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에게서 밥을 얻어먹던 한때 다섯 마리나 되었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한 마리로 줄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아침은 좀 쓸쓸하고 허전하다. 내가 이른 아침에 아홉 개의 가로등과 방범등을 끄기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마다 반갑고 기쁜 몸짓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장난하며 따라다니던 고양이들의 그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 한 마리 남은 수놈 잿빛 얼룩고양이만이 성급하게 밥을 조르며 따라다닐 뿐이다.

지난해 봄 두 눈의 빛깔이 서로 다른 흰색 떠돌이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연립주택 현관 앞에 나타나면서부터 나와 고양이들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밥을 주기 시작했지만, 그 고양이가 낳은 세 마리의 새끼들 중에서 검은 털과 흰털이 섞인 암코양이가 내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후부터 그 고양이 가족을 거두어주는 일은 내 생활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딴 배 새끼인 수놈 잿빛 얼룩고양이 한 마리까지 더부살이를 하게 된 탓에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을 거두어주는 일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족 간의 갈등과 이웃들의 눈총을 애써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난해 늦가을 거의 자란 수놈 고양이를 10리 밖 남산리 사돈댁에 어설프게 분양을 한다고 했다가 그 동네의 도둑고양이로 만들어버린 일 때문에 또 한번 상심을 해야 했다. 그 후 장애 암코양이가 자연 치유로 장애를 극복하여 자유롭게 움직이고 오줌도 새지 않게 된 상태를 보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나머지 네 마리 고양이들을 각별히 잘 보살폈다.

그러던 지난 4월 9일, 자연 치유로 장애를 극복한 암코양이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더니 영영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를 가장 잘 따랐고 가장 정이 든 녀석이었다. 내가 몸을 만져주면 유일하게 목구멍에서 엔진 소리를 낸 놈이었다. 그 녀석이 사라진 다음부터 겪게 된 허전한 마음,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정녕 '상심'과 '그리움'의 한가지 유형일 터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사라진 녀석과 자매간인 검은 털과 노란 털과 흰털이 섞인 삼색 암코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비밀 장소에서 모두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두 마리를 잃고 여기저기로 장소를 옮기며 네 마리를 키웠다. 그 육아에 어미 못지 않게 할머니고양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정성을 들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재미있는 상념도 많이 갖게 되었다.

비를 피해 2층 연립주택 옥상에서 내려와 아래층 현관 구석에서 며칠 생활하던 그 고양이 가족 삼대가 또 한번 자리를 옮긴 곳은 바로 이웃집 베란다 아래 연목 더미 위였다. 나는 수시로 그 베란다 아래의 연목 더미 위를 들여다보는 것이 낙이었다.

어린 새끼들을 비롯하여 그 고양이 가족이 지금은 어찌하고 있을지 노상 궁금한 마음이곤 했다. 할미고양이도 함께 있는 가운데서 어미와 새끼들이 젖꼭지를 물리고 문 채 모두 잠들어 있는 모습, 그 속에 함빡 깃들어 있는 무한한 평화와 평온을 나는 참으로 아끼고 싶었다.

그런데 새끼들이 그 베란다 밑에서 기어 나와 화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던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새끼 네 마리 중에서 두 마리가 우리 현관 문 앞까지 진출하여 어른고양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모두 암컷으로 짐작하고 있는 놈들이었다.

한 마리는 할미를 많이 닮아 온몸이 흰털이고 꼬리만 검은 털인데, 얼굴 모양도 하는 짓도 마치 강아지 같았다. 사람을 보면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오는 놈이었다. 내가 손가락 끝에 우유나 생선 국물을 묻혀 내밀면 맛있게 핥아먹고 작은 이빨로 깨물기도 하는 녀석이었다.

또 한 놈은 제 어미처럼 세 가지 색깔의 털을 가진 놈인데, 제 어미 어렸을 때처럼 가장 겁이 맞고 방정맞은 녀석이었다. 그런 놈이 무슨 맘으로 은신처에서 기어 나와 제법 먼 거리까지 진출할 수 있었는지, 조금은 신기하다 싶기도 했다.

할미와 어미, 그리고 두 마리의 새끼들이 한창 밥그릇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우리 집 현관 앞에서 고양이들을 발견하고 관심을 표했다. 그는 새끼고양이들이 예쁘고 귀엽다며 탄성을 발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한 마리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새끼고양이를 구박하지 않고 애정으로 잘 기를 자신이 있느냐고 내가 물으니 그는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흰털 새끼를 먼저 손에 쥐었는데, 그 놈은 내가 데리고 있고 싶은 녀석이었다. 내가 저 세 가지 털을 가진 놈이 더 예쁘지 않으냐고 하니, 그는 선뜩 동의하며 바꿔치기를 했다.

그 청년은 삼색 새끼고양이를 손에 쥐고 일단 2층의 201호 집으로 올라갔다가 문이 잠겨 있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그 삼색 새끼 고양이는 그의 손에서 계속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청년과 함께 그 울음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새끼 한 마리가 낯선 사람의 손아귀 안에서 계속 울음소리를 내고, 그 울음소리가 멀리로 사라지는데도 어미와 할미 고양이는 거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밥만 먹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어제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오후 한때 어미와 할미는 우리 현관 앞 밥그릇 주위에 있었고, 새끼들은 화단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어미와 딴 배인 수놈 잿빛 얼룩고양이가 나타나서 새끼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한 놈을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그 새끼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어미가 캭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렸고, 수놈 고양이는 잽싸게 몸을 피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민감하게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을 발휘했던 어미가 낯선 사람이 제 새끼를 손아귀에 쥐고 2층으로 올랐다가 멀리로 데려가는데도 그토록 무감각 무신경하다니, 생각할수록 기이한 일이었다.

그것은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산리 사돈댁에 새끼 한 마리를 갖다 드리기로 하고, 수놈일 것으로 짐작하는 두 마리 중에서 좀더 큰놈을 옆집 베란다 밑에서 잡아 꺼내어 종이 가방 안에 넣었다. 그 녀석이 종이 가방 안에서 계속 울음소리를 내는데도, 그리고 그 가방을 차에 싣는데도 화단 풀밭에 편히 누운 어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새끼를 남산리로 싣고 가면서 나는 적이 미안한 마음이었다. 다른 두 형제에 비해 일찍 어미 곁을 떠나게 된 녀석이 가엾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 녀석을 사돈댁에 넘겨 드리면서 애정으로 잘 키워 주실 것을 부탁했다. 사돈어른은 작년 가을에 가져온 고양이와는 달리 이번에는 어린 새끼 때부터 제대로 기르게 되었으니 완전히 집고양이로 만들 수 있을 거라며 내게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이렇게 고양이 새끼 두 마리는 자연스럽게 분양이 되었다. 나는 나머지 두 마리 중에서 검은 고양이는 분양을 모색해 보고 흰털 고양이는 내가 키울 결심을 다시 했다. 남은 두 마리 새끼들은 정말 팔자가 늘어진 상황이었다. 어미젖을 빠는 일이 더욱 수월해졌고 더 많은 젖을 먹을 수 있으니 녀석들은 마냥 좋을 테지만, 그것을 보는 내 쪽에서는 좀 얄미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여전히 어미고양이는 두 마리의 새끼를 잃은 것에 대해서 별다른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전혀 상심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화단의 풀밭이나 땅속 김칫독을 덮은 나무판대기 위해 누워 나머지 두 마리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은 변함 없이 평화로운 모습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며칠 동안 낮에는 주로 화단 김칫독 나무판대기 위에서 생활하던 어미와 새끼고양이들이 어느 날 아침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사라진 것을 느낀 순간 나는 이상한 궁금증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연립주택 3개 동의 옥상 구석구석과 앞뒤 베란다 밑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길 건너 교회당과 초원아파트 주변까지 일삼아 찾아보았으나 그 녀석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밥을 주는데, 어미가 비를 맞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밥을 먹었다. 나는 그 어미가 매일 아침 내게 와서 계속 밥을 얻어먹는 한 두 마리의 새끼도 언젠가는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했다. 녀석이 왜 새끼들을 비밀 장소에다 옮겨놓았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빗나갔다. 어미 고양이는 다음날부터 일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밥을 줄 때마다 이웃들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뚜껑으로 냄비를 쳐서 소리를 크게 내며 녀석을 불러도 녀석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을 보지 못하는 날이 며칠 계속되면서 나는 녀석이 혹 변을 당한 것은 아닌지, 변을 당하지 않고 살아 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연명하며 새끼들을 기르는지, 불안과 궁금증이 가슴에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딸과 손자들과 이별을 한 상황인 할미 고양이는 그만큼 내 눈에 쓸쓸한 모습으로 보였다. 딸과 손자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여러 번 물었지만 그가 내게 대답을 해 줄 리 만무한 일이었다.

나는 밥그릇 하나를 없애고 하나만 남겼다. 밥그릇 하나에다가 할미고양이와 수놈 얼룩고양이 두 마리에게만 밥을 주는 것은 분명히 간편해진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 어미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에게서 아주 떠나가 버린 이유가 그저 한없이 궁금하기만 했다.

수놈 얼룩고양이가 할미고양이에게 수컷 시늉 같은 몸짓을 한번 했다가 호되게 뺨을 얻어맞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웃은 것이 내가 최근에 고양이들을 보며 웃었던 유일한 일이었다.

6월 25일은 나와 최초로 인연을 맞았던 할미고양이가 영영 사라진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동네 가로등을 끄러 집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이상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홉 개의 등을 다 끄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고양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밥 냄비를 들고 나가서 냄비 뚜껑으로 소리를 내며 불러도 녀석들은 달려오지 않았다. 이상한 적막만이 우리 집 현관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관련
기사
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