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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 수놈 고양이를 생각해서 암놈 고양이까지 그곳으로 데려가서 일종의 '투기'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옳은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다고 해서 두 녀석이 만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는 일이었다. 두 놈이 서로 만나든 못 만나든 공연히 겁쟁이 암놈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일일 터였다. 나는 결국 그 일을 단념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종이 상자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나니 다소 마음이 편안해진 상황에서도 그 수놈 생각은 계속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상심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 놈이 지금 어디에서 어찌하고 있을지, 밤을 무사히 보냈는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그 불행 속에서 개나 다른 들짐승들에게 쫓기며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다가 참혹하게 죽게 되는 것은 아닌지…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그야말로 보통 심란지경이 아니었다.

그 후로는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오는 일도 별로 흥이 없었고, 그 일을 할 때는 꼭 그 수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엊그제도 음식점에서 남은 음식을 거두면서 그 수놈 얘기를 했더니 가족들이 나를 위로도 하고 핀잔도 하고 했다.

어제는 학교에서 퇴근해 온 아내가 학교 급식소에서 먹고 남은 음식이라며 내게 비닐 봉지를 내밀었다. "엣쑤, 당신 좋겄쑤다" 하면서. 나는 반색을 하면서도 다시 상심을 머금은 목소리로 그 수놈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내게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하면서 눈을 흘겼다.

그 동안 나는 남산리 사돈댁에 두 번 전화를 해보았다. 혹시 고양이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를 물었고, 고양이를 기른다는 언덕 아래 끄트머리 집에 다른 고양이 소리가 없었는지 물어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리고 사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점심 식사 후에 잠시 짬을 내어 그곳을 가보았다. 논틀 밭틀을 살펴보고 세 집을 돌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는데, 어디에도 고양이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돈댁에 미안하여 큰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적당한 소리로 야옹아 야옹아 하고 고양이를 부르자니 개들 짓는 소리만 더욱 요란했다.

고양이를 기른다는 언덕 바로 아래 끄트머리 집에 가서 보니, 그 집 고양이는 방안에서만 살고 있었다. 같은 고양이라도 밖에서는 집안 고양이의 존재를 전혀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세 집 주변에는 그 수놈 고양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선은 개들이 무서워서도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놈 고양이는 아주 멀리로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영영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절로 맥이 풀렸다. 녀석에게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정말 한량없었다.

요즘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이 그전처럼 흥겹지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정성껏 밥을 맛있게 해서 주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수놈 생각이 나서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수놈이 없어진 덕에 제일 살 판이 난 놈은 딴 배 새끼인 잿빛 얼룩무늬 수코양이다. 놈은 그 없어진 놈에게 늘 견제를 당하곤 했었다. 밥그릇 앞에서 그 놈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빵 조각을 잽싸게 낚아채는 찰나에도 그 놈의 앞발에 얼굴을 맞곤 했다.

생각하면 그 수놈은 참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맛있는 밥을 먹을 때도 제 동기들에게는 위협적인 동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딴 배 새끼인 잿빛 얼룩무늬 수놈에게는 가차없이 견제를 하곤 했다. 밥을 먹고 나서 식곤증을 즐길 때는 장애 암코양이 등에다가 제 상체를 올려놓기를 좋아했고, 곧잘 현관의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가서 파수병처럼 앉아 있곤 한 녀석이었다.

나는 공연히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가장 왕성하게 밥을 먹는 방정꾼 잿빛 얼룩무늬 수놈이 괜히 미워지기도 한다. 놈의 식사를 방해하거나 어쩌지는 않지만, 생선을 넣고 데워서 비벼 준 밥을 녀석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노라면, 지금도 그 수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배불리 밥을 먹고 난 녀석들이 한데 몸을 붙이고 식곤증을 즐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허전함과 아쉬움도 함께 느끼곤 한다.

녀석들이 밥을 먹으면서, 밥을 먹고 나서 혀로 입 주위를 핥는 것을 보면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 속에서도 나는 그 수놈이 생각난다. 식사를 마친 녀석들이 밥그릇에서 물러나서 제각기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고 귀엽다. 그 재미로운 느낌 속에서도 나는 또 그 수놈이 생각난다.

그 수놈을 잃고 난 다음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미가 양지바른 화단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을 보자니 저리도 태평할 수 있나, 괜히 한심하고 미운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다음 날에는 어미가 우리 집의 현관과 옥상을 오르내리며 길래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았다. 어미의 심상찮은 울음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본 나는 그 어미가 오래 보이지 않는 새끼를 찾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고 하루종일 날씨가 몹시도 음산하다. 밤부터는 몹시 추워지리라고 한다. 이런 날에는 그 수놈이 더욱 생각난다. 이 궂은 날씨에, 추운 밤에 그 녀석이 어디에서 어찌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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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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