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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풍경

나는 요즘도 변함 없이 이른 아침 날이 밝을 무렵이면 집 밖으로 나간다. 동네 주변 아홉 개의 가로등 방범등을 끄기 위해서다. 요즘엔 05시 20분쯤 나가면 적당하다.

문을 열고 나가면 현관에 모여 있던 고양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고양이들이 앞발을 쭉 내밀고 몸을 뒤로 물리는 동작을 그들의 인사법이라고 이해한다.

그 동작의 각도가 정확히 내 쪽을 향하지는 않더라도 나를 본 순간 그들이 그런 몸짓을 했다면 그건 필시 인사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고양이도 사람에게 인사를 할 줄 아는 동물이다.

그들은 내가 그 시간에 집 밖으로 나온 이유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밥을 주려고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아는 나머지 현관문 앞 한쪽의 밥그릇에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갈 방향을 미리 알고 서로 다투듯 몸을 움직인다. 내 뒤를 강아지처럼 졸랑졸랑 따라오기도 하고, 잽싸게 저만치 앞질러 갔다가 내가 다가가면 땅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화단의 나무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나무에 두 앞발을 대고 발톱으로 긁기도 하고, 낮은 시멘트 구조물 같은 데에 몸을 감추고 납작 엎드려 있다가 다가오는 다른 놈에게 달려들어 서로 붙잡고 뒹굴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이른 아침의 그런 동작들이 기쁨의 표현임을 잘 느끼고 있다. 그들은 내가 있어 또 하루 맛있는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으로 그런 동작들을 하는 것이다. 잔치에 온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한바탕 유희를 하는 것과도 상통하는 풍경이다.

그들은 우리 집 현관 앞에 내 승합차가 있으면 내가 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차와 함께 내가 어디론가 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에 집 앞에 차가 없으면 내가 집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언젠가 한 번 먼길 출타를 하면서 어머니께 고양이 밥을 부탁했다. 어머니가 아침에 밥을 주려고 냄비를 들고 현관으로 나왔는데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더란다. 밥그릇을 땅에 부딪치며 불러도 한 마리도 오지 않더란다. 놈들은 집 앞에 차가 없는 것을 보고 아침 얻어먹는 것을 지레 포기하고 아예 멀찍이 가서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놈도 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낮에도 집 앞에 차가 없으면 집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다가 차가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집 앞을 얼쩡거린다.

하여튼 녀석들이 아침마다 보여 주는 풍경은 참 재미있다. 녀석들은 어김없이 현관에서 나를 맞이하고, 비 오는 날이 아니라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를 따라다닌다. 그 동작들이 참으로 경쾌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맛있는 아침밥에 대한 기대와 기쁨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 식사 돌보기

나는 고양이들에게 아침과 저녁 두 끼만 준다. 아침 한 끼만 주는 날도 있다. 고양이들에게 줄 밥은 조달이 비교적 잘 되는 편이다. 아내 덕분이다. 아내가 2천 명이 넘는 큰 학교에 근무하는 덕이기도 하고, 학교 급식 덕이기도 하다.

퇴근을 해 온 아내의 손에 밥과 조기 갈치 꽁치 따위 생선이 담긴 비닐 봉지가 들려 있는 때가 많다. 나도 어디 가서 외식을 하게 되면 밥과 생선 따위 남은 음식을 싸오는 일에 여전히 체면 불고다.

우리 집은 대개 아침 6시 30분쯤이면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하는데, 나는 그전에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아침 준비를 할 때 고양이 밥 냄비를 가스 레인지에 올려놓으면 어머니나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고양이들에게 주는 생선은 대개가 소금에 절인 것들이거나 양념을 한 것들이다. 일단 한번 끓여서 소금기나 양념을 우려낸 물을 두어 번 버리고 새 물을 부어 고루 비벼서 준다. 그러니 매일 아침마다 가스도 어지간히 소비하는 셈이다.

전에는 밥을 가급적 넉넉하게 주었다. 고양이는 무리하게 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배가 차면 음식을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먹는다. 그런데 요즘엔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다 먹을 만큼씩만 준다.

그리고 전에는 밥을 주고 나면 맛있게 먹는 모습들을 잠시 보다가 곧 들어가서 컴퓨터 앞에 앉곤 했는데, 요즘엔 녀석들이 거의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준다. 다 까닭이 있는 일이다.

언젠가 한 번은 아내를 출근시켜 주려고 밖에 나와서 보니 두 개의 고양이 밥그릇에 밥풀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남길 정도로 넉넉하게 주었는데, 바닥을 싹싹 핥은 듯이 너무도 깨끗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은 밥을 주고 이내 집에 들어와서 작업을 하는데, 현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급히 나가보니 개들이 와서 밥을 먹고 있고, 고양이들은 현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데, 어미 고양이만 개들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발을 구르며 호통을 쳐서 개들을 쫓았다. 그러자 고양이들이 다시 현관 앞으로 나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개들이 다시 올지 몰라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은 사람이 전혀 듣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도 잘 듣는 것 같다. 밥을 먹다가도 자주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눈을 향하곤 하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엔 개들이 우리 집 주변을 많이 돌아다닌다. 개들은 때를 잘 아는 것 같다. 아침참에 우리 집 현관으로 오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고양이 밥을 빼앗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놈들도 있는 것 같다.

개들로부터 고양이들의 식사를 지켜주려니 바쁜 아침 시간을 어지간히 축내는 셈이어서, 요즘엔 고양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차를 만지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개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개나 고양이나 사람 곁에서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는 똑같은 처지인데, 먹을 것을 찾아온 개들에게 너무 모질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한다.


그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장애 암코양이는 내가 제일 귀여워한 녀석이었다. 그 녀석과의 특별한 인연, 여러 가지 사연, 그 녀석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겠다. <내 차로 고양이를 치고> <장애고양이와 나의 이상한 업보> <자연치유로 장애를 극복한 고양이> 등의 글에 자세히 기술이 된 데다가, 많은 독자들이 그 이야기들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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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나는 그 녀석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다친 다리가 신기할 정도로 다 나아서 날렵한 동작으로 아무 문제없이 나무를 오르는 모습이며, 오줌이 새어서 늘 지저분하게 젖어 있던 사타구니도 어느덧 깨끗하게 된 상태를 보는 것은 즐겁다 못해 고맙기까지 할 정도였다.

아침에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며 나를 쫓아다니는 것도 녀석이 제일 열성적이었다. 아침에 밥을 주려고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내 손에 들린 냄비를 보며 제일 크게 소리를 지르는 놈도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가뭇없이 되고 말았다. 정확히 4월 9일부터 녀석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날은 내가 여행을 간 날이다. <태안문화원>의 '문화유적지 답사 견학' 행사에 참여하여 1박 2일 코스로 경북 의성과 경주를 다녀왔는데 출발을 하기 전에 나는 고양이 밥에 좀더 신경을 썼다. 다음날 아침에 줄 것까지 미리 챙겨서 어머니께 일러 드리고, 양을 좀 많게 해서 두 개의 밥그릇에 부어주는데, 그 녀석이 보이지를 않았다. 식사를 기피할 녀석도 아니고, 한 번도 지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이 뒤늦게 발정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발정 때문은 아닐 것만 같았다. 녀석과 자매간인 흰털 노란 털 검은 털이 섞인 삼색 고양이는 이미 임신을 한 상태였다. 새끼를 가졌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자매간인 삼색 고양이의 임신을 눈으로 확인한 날 나는 장애 고양이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쩌면 차에 치어서 생긴 장애로 말미암아 발정도 정상적으로 되지 않고 임신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모로는 그게 다행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몸의 장애로 말미암아 비정상적으로 뒤늦게 발정을 해서 녀석이 짝을 만나러 잠시 제 영역 밖으로 나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 기대 사항이었다.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생각임을 잘 알면서도 그런 기대를 머금고 나는 녀석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경주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대신 아내가 고양이 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밥을 줄 때 그 장애 고양이를 보았느냐고 아내에게 물으니, 고양이가 네 마리 아닌 세 마리였고, 그 장애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고 아내는 말했다.

전에 살았던 옴팡집에서 옛날에 고양이를 기를 때 발정이 나서 집을 나갔던 고양이가 사흘만에 돌아왔었던 일을 기억하면서 나는 한 이틀 더 기다려보면 판명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판명은 난 셈이다. 아직 확인을 못했고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오늘까지 20일이 경과하도록 돌아오지 않는 그 장애 고양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 거의 분명하다. 무슨 사고일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일 예쁘게 생긴 고양이였고, 나와 제일 정이 들었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없어졌으니, 나는 요즘엔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적마다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남은 세 마리, 저희들끼리만 정신 없이 밥을 먹는 놈들을 보노라면 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어미 고양이가 연립주택 현관을 오르내리며, 옥상에도 올라가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딸을 찾는 소리 같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지난해 가을 아들 고양이가 없어졌을 때 보였던 행동과 똑같다는 것도 나는 직감했다.

그 어미 고양이 역시 장애 고양이의 그 장애를 느꼈음인지 그 녀석을 가장 많이 핥아주고 각별히 신경을 썼음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새끼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미 고양이는 지난해 새끼를 낳은 후로 지금까지 다시 임신을 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 발정이 있었으니 곧 또 임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덩치 큰 수코양이 한 마리가 와서 지켜보는 앞에서 화단의 나뭇가지에 얼굴을 비비는 등 발정 표를 내는 것을 보았다. 지켜보던 숫놈이 일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덮치고 머리털을 물고 교미 자세를 취했지만, 암놈은 땅에 납작 엎드리고서는 엉덩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수컷은 암컷의 교태를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교미를 시도하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성공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왠지 암놈이 발정 표시와는 달리 교미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보면서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딸이 임신을 해서 미구에 새끼를 낳을 상황에서 자신도 다시 새끼 갖는 것을 저 어미 고양이가 부담스러워할지도 몰라. 그래서 임신을 하지 않으려고 발정 단계에서 절제를 하는 건지도 몰라….

물론 사람의 우스운 생각이지만, 그것은 내 절실한 기대 사항이기도 했다. 삼색 고양이가 새끼를 가진 것을 안 날부터 우리 연립주택에는 껄끄러운 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우리 앞집 은옥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번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나를 보더니 배가 더욱 불거진 삼색 고양이를 보며 쟤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들까지 데리고 올 텐데 그땐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추궁을 했다. 나는 그저 난감하기만 해서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삼색 고양이는 남산만한 배를 하고서도 제 어미와 함께 있을 때는 으레 어미의 가슴 밑으로 머리를 밀어 넣곤 했다. 그러면 어미는 매번 자신보다 몸피가 더 큰 딸의 몸을 열심히 핥아주곤 했다. 첫 임신을 한 딸의 어려움을 살펴주고 격려해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삼색 고양이는 엊그제(27일) 몸을 풀었다. 어제 아침에 몸이 홀쭉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다 새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다. 몇 마리나 낳았는지 궁금하지만, 그 궁금함 속에는 걱정도 껴들어 있다.

녀석은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가로등을 끄러 다니는 시간부터 밥을 달라고 조르는 몸짓을 했다. 어머니는 오늘 아침에 밖에 나와서 빨리 밥을 먹고 싶어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시더니 젖을 빨리는 산모가 돼서 저런다고 하시며 어서 밥을 주라고 했다. 어머니는 어제 점심때도 녀석이 와서 빈 밥그릇 주위를 뱅뱅 돌아서 밥을 주었노라고 했다.

그 동안 내게 타박도 여러 번 하신 어머니였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그만 주라고, 며칠 계속 밥을 주지 않으면 어디로든 뿔뿔이 가게 될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몸을 푼 고양이, 새끼들에게 젖을 빨려야 하는 산모의 모습을 보시자 마음이 달라지셨는지 빨리 밥을 주라고 내게 재촉까지 하신 것이었다.


고양이 삼대에 대한 흥미와 걱정

삼색 고양이가 새끼를 낳을 때 삼색 고양이의 어미가 조산을 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새끼들 돌보는 일도 둘이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는 지금, 어딘지 모를 그 은밀한 장소에서는 할머니 고양이와 엄마 고양이와 갓난 새끼들, 그 삼대가 함께 몸을 붙이고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갓난 새끼들을 핥아주는 할머니 고양이는 더불어 산모도 핥아주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삼색 고양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미로부터 계속 보살핌을 받았는데, 어미가 자신을 핥아준 것처럼 이제부터는 그도 자신의 새끼들을 핥아주며 살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우스운 동기에 의해 떠돌이 고양이들과 친화를 맺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어미와 새끼들의 사는 모습만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고양이 삼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와 어미와 손자,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흥미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이웃들의 눈총을 감내해야 할 일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몇 마리나 태어났는지 모를 그 고양이 새끼들이 어느 날 일제히 현관으로 몰려오면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을 갖게 될지….

그러나 호기심을 갖고 그 날을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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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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