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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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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만 한국어를 말할 때 어딘지 모르게 어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일한국인이라고 했지만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 가 눌러앉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라고 했다.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이야기다.

그가 NNAA-J 사무국장이라고 했을 때,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재일한국인도 일본에서 반핵운동을 열심히 하는구나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재일한국인이 탈핵을 이야기하면 일본인들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며 "탈핵문제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을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 국장은 "드러내놓고 탈핵문제를 제기하는 재일한국인은 내가 유일하다"며 "일본에서 유명한 재일한국인들도 많지만 드러내놓고 탈핵을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재일한국인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최 국장은 9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진행된 탈핵원전투어와 5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지역 방문에도 참가했다. 탈핵원전투어에 유일하게 참가한 재일한국인 최승구 사무국장.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 피해를 입은 미나미소마를 방문했을 때 방문소감을 묻은 기자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탈핵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다. 그는 말한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결국 민족이나 국가와 상관없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를 바꾸자, 해서 '발신'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발신'은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보통 한국인들은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최 국장과 인터뷰는 지역주민들이 30년 동안 핵발전소 건설 반대투쟁을 한 아름다운 섬 이와이시마에서 했다. 마을회관 바로 앞 길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10월 2일 오후였다.

다음은 최 국장과 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재일한국인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일본에서 살면서 차별을 많이 받았나.
"오사카 중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성공하신 편이라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는 일본이름으로 장사를 하셨고, 나도 공부를 잘했는데 (한국인이라는 것을) 비밀로 했다."

최 국장은 오사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국제기독교대학으로 진학했다. 최 국장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는 '굉장히 좋은 분위기'였다. 대학 1학년 때 한국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민족이 무엇인지, 재일한국인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가장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 가운데 하나인 히타치 제작소 재판이다. 박종석이라는 재일한국인이 일본인인 척 하면서 시험을 봐서 합격했는데 나중에 서류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합격이 취소됐다."

박종석씨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최 국장은 신문기사를 통해 그 사건을 알게 됐다. 1970년대의 일본에서 재일한국인들은 국가기관이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없었다. 법으로 막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에 재일한국인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 국장은 박종석 사건이 자신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최 국장은 박종석씨를 만나 투쟁을 지원하게 된다. 박종석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었던 것. 이 사건은 당시 한국에도 알려져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으며, 일본 교과서에도 실리게 된다. 박종석씨는 4년여 동안 재판을 한 끝에 승소, 히타치 제작소에 입사해 정년퇴직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재직했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했던 재일한국인들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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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석 사건' 이후에 히타치 등 대기업에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입사하게 되었나.
"많은 건 아닌데... 당시 재일한국인들은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했다. 취직이 안 된다는 게 당연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우리는 상식에 대한 투쟁을 한 것이었다. 히타치에 다른 재일한국인들이 입사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재일한국인을 국적을 이유로 취업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 난 것이니까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나 덧붙이지만 박종석 소송을 지원한 이들은 재일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오보 야스마사 '겐카이 원발 플로서말 재판회' 사무국장은 일본인이지만 당시 박종석을 지지하며 지원활동을 벌였다. 일본인들 역시 재일한국인 차별 문제를 보고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도 박종석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많은 관심을 끌었다는 곳이 최 국장의 설명이다.

최 국장은 이후 가와사키 지역에서 '한국인 차별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는 활동'을 벌였다. 기독교인인 그는 교회를 중심으로 유치원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재일한국인들이 받는 다양한 차별을 시정해나갔다. 취직뿐만 아니라 은행대출을 받을 때도 차별을 받았던 재일한국인들. 그렇다고 재일한국인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리하기로 한다.

- 탈핵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3·11 이후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결국 민족이나 국가와 상관없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를 바꾸자, 해서 '발신'하게 되었다."

재일한국인으로 탈핵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 국장은 "탈핵문제를 이야기하면 일본인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며 "탈핵문제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와 내 자식들 그리고 후손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민족과 국적에 상관없이 탈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최 국장의 주장이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이번 탈핵원전투어에 참여한 다수의 일본인들은 최 국장의 표현대로 '민족과 국가를 넘어' 함께 탈핵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와 함께 탈핵운동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는 탈핵문제에 관심이 없었는지?
"있었다. 일본 원전에 문제가 있지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작은 원전사고는 많이 있었지만 굳이 참여해서 운동은 하지 않았다."

-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그 때 (원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공부를 해서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원칙을 세워놓고 탈핵운동을 시작했고, '원전체제를 따지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CNFE)'를 만들었다."

- 언제였나.
"2011년 5월인가 6월 정도로 기억한다. 일본 크리스천을 중심으로 사회의식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처음에는 10명~20명 정도였는데 몇 개월 사이에 100명이 넘어섰다."

이렇게 탈핵과 관련된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최 국장은 몽골을 방문하고 한국과 대만을 방문하면서 탈핵운동을 하는 이들과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탈핵운동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최 국장의 설명이다. 최 국장의 주장대로 탈핵운동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공감대를 넓혀 갔고, NNAA-J를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다.

- NNAA-J의 회원은 몇 명인가?
"중심이 될 만한 사람이 20명 가까이 된다. NNAA가 중심이 돼서 원전 메이커 소송을 시작하자, 그렇게 되었고 그걸 우리가 준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히타치, 도시바, GE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가 원전문제를 따지게 되면서 알게 됐고, 원전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원전 만든 회사엔 책임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

일본에서 이번 탈핵원전투어를 준비하고 진행한 단체는 NNAA-J다. 탈핵원전투어 일정을 준비하고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하고 회계를 담당했던 오쿠보 테츠오씨와 야기누마 유타카씨도 NNAA 회원이다. 이들의 꼼꼼함에는 한국 참가자들이 죄다 감탄할 정도였다.

NNAA는 와타나베 노부오 목사를 회장으로 위촉했다. 최 국장은 처음 와타나베 목사를 소개받았을 때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나이가 90이나 되는 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거절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와타나베 목사는 내 얘기를 듣고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인생을 다 바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분은 나이가 90세인데도 매일 신문 3개를 보고, 이메일을 하고 페이스북을 하시는 분이다. 한국과 대만에 가서 강연도 하시는 분으로, 일본이 전쟁 책임을 충분하게 지지 않았다면 교단에서 나와 새로운 교단을 만든 사람이다."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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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국장은 "거절하러 갔다가 오히려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와타나베 목사를 회장을 모시고 소송회의를 만들었다는 것이 최 국장의 설명이다. 와타나베 노부오 목사는 일본의 저명한 칼빈 학자로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거론하는 등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원전은 만든 기업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고 있는 사업자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원전을 만든 히타치, 도시바, GE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NNAA의 생각이고, NNAA는 그 문제를 따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국장은 이 소송을 '돈키호테'라고 표현했다. 이 소송을 맡게 된 변호사 역시 돈키호테 기질이 다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대까지는 로큰롤 가수를 했던 이가 로큰롤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변호사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 소송에 참여한 변호사는 로큰롤 가수 출신 변호사를 포함해 19명.

- 지난 6월에도 한국에서 원전투어를 했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
"한국과 일본에서 탈핵과 관련해 서로 방문해서 강연을 하는 일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반핵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원전 지역 주민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 주민들과 교류회를 하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없었다. 반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니 나오는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이었다.

(반핵운동을 하는) 유명한 사람이 한국에 가도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강연을 하지 원전이 있는 지방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사람들은 지역 사람들이다. 그런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역시 (원전지역) 주민끼리, 활동가끼리 모이니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서로 알게 됐다. 삼척에서는 무엇을 했고, 영광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 이번 탈핵원전투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탈핵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 번 왔다갔다 했지만 이런 식으로 주민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우리도 (반핵)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해 몰랐던 얘기가 많이 있는데 이렇게 하니까 알게 된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 연대를 하게 된다. 연대 역시 인간관계가 있어야 한다. 국제연대운동의 기초가 될 만한 것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탈핵원전투어가 끝난 다음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10월 말에 한국에서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린다. 170여 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 사람들에게 원전 메이커 소송문제와 원폭 피해자 문제들을 알리고, 탈핵 국제연대운동을 같이 하자는 호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원전 메이커)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준비를 할 예정이다."

- 일본은 현재 원전가동을 완전히 중지했지만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원전은 재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지난 선거에서 자민당이 이겼다. 자민당은 선거에서 이긴 것을 국민들이 원전 재가동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원전은 재가동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이와이시마와 오오마에 원전 건설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원전 건설을 못하게 저지할 예정이다."


태그:#최승구, #탈핵원전투어, #NNAA, #탈핵 아시아행동,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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