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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상자 안의 고양이 가족. 할머니고양이(흰색 고양이)와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을 함께 보살피고 있다.
ⓒ 지요하
작년 여름에 새끼였던 세 마리 고양이는 이제 내 곁에 한 마리만 남았다.

제일 식욕이 왕성하고 활발했던 숫놈 고양이는 지난해 가을 이상한 형태로 분양이 되어서 남산리 사돈댁 근처에서 홀로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에 제대로 분양이 된 것이 아니어서 집 고양이로 살지는 못하고 몰래 훔쳐먹는 식으로 사람이 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내게 많은 시름과 곤욕을 안겨 주고 또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장애 암코양이는 지난 4월 9일 이후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무슨 변을 당해 죽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적이 보고 싶어지는 녀석인데….

그래서 내가 현재 밥을 주고 있는 어른 고양이는 세 마리다. 두 마리는 모녀이고, 한 마리는 딴 배 새끼인 숫놈 고양이다. 이 세 마리 고양이는 지금도 내가 새벽에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을 끄려고 밖에 나가면 가장 먼저 내게 아는 체를 하고, 내 뒤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모녀 고양이 중에서 딸 고양이가 최근에 새끼를 낳았다. 모두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두 마리는 죽고 현재 네 마리가 잘 자라고 있다. 죽은 한 마리는 옥상 장독대 사이에서 내 어머니가 발견을 하고 처리를 하셨다. 다른 한 마리는 죽은 것을 보지 못했다. 분명히 다섯 마리였는데, 어느 날 보니 네 마리만 있었다. 죽은 녀석을 어미들이 처리를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것을 내가 보았더라면 더욱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딸 고양이가 새끼들을 어디에서 낳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뒷동 제수씨 말로는 뒷동 옥상 장독대 사이에서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보았다고 했는데 그곳이 정말 분만 장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처음 새끼들을 본 곳은 우리 옆집의 베란다 아래였다. 그 공간 구석에는 자동차 타이어 두 개가 겹쳐져 있는데, 그 타이어 안에 새끼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앞집 은옥아빠가 먼저 가냘픈 새끼고양이 소리를 듣고 내게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상체를 베란다 밑으로 들이밀고 두 개 타이어의 약간 벌어진 눈으로 어렵사리 눈을 넣어보니 그 안에서 새끼들이 고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새끼들이 있는 그곳을 어미고양이뿐 아니라 그 어미의 어미, 그러니까 할머니고양이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들락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그곳이 분만 장소인 줄 알았는데, 뒷동 옥상의 장독대 사이에서 새끼고양이들을 보았다는 제수씨의 말을 들은 후로 분만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다른 곳에서 새끼를 낳았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 우리 옆집 베란다 아래 자동차 타이어 안으로 새끼들을 옮긴 것이라면 다른 곳으로 다시 옮길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옥아빠와 내가 새끼들을 발견한 것이, 베란다 밑의 그 타이어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어미들에게 불안감을 주리라는 생각이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이틀 후에 보니 그 베란다 밑은 적막했다. 어미들이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일부러 다가가서 타이어 틈으로 눈을 넣어보고 귀를 기울이고 해보니 어느새 새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어미들이 새끼들을 어디로 옮겼는지 참 궁금했다. 3개 동 연립주택들을 일삼아 돌며 앞뒤 베란다 밑을 살펴보고 했으나 새끼고양이들을 숨겨놓을 만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괜히 섭섭해지는 마음을 안고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옥상에다 빨래를 널고 오신 어머니가 고양이 얘기를 했다. 할미고양이가 새끼 한 마리를 물고 우리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뛰어올라가 보니 한쪽 장독대 사이에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새끼들을 물어 나른 듯한 할미고양이는 사람의 관심을 저에게로 끌려는 수작인지 내 옆에서 괜히 뒹굴고 아양떠는 몸짓을 했다.

나는 새끼들이 더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이지 않는 어미고양이와 함께 나머지 새끼들은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할미고양이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새끼 물어 나르는 일을 미루는 것 같았고, 어미고양이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별로 힘이 없어 보이는 두 마리 새끼들을 위해 나는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출타를 했다가 귀가했을 때였다. 옥상 장독대 사이에서 죽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어다가 화단에 묻어 주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 장독대 사이를 살펴보니 고양이 모녀가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옥상 위도 과히 어둡지가 않아서 새끼가 다섯 마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상 장독대 사이에서 새끼고양이들이 추운 밤을 잘 견뎠는지 궁금하여 아침에 올라가 보니 새끼들은 거기에 없었다. 옥상 위 다른 두 곳의 장독대에도 가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옥상을 내려와서 옆집 베란다 아래 타이어 안도 살폈으나 역시 없었다. 귀신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괜히 허탈하고 섭섭했다. 할미와 어미가 공동으로 새끼 키우는 모습, 할미와 어미의 보살핌 속에서 새끼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리라는 내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아쉬움이 참으로 컸다.

그런데 새끼고양이들은 의외로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 한번 옥상에 올라갔다가 허탈한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어디에선가 작은 새끼고양이 소리가 났다.

우리 집과 이층집의 계단 중간, 계단이 꺾어지는 널찍한 공간의 한구석엔 지난해부터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지난해 봄 내 장편소설 '죄와 사랑'이 출간된 뒤 출판사로부터 50권의 책을 샀다. 절반쯤 사인을 해서 보낼 곳으로 보내고, 절반쯤은 남겨서 지금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그 종이 상자는 출판사에서 내 책을 넣어 보내 준 물건이었다. 내 책인데도, 집이 워낙 좁아 그 책들을 집안에도 들여놓지 못하고 그렇게 종이 상자에 넣어둔 채로 계단의 공간에다가 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 종이 상자 안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야릇한 경이감을 삼키며 살며시 종이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 어미가 누워 있고, 세 마리의 새끼가 젖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끼 두 마리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책과 종이 상자 사이에는 한쪽에 5센티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책을 덮은 신문지의 한쪽이 꺾어져서 그 공간으로 내려가 있는데, 새끼 두 마리가 그 공간에 빠져서 기어 나오려고 용을 쓰며 가냘픈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미는 새끼 두 마리의 곤경은 모르는 척하면서 다른 세 마리에게만 계속 젖을 물리고 있었다.

"이 녀석, 엄마 자격이 없구만."
나는 중얼거리며 손을 넣어 두 마리의 새끼를 그 공간에서 꺼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어미고양이는 몸을 일으키고 종이상자 안을 나가버렸다. 갑자기 젖꼭지를 놓친 새끼들은 입맛을 다시며 우왕좌왕했다.

나는 한 손으로 신문지의 한쪽을 들치고 종이 상자 안의 내 책들을 펴서 상자 안에 공간이 없게 만들었다. 새끼고양이들이 계속 그 안에서 자라면 책을 몇 권 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각오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도 그 종이상자 안에 새끼고양이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하면 어미들이 불안을 느껴 새끼들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새끼고양이들이 뚜껑까지 있는 그 종이상자 안에서 안전하게 잘 자라기를 바랐다.

틈틈이 문을 열고 나가 가만히 올라가서 그 종이상자의 뚜껑을 살며시 열어보곤 했다. 종이상자 안에는 할미와 어미고양이가 함께 새끼들을 품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상자 안이 좁아서 어른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있을 때는 새끼들이 불편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어미가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는 가운데 새끼 세 마리가 여섯 개의 젖꼭지 가운데 위로 올라온 세 개를 각기 하나씩 차지하고 빨고 있었다. 젖꼭지를 차지하지 못한 한 놈이 형제들의 몸을 밟고 다니며 젖꼭지를 뺐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무 안쓰럽게 보여서 가운데 젖꼭지를 문 놈의 머리를 내 손으로 밀어서 그만 놓게 했다.

하지만 겨우 젖꼭지를 차지한 놈이 몇 번 빨기도 전에 어미가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몇 번 빨지도 못하고 젖꼭지를 놓친 놈의 허망한 모습이 더욱 안쓰러웠다.

재미있는 것은 어미고양이보다 할미고양이가 더 자주 그 상자 안을 들락거린다는 사실이었다. 새끼들을 품어주고 핥아주고 하는 것은 할미고양이가 더 정성스러운 것 같았고, 어미보다 할미 쪽이 새끼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할미고양이는 딸 고양이와 새끼들을 가리지 않고 핥아준다는 것이다. 새끼들을 핥아주다가도 곧잘 딸 고양이를 핥아주곤 한다. 이제는 자신보다 몸피가 더 큰 딸 고양이를 여전히 자주 핥아주는데 반해, 나는 이제까지 딸 고양이가 어미고양이를 핥아주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종이 상자 안의 새끼고양이들이 할머니고양이의 젖을 물고 있는 장면
ⓒ 지요하
딸 고양이는 지금도 가끔 제 어미 가슴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몸을 비비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아무래도 응석을 부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어미고양이는 할미고양이 덕분에 안심하고 밖으로 나돌아다닐 수가 있는 것 같았다. 어미고양이가 밖으로 나돌아다닐 때 보면 거의 할미고양이가 새끼들과 함께 있는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새끼고양이들이 더러는 할머니의 젖을 물고 있는 사실이었다. 젖이 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젖이 나지는 않으므로, 새끼들은 할미 젖꼭지와 어미 젖꼭지를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보니 종이 상자 안에 새끼들이 네 마리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어미들이 새끼들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았다. 한 마리를 물어다 옮겨놓은 시간에 내가 상자 안을 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한 마리는 죽어서 어미들이 어떻게 처리를 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종이상자 안이 너무 비좁다는 것과 통풍이 되지 않아 갑갑하고 불결해지기 쉽다는 생각을 했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종이상자를 좀더 큰 것을 가져다가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고양이 가족은 다시 거처를 옮겼다. 어느 날 아침에 상자 안을 보니 텅 비어 있었다. 내게 아무런 예감이나 표시도 주지 않고 어미들끼리 감쪽같이 새끼들을 모두 옮겨버린 것이었다. 마치 나를 따돌리듯이….

나는 적이 섭섭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체 알리지 않고 내 딴에는 그 종이상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이미 나말고도 그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고양이들이 거처를 옮겼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한량없었다.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정말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런 가운데서도 궁금증은 또 있었다. 고양이 모녀가 어떻게 새끼들을 옮길 장소를 찾아내고 서로 합의하고 결정을 하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어떤 교감 체계와 방식으로 서로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인지….

또 한번 옥상과 집 주변을 열심히 찾았으나 고양이들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새끼들을 어디에다 감춰놓았는지 내게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고 시치미를 뚝 떼고 염치 좋게 밥만 얻어먹는 고양이 모녀가 얄미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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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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