 대량 해고 조짐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올해 2월 경비원을 그만둔 강아무개씨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는 "경험해보기까지는 이런 밑바닥 세계가 있는지 몰랐다"라면서 "인간이 아니라 짐승 대우를 받는, 사회 최하층 노동자가 경비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산재 처리를 받은 뒤 퇴직한 경비원 박씨도 "경비원으로 일하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하더라, 원숭이 같이 네모난 초소에 앉아서 바나나 던져주면 고맙다고 인사나 하는 것"이라고 체념했다.

이들은 "S아파트에는 변호사나 검사는 물론 장관 출신, 별 4개 사령관도 사는데 결국 똑같다, (분신사건이 난) 압구정 S아파트나 여기나 잘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심하다"라면서 "고용노동부가 사용자를 편들지 않고, 사업장 취업규칙이 꼼꼼한지 등만 제대로 심사해도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당 아파트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담당자는 "어느 쪽을 편들지 않는다, 법에 따라 판단하려 애쓴다"라고 말했다.


태그:#서초동 S아파트, #압구정 S아파트, #경비원 근로환경, #경비원 재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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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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