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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올린 <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라는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내게 꽤나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분명 글의 제목과 연관이 있을 듯한 높은 '조회수'도 상당히 의외였지만, 많은 '독자의견'들은 내게 어떤 경이감마저 갖게 했다. 나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의 '독자의견'들을 접하면서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먼젓번의 그 글에서 예시된 우리 집 (연립주택) 현관에서 살게 된 고양이 가족의 그 후의 상황을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고양이에 관한 얘기를 한번 더 하기로 하겠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떠돌이 어미 고양이가 우리 집 현관을 새 거처로 삼고, 어느 은밀한 장소에서 낳은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꽤 자라서 역시 어미와 함께 우리 집 현관을 주 거처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 현관을 공유하고 있는 연립주택의 한쪽 1층과 2층의 4개 집은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생각하면 심각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안게 되고 말았다.

우선 고양이의 배설물에 의한 냄새가 가시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집의 난간 밑이나 화단에다가 배설을 하고 흙으로 덮지만 온전히 덮어지는 게 아니다. 화단의 수목들에는 거름이 되는 효과도 있겠지만, 집 난간 밑의 배설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사람이 수시로 치우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도 냄새가 나는 때가 많다. 날이 몹시 흐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퀴퀴한 냄새가 더 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냄새는 1층집들보다 2층집들에 더 심한 것 같다. 더러는 불평을 하기도 하니, 본의 아니게 고양이들을 기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1층집들로서는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점점 가을이 깊어 가면서 집의 창문들을 거의 열지 않게 되면 괜찮아질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어미 고양이는 점잖은 편이어서 함부로 뛰고 내닫는 법이 거의 없지만, 새끼들은 완전히 천방지축이다. 어디에서 오는 놈인지 요즘에는 같은 또래로 보이는 새끼 고양이도 한 마리 와서 함께 어울려 놀고 밥도 얻어먹고 가곤 하는데, 그놈들은 곧잘 옥상에도 올라가는 모양이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고장이 나서 노상 열려져 있는 상황이니, 옥상은 완전히 놈들의 운동장이다. 그러니 옥상에다가 생선 따위를 널어 말리는 일도 맘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 고양이 가족을 언제까지 거두어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거의 어미만큼 자란 새끼 세 놈이 지금도 어미 젖꼭지를 물고 누워 있는 때가 많고, 어미는 다 큰 새끼가 곁에 있기만 하면 핥아주고 하니, 그들의 하는 짓으로 보아서는 언제까지나 함께 살 것만 같다. 어미가 새끼들을 내쫓는다거나, 새끼들이 스스로 독립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끝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희망 사항일 뿐….

사람과 온전히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요, 완전히 야생으로 사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어중간한 상태이니 이런 경우에는 '동물의 세계'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더욱 불명확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괜한 생각도 들곤 한다.

아무튼 고양이 문제는 이제 우리 집 밥상머리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확실한 골칫거리가 된 상황이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시면서도 걱정을 하신다. 그 동안에는 추석 명절이 있어서 생선 국물이라도 쉽게 끓여서 밥을 말아 줄 수가 있었지만, 노상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괜한 짐을 떠안고 있는 형국이라며 한숨을 쉬시기도 했다. 요즘엔 내 손으로 밥을 챙겨 주는 때가 많지만, 밥을 줄 때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정말 모호해지곤 하는 심정이다.

며칠 전의 아침 밥상머리에서는 어머니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은, 우리 집 현관으로 찾아든 떠돌이 고양이에게 최초로 먹을 것을 주었던 앞집 은옥아빠와는 달리 고양이 똥을 보기 싫어하는 은옥엄마와 상의를 한 다음 고양이들에게 일체 밥을 주지 말아보자는 게 어머니의 의견이었다. 한 며칠만 계속 밥을 주지 않으면 고양이들이 스스로 어디로든 떠날 것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의견에 반대했다. 하루에 한번 정도만 밥을 주면서 당분간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는 내 손으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는데, 고양이들은 이제 내 얼굴도 확연히 알아보는 것 같았다. 놈들이 이제부터는 나에게도 밥을 달라고 조르게 생겼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날 오후였다. 외출할 일로 집 앞의 내 승합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차 밑의 그늘을 즐기고 있던 고양이들이 엔진 소리에 놀라 몸을 피하는 것을 잠시 백미러로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확인이 아니었다. 당연히 고양이들이 모두 몸을 피했을 것으로만 생각하고 천천히 차를 후진시켰다. 그러다가 한 순간 자지러지는 듯한 고양이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라 차를 멈추고 밖을 보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뒷다리 하나를 질질 끌며 화단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뒷다리 하나가 차바퀴에 깔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시 어찌할까 하다가 시간도 바쁘고 화단의 돌 틈으로 들어간 고양이를 붙잡는 것도 일인 것 같고 해서, 고양이를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나중에 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외출을 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 어미 고양이와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는 쉽게 볼 수 있는데, 다친 놈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찾아보아도 놈을 볼 수가 없었다. 저녁에는 나타나겠지 생각하며 놈들의 잠자리에 좀더 신경을 써주었다. 나는 저녁에는 현관 안쪽 한구석에 납작하고 넓적한 빗자루를 뉘어놓곤 하는데, 놈들은 밤에는 으레 그 위에 앉아서 잠을 자곤 했다. 한사코 빗자루를 뉘어놓는 나와 누군가 굳세게 빗자루를 세워놓는 사람과의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그런데 다친 놈은 이틀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디론가로 가서 죽었는가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놈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져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앞에서의 그 작은 교통사고 얘기를 가족들에게 고백하고, 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니 아내는 어린애 같다는 말로 나를 타박도 하고 위로도 했다.

우리 집 앞에서의 그런 작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3일째 되는 날, 이른 아침에 집밖으로 나가보니 그 다친 놈이 빗자루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다른 새끼 두 마리는 또 얄밉게도 잽싸게 몸을 피하는데, 다친 그 놈은 가만히 있었고, 옆에서 어미가 계속 놈의 다친 다리를 핥아주고 있었다. 내 반가운 마음이 참으로 컸다. 다가가 앉아서 손을 뻗으니 놈이 내 손을 피하는데, 역시 다친 다리를 질질 끄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동작이 굼뜰 수밖에.

놈을 붙잡아 다리를 만져보니 뼈가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것은 놈은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사람과 신경 체계가 다른 모양이었다. 몸을 떨며 작게 야옹 소리를 내는데, 놈은 아프다고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

가축병원에라도 데려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부터 사람 손에 익숙하지 않은 놈을 가축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너무 스트레스를 줄 것 같고, 며칠 두고 보자는 생각도 들어서 놈을 그냥 내려놓아 주었다.

그 뒤로 틈틈이 놈을 관찰해 보니 놈은 한쪽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몸으로도 제법 행동 반경이 넓었다. 자유자재로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이리저리 넓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뒷다리 하나를 질질 끓고 다니는 모습은 보기에도 측은했다. 그리고 놈은 두 형제보다 현관의 빗자루나 화단의 땅에 묻은 김칫독을 덮은 널빤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에 따라 어미가 특별히 보살피며 다리를 핥아주곤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거의 자란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내 차에 치어 뒷다리 하나를 다친 뒤로 나는 고양이들에게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미안하고 가엾은 마음 때문에 자주 밖에 나가 다친 놈의 동태를 살피곤 하는데, 그렇다고 먹을 것을 그놈에게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수 생선국이나 꽃게국에 밥을 비벼다 주고 물도 부어주고, 놈들이 특히 좋아하는 찐 망둥이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가을 한철에는 우리 집에 망둥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뒷동에 사는 동생이 휴일마다 망둥이 낚시를 즐기는 덕이다. 소금에 살짝 절여서 햇볕에 말린 망둥이는 굽기도 하고 찌기도 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어머니께서 특히 찐 망둥이를 좋아하시는데, 고양이들 때문에 올해는 많이 축나게 생겼다.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 밥도 잘 먹고 별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불구 상태를 끝내 면할 수 없을 듯싶다. 그래서 앞집 은옥아빠와 함께 내일은 놈을 붙잡아 다리에 적당한 나무를 대고 고무줄로 묶어주어 보기로 했다. 놈이 제 다리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그대로 놓아둘지, 그렇게 해준다고 해서 놈의 부러진 다리뼈가 붙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주고 싶어 마련했던 테니스 공과 작은 고무공도 끝내 주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것을 일찍이 마련하고도, 고양이들에게 공을 주어 연립주택 마당에서 뛰놀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생각하며 계속 미루어 왔었는데, 새끼 한 마리가 다친 후로는 마음대로 뛰놀 수 없게 된 그 놈을 생각해서 끝내 공을 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여전히 걱정이다. 언제까지나 고양이 가족을 거두어주어야 할지, 어쩌면 장차 고양이 가족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면 정말 난감하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스티로폴 상자에다가 푹신한 방석이라도 깔아서 현관 구석에 놓아줄 생각이지만, 그러려면 그것도 우리 가족의 합의는 물론이고 이웃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놈을 치료해 주어야 하고, 그 놈에 대한 미안하고 가엾은 마음 때문에 고양이 가족에게 망둥이 한 토막이라도 더 주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내가 현관에 나타나기만 하면 무엇을 줄 줄 알고 야옹 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놈들을 박절하게 외면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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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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