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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현 원전
 후쿠이현 원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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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후쿠이현이다. 후쿠이현에는 일본의 원전 50기 가운데 13기가 들어서 있다. 일본원자력발전의 쓰루가 원전(2기)과 간사이 전력의 미하마 원전(3기)·오이 원전(4기)·다카하마 원전(4기)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고속증식로 '몬주'도 있다. 몬주는 가동이 중지된 상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몬주 홍보관은 텅 비어 있었다.

지난 3일, '탈핵 아시아평화 일본서부지역 원전투어(아래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이와이시마를 떠나 후쿠이현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장 후쿠이로 간 것은 아니었다. 히로시마에 들렀다.

히로시마는 1945년 8월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이동시간이 길어 빡빡한 일정이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히로시마에 들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히로시마 사람들은 원자폭탄으로 끔찍한 피해를 입었지만 '핵의 평화로운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한다고 한다. 핵이 폭탄이 아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핵의 평화로운 이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핵의 평화로운 이용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비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은 위력이나 방사능 영향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돔 앞에서 '탈핵 원전투어' 한일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히로시마 돔 앞에서 '탈핵 원전투어' 한일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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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는 원폭투하 6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때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변해 번화한 도시가 됐다. 그러나 후쿠시마는 다르다. 원전사고로 인해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은 사람들이 떠났고, 유령도시가 되었다. 정든 고향을 떠난 이들은 살아생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죽음의 땅이 된 것이다.

이와이시마에서 히로시마를 거쳐 후쿠이현의 오바마시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진 다음이었다. 후쿠이현 원전지역 주민 교류회가 열리는 장소는 묘쓰지(明通寺). 지금까지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의 숙소는 대부분 교회였다. 일정 가운데 하루는 배 안에서 잤다.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이 교회를 교류회 장소와 숙소로 잡은 것은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들 교회가 탈핵과 반핵운동에 앞장 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절이다. 묘쓰지(明通寺)의 나카지마 데츠엔 주지스님은 탈핵운동에 앞장  서고 있다. 나카지마 스님은 2005년 핵 폐기장 반대운동을 벌였던 부안과 영광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묘쓰지는 806년에 창건된 유명한 절로 본당과 삼중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중요문화재도 4점이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국보와 중요문화재는 보지 못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절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어둠을 헤치며 절을 찾아 들어갔다. 해가 진 탓인지 기온이 뚝 떨어져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절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후쿠이현의 원전지역에서 온 주민들과 교류회를 시작했다. 후쿠이와 오바마, 쓰루가, 시가켄 등 후쿠이현 각지에서 온 주민 20여 명이 교류회에 참여했다.

묘쓰지 나카지마 테츠엔 주지스님
 묘쓰지 나카지마 테츠엔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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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스님은 "2005년에 핵 폐기장 반대운동을 하는 부안과 영광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핵 폐기장 반대 시위를 하는 현장에 있었다"고 밝혔다.

"오바마와 경주는 자매결연 도시다. 경주는 아주 역사가 깊은 도시인데, 6기의 원전과 핵폐기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오바마시에는 총 15기의 원전이 건설되었거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시도 오랫동안 반핵 운동을 한 주민 역사가 있는 도시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어떤 행동을 해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교류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교부금과 노동자 고용, 마약효과에 빠진 후쿠이 지역

교류회에 앞서 40여 년 동안 핵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반핵운동을 해온 야마모토 후지오 후쿠이대학 명예교수가 <세계에서 보는 후쿠이 원전문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한국의 반핵운동가들과 깊은 교류를 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한·일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2012년과 2013년 후쿠이의 원전반대운동을 기록한 책자 2권을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에게 선물했다. 이 책자에는 후쿠이 지역주민들이 벌인 반핵운동에 대한 사진과 글 등이 실려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뒤에 일본인들이 가만히 손 놓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반핵활동을 벌였다는 것을 이 책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야마모토 교수는 "후쿠이 원전이 들어선 지역에 활단층이 많다"며 "(후쿠이현)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원전입지 교부금과 노동자 고용에 의존하고 있어 마약 효과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원전 재해가 발생할 경우 방재와 피난 대책이 지극히 불완전하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야마모토 후지오 후쿠이대학 명예교수
 야마모토 후지오 후쿠이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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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교수는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에게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와 있다"며 웃으며 강조하기도 했다.

후쿠이현에 있는 원전 13기가 생산해내는 전기는 후쿠이현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의 15배가 넘는다. 후쿠이현에는 화력발전소가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후쿠이에서 필요한 전기공급은 충분하다는 것이 야마모토 교수의 설명이다.

부산과 겐카이 원전의 거리는 250km, 고리 원전과 후쿠이는 약 7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야마모토 교수는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한국이나 일본, 어느 나라에서건 원전사고가 터진다면 그 피해를 두 나라가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교훈이 되고 있지만, 한국이나 동아시아 제국의 탈 원자력발전소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원전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다. 야마모토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원전 없는 나라에 위험한 기술을 수출해 방사능 오염을 확산하는 가해국이 된다"며 "이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에게 원전을 수출한 뒤 원전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를 물었을 때 아베 총리는 수입국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원전재해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국과 일본의 연대를 강화하고, 국제연대를 통해서 모든 원전을 없애는 풀뿌리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양재성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연대 대표의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해야 반드시 원전을 없앨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시민, 과학자, 종교인 등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특히 과학자들의 교류가 필요하다. 한국에는 핵 발전을 반대하는 과학자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 원자력 기술전문가, 여러 가지 전문 분야의 전문가, 금융 경제 전문가 등이 핵의 기치 아래 세계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진실을 좇으면서 믿음을 갖고 변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교류도 필요하다."

'탈핵 원전투어' 교류회에 후쿠이현 원전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
 '탈핵 원전투어' 교류회에 후쿠이현 원전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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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라고 이름을 밝힌 한 주민은 "후쿠시마 사고로 핵발전소 안전신화가 깨졌다"며 "(일본은) 원전이 전부 멈추고도 전기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카야마는 "오바마 지역과 쓰루가 지역에는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가 일어나면 통행을 못하는 상태가 되는 폐쇄적인 지역"이라며 "원전사고가 난다면 피난을 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류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후쿠이 원전지역은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빈부의 차가 엄청나다"며 "후쿠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원전이 재가동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속증식로 '몬주'는 언제 가동할까

현재 일본의 원전 50기는 전부 가동을 멈춘 상태이나 12기가 재가동 신청을 했다. 그 가운데 간사이 전력이 운영하는 오이 원전 3, 4호기와 다카하마 원전 3, 4호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날 교류회에 참석한 후쿠이현 지역의 주민들은 이들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교류회를 마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숙소인 에이겐지(永源寺)로 이동했다. 에이겐지는 일행에게 대웅전을 숙소로 내주었다. 에이겐지는 800년 정도 된 유서 깊은 절이라고 한다. 다양한 종교시설(?)를 숙소로 이용하는 아주 특별한 여행이 바로 이번 '탈핵 원전투어'였던 것 같다.

다음날인 10월 4일,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먼발치에서 후쿠이 지역의 원전을 돌아보았다. 가동을 멈춘 원전들은 일본의 다른 지역의 원전들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저 바다 아래로 활단층이 지나간다는데 원전은 언제까지 저렇게 견고한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사고가 저 원전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는 실체를 알면 알수록 깊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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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원전투어' 한일참가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원전은 고속증식로 '몬주'였다. 후쿠이현 쓰루가시에 있는 몬주는 현재 가동을 멈춘 상태지만 언제 다시 가동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타지 않은 우라늄을 플루토늄으로 바꿔서 연료로 사용한다는 몬주는 그 때문에 더 사고의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몬주는 1994년에 발전을 시작했지만 1995년에 시험을 하려는 순간에 화재가 나는 사고가 발생해 14년 5개월 동안 정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8일, 일본정부는 몬주를 시험하기 위해 다시 가동시킨다. 하지만 사고는 다시 일어나고, 몬주는 이후 지금까지 가동이 중지됐다. 언제 가동시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고 한다. 몬주에 일본정부는 1조 엔이 넘는 돈을 '처넣었다'고 한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참가자들은 일행을 태운 버스가 몬주 근처를 지나가자 일제히 몬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그:#탈핵 원전투어, #후쿠이, #핵발전소, #몬주,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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