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일 새벽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응급실에서 눈을 감았다. 사인은 뇌출혈. 그는 전날 24시간을 근무하면서 새벽까지 100여 자루의 낙엽을 쓸어 담고 순찰도 돌았다. 그는 죽은 지 이틀 만에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아파트 경비원을 포함하는 감시·단속직 노동자는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고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그의 죽음은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경비원의 죽음을 계기로,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한 사람이 사라졌다.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지난 3일 오전 6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S아파트에서 근무 중이던 용진성(58, 가명)씨는 약 1평(3.3㎡) 남짓한 경비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전날 오전 6시 20분께 출근해 만 24시간을 근무하고 교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용씨는 119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같은 날 오후 1시 사망했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얼굴이 벌겋고 입에 거품을 문 채로" 쓰러져있던 용씨를 돌봐줄 가족은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근처 영구임대아파트에 홀로 살던 그는 숨진 후에도 혼자였다.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된 용씨의 시신은 구청에 의해 5일 새벽 화장됐다. 빈소를 지킬 사람이 없으니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용씨가 쓰러진 채 발견된 곳은 약 1평(3.3㎡)도 채 안 되는 경비실. 해당 아파트 측은 '근무지 이탈 금지, 야간에 가수면 취하기' 등 따로 지침을 작성해 따르도록 하고 미이행시에는 근무평점에 반영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 어느 경비노동자의 쓸쓸한 죽음 용씨가 쓰러진 채 발견된 곳은 약 1평(3.3㎡)도 채 안 되는 경비실. 해당 아파트 측은 '근무지 이탈 금지, 야간에 가수면 취하기' 등 따로 지침을 작성해 따르도록 하고 미이행시에는 근무평점에 반영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숨진 지 이틀 만에 한 줌의 재로 남은 동료의 죽음. 아파트 측은 남은 경비노동자들에게 인터폰을 통해 그가 "지병으로 인해 숨졌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와 만난 동료 경비노동자들의 설명은 달랐다. 용씨가 전날 일을 하던 중 "일이 너무 힘들다"며 두통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아파트 측에서) 안 하던 작업을 무리하게 시킨 것이 화근"이라며 '과로사'였다고 말했다.

"사람이 이웃집 개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한 건지"

"원래 힘들다거나 그런 말을 하는 친구가 아녜요. 윗사람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복종하는 타입인데 그날은 유독 '왜 우리만 이런 일을 시키냐'며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녁에 1시간 정도 순찰 돌고, 새벽 2시에 깨서 3시까지 순찰 돌고... 경비실에 돌아와 의자에서 쪽잠 자다가 그렇게 된 거죠."

한 동료 근무자의 말이다. 용씨는 숨지기 전날 오후, 25개동 아파트 내 낙엽(나뭇잎과 꽃잎 등)을 담은 마대자루 100여 개를 동료들과 함께 아파트 내 공터로 들어 옮겼다. 이틀 전 내린 봄비로 인해 무거워진 잎들은 자루 하나 당 약 20kg의 무게가 나갔다. 함께 작업한 A씨도 힘들어서 다음날 얼굴이 부을 정도였다. 그는 "전날 과한 작업을 하면서 무리한 데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경비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술렁였다. "언제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조용히 일을 덮으려고 하는 아파트 측 태도에 대한 반감도 엿보였다. 또 다른 동료 B씨는 "어쨌든 일하던 근무지에서, 근무시간 내에 숨진 사람인데도 사측은 무조건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새벽 6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근무 중이던 경비노동자가 쓰러진 채 발견돼 몇 시간 뒤 사망했다. 사인은 뇌출혈. 동료들은 "(아파트 측에서) 안 하던 작업을 무리하게 시킨 것이 화근"이라며 '과로사'였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새벽 6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근무 중이던 경비노동자가 쓰러진 채 발견돼 몇 시간 뒤 사망했다. 사인은 뇌출혈. 동료들은 "(아파트 측에서) 안 하던 작업을 무리하게 시킨 것이 화근"이라며 '과로사'였다고 말했다.
ⓒ 동료제공

관련사진보기


동료들 말에 의하면 용씨는 숨지기 전날 오후, 25개동 아파트 내 낙엽(나뭇잎과 꽃잎 등)을 담은 마대자루 100여 개를 동료들과 함께 아파트 내 공터로 들어 옮겼다. 관리소 측은 용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지만 과로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동료들 말에 의하면 용씨는 숨지기 전날 오후, 25개동 아파트 내 낙엽(나뭇잎과 꽃잎 등)을 담은 마대자루 100여 개를 동료들과 함께 아파트 내 공터로 들어 옮겼다. 관리소 측은 용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지만 과로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경비원제공

관련사진보기


"이게 이웃집 개도 아니고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죽었는데 이틀 만에 화장시켜 버리고 어떻게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덮습니까? 긴급회의를 하든가, 아니면 남은 사람들에게 안전고지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일체 입을 닫고 있어요. 저희가 경비복에 작은 리본이라도 달고 추모하자고 했는데 '아파트 이미지 나빠진다'면서 그것도 못하게 하고..."

경비노동자 A씨는 "원래 경비는 자기 맡은 초소 일부만 청소하는 게 원칙인데 사측은 돈을 안 들이려 모든 작업에 경비를 활용했다"면서 사측이 '근무지 이탈 금지·가수면 취하기' 등을 요구한 탓에 거의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최저임금의 90%만을 받고 근무하는 것도 이들이 비교적 피로도가 덜한 감시 업무를 주로 하는 감시(監視)적 근로자로 분류되기 때문인데, 본 업무를 넘어서 과한 업무를 종용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검사·변호사로 중산층이다 보니 자기들이 뭘 하려고 안 해요. 저희들이 골프가방을 들어주거나 주차도 대신 하고요. 주차 공간이 좁다보니 차를 밖으로 밀어주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경비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다보니 허리디스크에 걸리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용씨가 근무한 경비 초소에도 사측이 '특별지시사항', '직원 중요숙지사항'이라며 경비원들에게 배포한 서류들이 있었다. "숙지 후 합철해 계속 활용바람"이라고 적힌 해당 종이에는 "24:00~4:00 잠자는 것이 아니라 휴식(가면)상태 유지", "별도의 취침 시간 및 장소 없음" 등 사측이 지침을 정해 따르도록 했다. 해당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재계약을 해주지 않거나, 근무평점에 반영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아파트 측은 경비 초소마다 일일이 '특별지시사항', '직원 중요숙지사항'이라며 경비원들에게 지침을 배포했다. 야간 휴식시간에도  "휴식(가면)상태 유지" 등을 요구한 지침 사항에 대해 아파트 측은 "교육 차원일 뿐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아파트 측은 경비 초소마다 일일이 '특별지시사항', '직원 중요숙지사항'이라며 경비원들에게 지침을 배포했다. 야간 휴식시간에도 "휴식(가면)상태 유지" 등을 요구한 지침 사항에 대해 아파트 측은 "교육 차원일 뿐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아파트 측은 매년 5월 '근로자의 날'에 대해서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해당 아파트 취업 규칙에는 '유급 휴일'로 적혀있음에도 임금을 주지 않았던 것. 결국 근로자 중 6명이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해서야 최근 3년 내 임금이 소급 적용돼 각각 지급됐다. 이들은 "매달 140만 원 가량을 받으며 24시간 근무 후 맞교대 하는 우리에게는 10만 원도 큰 돈"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의도적으로 주지 않은 게 아니라 관리소장도, 경비원 내 노조위원장도 이를 명확히 알지 못했다는 얘기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아무개 관리소장은 용씨의 죽음 역시 "안타깝지만 과로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근무지를 이탈하지 말고 가수면하라'는 지침(지시사항) 탓에 용씨가 쓰러졌다는 주장에도 그는 반박했다. 김 소장은 "지시사항은 강제성이 없다"면서, "경비관리 팀장이 교육 차원에서 작성한 거다, 휴게시설도 올해부터 설치해놨는데 경비원들이 이용을 안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확인 결과 해당 아파트는 노동부로부터 2012년 경비직원의 휴게 장소를 만들라는 시정 지시를 받았지만, 실제로 시행한 건 2년이 지난 올해 초였다.

28만 원, 50만 원... 우윳값과 휴대폰비로 남은 용씨의 '흔적'

"자기 속 얘기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20년 넘게 이웃 주민으로 같이 살았는데도 그 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몰랐거든요. 형편이 안 좋아서 관리비를 몇 달 밀렸기에 제가 대신 내준 적도 있고요. 경비원 근무하면서 돈 벌게 됐다고 참 좋아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니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죠."  

용씨가 살던 영구임대아파트의 이웃 주민 이아무개(62)씨는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황당하다"고 말했다. 용씨의 천주교 '대모'이기도 했던 이씨는 결국 그의 가장 가까운 보호자로 불려가 무연고 처리에 동의했다. 용씨가 살던 집의 우편함에는 약 50만 원의 휴대폰 요금과 28만 원 가량의 우유대금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들어있었다.

용씨가 살던 집의 우편함에는 약 50만 원의 휴대폰 요금과 28만 원 가량의 우유대금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들어있었다.
 용씨가 살던 집의 우편함에는 약 50만 원의 휴대폰 요금과 28만 원 가량의 우유대금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들어있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경비원 아저씨요? 잘 모르겠는데요."

한 사람이 사라졌다. 밀린 우윳값과 휴대폰 요금 등,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용씨가 근무했던 라인에 사는 주민들은 용씨가 숨진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대신 이달 초 새로 입사한 경비노동자가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한 지 4일째라는 그 또한 "들어온지 얼마 안 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해당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지금껏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올해 2월 아파트 측에 사직서를 낸 강아무개씨는 "용씨에 대한 사측의 행동이 너무 비인간적"이라며, "휴게시간에 대한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노동력 착취 등에 대해 아파트 측에 민사 소송을 걸 예정"이라고 말했다.


태그:#경비노동자, #감시직 근로자, #감시단속직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