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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타 원전
 이카타 원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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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탈핵 아시아평화 일본서부지역 원전투어(이하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이 찾아간 곳은 시코쿠 에히메현의 이카타 원전지역. 전날 밤, 규슈의 고쿠라에서 배를 타고 시코쿠 마츠야마에 도착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석수사에 들렀다가 곧장 이카타로 향했다.

이카타 원전은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었다. 원통형 기둥 모양의 원전은 이카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1호기이고, 돔형 지붕은 뒤이어 건설된 2호기와 3호기였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이카타 원전을 해변도로에서 내려다보았다.

이카타 원전을 내려다보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진 것은 이카타 원전에서 5~6km 떨어진 곳에 1000km나 이어지는 활단층이 있다는 곤도 마코토씨의 설명 때문이었다. 곤도씨는 이카타에서 원전 반대운동을 40여 년 동안 해왔다.

일본에서 1년에 1만 건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본열도 아래로 활단층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에 일어난 고베 지진 역시 활단층이 갑작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 활단층이 이카타 원전에서 고작 5~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다 속에 존재한다는 건 충격적이다.

해안도로에서 이카타 원전을 바라보고 있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
 해안도로에서 이카타 원전을 바라보고 있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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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씨는 "1500년대에 이 지역에서 엄청나게 큰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다"며 "만일 활단층이 움직인다면 마그네튜드 8~9의 지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마그네튜드 9라면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지진의 강도와 맞먹는다. 그런 지진이 일어날 경우 10~15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시마 지역을 강타한 쓰나미의 위력과 거의 비슷한 위력일 것이다.

"시코쿠 전력에서는 지진이 일어날 경우 몰려올 쓰나미를 4미터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며, 10미터가 넘는 쓰나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곤도씨는 "1500년~2000년을 주기로 활단층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카타 지역에 언제 지진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카타 원전은 산을 깎아서 원전을 세웠고, 바다를 메워서 터빈 건물을 세웠다. 기반이 약해서 큰 지진이 오는 경우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원자로 건물이 해수면에서 10미터밖에 되지 않아 쓰나미가 온다면 원전은 금방 덮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와 원전이지만 엄청난 위험이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이카타 원전이었다. 원전에서 뚝 떨어진 바다에 배 한 척이 떠 있다가 갑자기 전 속력으로 원전 방향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해안도로에서 원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배는 일본 해상보안부 소속으로 테러방지용이라는 게 곤도씨의 설명이다. 시코쿠 전력의 이카타 원전 역시 정부에 재가동 신청을 한 상태다. 지난 9월 13일, 곤도씨를 포함해 이카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재가동 반대를 요구하면서 해상 시위를 벌였다.

'테러방지' 선박이 원전투어 참가자들을 향해...

곤토 마코토씨가 이카타 원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곤토 마코토씨가 이카타 원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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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가동조사단이 이카타 원전에 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주민들은 항의표시로 검은 색으로 칠한 배 2척을 이카타 원전 주변에 띄운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시코쿠 전력은 다음 날, 이카타 원전 주변 바다에서 선박을 띄워 테러방지훈련을 했다. 그 내용은 지역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그 테러방지용 배가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을 발견하고 바다를 가르면서 전속력으로 이카타 원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카타 원전 가까이에서 멈춘 배는 한동안 그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이카타 원전 주변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이카타 원전이 내려다보이는 해변도로 부근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원전을 반대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주변에는 '원전절대반대'라고 붉은 글씨로 쓴 나무판들이 연이어서 붙어 있었다.

히로노씨의 비석
 히로노씨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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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은 9년 전 사망할 때까지 이카타 원전 반대운동을 벌인 히로노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6년 전, 남편과 함께 원전 반대운동을 해온 히노노씨 부인은 "비록 몸은 죽더라도 반핵운동의 정신은 이어간다"는 남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비석이 세워진 곳은 사유지기 때문에 일본 정부나 시코쿠 전력에서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 지역주민의 설명이다. 그 덕분에 비석 주변에 나붙은 원전반대 표지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카타 원전 지역을 둘러본 '탈핵 원전투어' 참가자들은 이카타 원전 홍보관 2층에서 2시간여 동안 지역주민들과 교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과 지역주민들은 탈핵을 위한 연대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지속적으로 탈핵운동을 펼쳐나가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카타 지역에서도 원전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지역주민 대부분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이카타 원전 1호기는 1977년에 가동을 시작했지만, 이들 주민들이 원전반대운동을 시작한 것은 부지로 선정된 직후인 1969년이다. 원전반대운동의 역사는 40년을 훌쩍 넘어선다. 당시 20대였던 곤도씨는 이제 60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다. 원전 역시 점점 노후화되어가고 있어 사고의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국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반핵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원전이 들어간 지역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원전안전관리위원회는 원전 찬성자들로만 구성... 주민감시체제 못 돼 

'탈핵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이 이카타 주민들과 교류회를 열고 있다.
 '탈핵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이 이카타 주민들과 교류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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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타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3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민들은 귤을 재배하거나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곤도씨의 설명이다. 원전에서 귤 재배지가 가깝다면 크고 작은 원전사고로 인해 귤에서 방사능 등이 검출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곤도씨는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귤을 재배해서 판매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고 있다"며 "방사능이 귤 재배에 영향을 끼치는지 여부에 관한 연구도 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원전사고가 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원전 부근에 사는 5천여 명의 주민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카타 원전으로 들어오는 길은 외줄기로 원전사고가 나면 이 길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경우, 바다를 통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가야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한 달 전에 대피훈련을 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헬기가 뜨지 못했고, 배 역시 뜨지 못했다. 사고가 난다면 이카타 원전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곤도씨는 "이카타 원전이 가장 먼저 재가동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시코쿠 전력은 이카타 원전 1, 2호기의 재가동 신청을 한 상태다.

지난 1988년에는 이카타 원전에서 9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군수송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수송기에 타고 있던 미군 7명이 사망했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원전 위로 수송기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1969년 10월, 원전유치를 반대하면서 이카타원전설치반대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한 이카타주민들은 40년이 넘도록 원전반대운동을 벌여왔지만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다음에는 재가동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 또한 막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예상된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이 이카타 주민들과 교류회가 끝난 뒤에 기념촬영을 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탈핵운동을 하자는 다짐하고 있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이 이카타 주민들과 교류회가 끝난 뒤에 기념촬영을 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탈핵운동을 하자는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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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원전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갈등의 골 또한 깊다는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카타 원전에서 일하는 시코쿠 전력회사 관계자들이나 원전 관련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마을에서 원전을 찬성하는 주민들의 가게만 이용을 하거나 교류를 하면서 원전반대운동을 하는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따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에도 원전과 관련해 민간기구인 '원전안전관리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참여시키지 않고 찬성하는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제대로 된 주민감시체제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지역 주민의 증언이다. 반대하는 주민들에게는 원전에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곤도 마코토씨는 40여 년 동안 원전반대운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원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외부 견학자들에게는 공개를 하면서도 반대주민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40년이 넘도록 원전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의 의지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죽어서까지도 원전반대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교류회를 마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과 이카타 지역주민들은 한목소리로 힘차게 반핵, 탈핵을 외쳤다.


태그:#탈핵, #탈핵원전투어, #이카타 원전,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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